1988년 가을 - 19살
“미쿡~” 가족 이민 온지도 일년 쯤 되었던.
나에 18살 미국 첫 가을.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리고 1년 쯤 되었던 때.
미국에 Cliffside Park, NJ 고등학교에서 한 학년 다시 다닐 생각으로 등록도 해주고 그저 모든게 신기해서 잠시 다니고 있는데, 어는 착한 백인 아주머니 선생이 18살 나이이니 여기서 다시 일년 다니지말고 주립대학에 ESL 프로그램으로 가라고 어떻게 가는지도 버스 노선 까지 자세히 적어 주며 알선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일년도 안되어 ESL 도 하고 TOEFL 시험도 보고 대학교 조건 입학도 되고 그리고
같이 다니던 "미쿡~" 백인 친구 마저 있었으니…
어머니는 정신 없이 뛰어 드신 세탁소의 매일 바쁘신 가운데 무척이나 뿌듯해 하셨다.
“어디가서 한국 애들 하고 놀지 말고 ”
부모님에 혹시나 빨리 영어 배우지 못할까 하는
기우였으리라.
사실 우리가 같이 다닌 것은 이 친구 역시 작년에 못 사는 폴란드에서 와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는 처지 였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끼리는 금방 친해진다. 이미 큰 공통 분모를 나누고 있는 사이는.
New Jersey 주립 대학, 흑인들이 많았던 newark campus (Contact Us | Rutgers University-Newark) 에 고만 고만 한 외국 학생들을 모아 놓은 영어 제2외국어 반인 ESL에는 재미있는 친구들 꽤 있었다. 부산에서 유학 온 먼지 스포츠 카를 운전하고 다니던 "니 이름이 뭐 꼬?"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 첫 인사. 나는 서울 강남에서 학교 다니온 후 여서 처음들어 보는 그 멋진 경상도 싸나이형.
다른 친한 한국형은 유일하게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그래도 잠시라도 다녀 본, Hoboken에 위치한 작은 공대인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에 나니면서 잠깐 ESL 반에 와있어서 후에 내가 Stevens 공대로 쫒아가 이유가 되었고 덕분에 오십대 중반을 마우스와 키보드 꼭 잡고 잘 뛰고 있어 아직도 늘 고맙다. 그리고 고위 중국 공산당원 아들이라는 중국 유학생 형. "영웅 본색" 영화의 인기가 아직 식지 않은 때 여서 "따거~" 하고 열심히 쫒아 다녔다. 뉴욕시 Chinatown에 종종 같이 다녔었고, 그리고 그 반에 친했던 다른 한명이 폴란드에서 방금 온 Andrew 였다.
190cm 가 넘는 체격에, 파란눈, 노란 금발에 올백 머리, 영어를 못 해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구나 희안 하기도 했고...폴란트 국가 청년 축구 선수. 국가 청년 대표 축구 경기로 평양에서 큰 스테이움에서 경기도 했엇다고 북한 얘기며 그리고 코리안이라고 동생 처럼 챙겨주었었다.
부모님은 오십에 인생 후반전으로 미국 이민으로 오셔서 정신 없는 중에 아들이 미국 온지 일년만에 대학도 들어 가고, 비록 ESL 반에 조건부 입학 같은 것이었지만 일단은 주립대 강의실로 간다는 것 만으로도 흡족 해 하셨고 그리고
비록 나와 비슷한 그저 그런 영어에 폴란드에서 둘이 레스토랑 같이 가도 음식 주문에 버벅 거리며 있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어머니 보기에는 아주 잘 생긴 미쿡~ 백인 친구와 같이 잘 다니고 있으니, 하루는 어머니가 Andrew 데리고 꼭 집에 같이 오라고 부탁 하셨다.
미국 사람들 좋아 하시는 "이탈리안"으로 준비해서 식사 대접을 하시 겠다고.
초대 날짜에 어머니는 부랴 부랴 일찍 세탁소에서 오셔서 준비를 하셨다.
삶아 하얀 김나는 파스타 커다란 솥에서
싱크에서 찬물에 정성껏 여러번 찰지게 씻고 몇번 헹구셨다. 요리 는 둘째치고
한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핑크색 프라스틱 채발에.
그 빨간 고무 장갑.
신기하게 바라보는 andrew 앞에서
커다란 접시에 푸집하게, 산만하게 푸짐히 올려서
한 접시씩 놓아 주셨다.
포크만 놓여 있었던 테이블에서 기다있고 있던 우리에게 건네 주시는 접시를 받아들었다.
물기 잘 빠진 쫄깃한, 탱탱한, 파스타.
아무것도 없는 파스타 면발만 올려진 접시.
그리고
수퍼파켓에서 사온 파스타 소스 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우리 앞에 병채로 놓아 주셨다.
파스타는 그렇게 하는 요리인중 알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은 그렇게 먹었었다.
아무튼 배고픈 우리는 냉장고 에서 나온 차가운 병에서 파스타 쏘스를, 찬물에 잘 씻겨진 탱탱한 파스타위에 쏟아서 잘 비며서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Andrew는 연신 탱큐와 엄지손가락 올려 보이면서 고마워 했다.
“맛” 보다는 신기하고 그리고 허기를 면한 타이밍에 대한 .
흐믓하신 어머니.
이 백인 친구가 올려이 백인 친구가 치켜올린 엄지는
이민 일년 가족에 가느다란 뿌리내리기를 인정해주는
미국이 올려준 엄지 손가락이었다.
오래전 이지만
아직도 수퍼마켓 가면 특별하지 않은, 대량 생산되는, 늘 세일 하는, 흔한 파스타 병을 볼때
마다 생각이 솔솔 난다.
2023년 9월 21일 - 55살
선선한 어제에 늦은 저녁은
회사에서 늦게 나와
와이프하고
파스타를 해서
맛있게 먹었다.
특별하지 않은, 슈퍼에서 흔히 파는 병 파스타에, garlic, olive oil 로 알맞게 삶은 파스타를 살짝 볶기도 했다. 오니언과 고기도 좀 볶아서 파스타 쏘스와 천천히 끊여 주면서.
나중에 Parmesan 치즈도 올려 놓고.
와이프가 엄지 손가락 올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