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받은 승리를 두고, 왜 거래를 하려 했는가
입다는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만약 저를 승리하게 해 주신다면, 집에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나와 저를 맞이하는 것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그것을 번제물로 드리겠습니다." (사사기 11:30-31)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그의 외동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했습니다.
두 달 후, 입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입다는 자기가 맹세한 것을 이행하였으며 그 딸은 영영 처녀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대인의성경 사사기 11:39)
고대 근동 사회를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에는 장자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 흔한 관습이었다는 것을요.
가나안과 암몬, 모압에서는 실제로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불에 태워 바쳤습니다. 몰렉 숭배가 대표적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불로 통과시키며, 풍년과 전쟁의 승리를 빌었습니다.
입다도 그런 문화권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 전에 그런 약속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신들도 그런 제사를 요구하니, 여호와도 그러실 거야.'
하지만 성경은 명확했습니다.
"너희는 자녀를 몰렉에게 불로 태워 바치지 말라. 그것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다" (레위기 18:21)
"너희는... 그들이 하는 대로 행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 자녀들까지 불살라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친다" (신명기 12:31)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혐오하셨습니다. 분명히 금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입다의 서원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입다가 조급함에, 무지함에, 다른 신들의 방식으로 여호와께 접근했던 것입니다.
입다의 이야기에는 더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사사기 11장을 다시 찬찬히 읽다가 놀랐습니다.
입다가 서원을 하기 바로 직전의 구절입니다.
"여호와의 성령께서 입다를 감동시키시므로 그가 군대를 이끌고... 암몬 군대를 향해 진군하였다." (사사기 11:29)
하나님의 영, 성령이 이미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와 함께한다. 승리는 이미 너의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거기에 자기식 안전장치를 붙입니다. 하나님께 '거래'를 제안합니다.
"만약 이기게 해 주시면, 집에서 처음 나오는 것을 번제로 바치겠습니다."
이미 성령이 임하셨는데...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는데...
입다는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희생을 더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조급함이 아니었습니다.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속으로 떠올린 건 개나 양, 혹은 집에 있던 짐승이었을까요?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건,
외동딸이었습니다.
소고를 들고 춤추며,
아버지의 승리를 축하하려고...
미국 이민 초기였습니다.
남편의 비즈니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트너가 변호사와 짜고 문서를 조작했습니다.
회사는 사기를 당했고,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송이 시작되자 회사는 순식간에 힘들어졌습니다.
더 심각한 건 소송 때문에 우리 신분 진행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회사도 잃고, 영주권도 안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이들은? 학교는?'
그날 밤, 저는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해결해 주세요. 신분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 위해 쓰겠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때는 절박해서 드린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기도는 조건부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거래 제안이었습니다.
입다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 주시면, 저도 저렇게 하겠습니다.”
불안한 나머지 '무언가'를 하나님께 내밀어야만 그분이 움직이실 거라 착각했습니다.
놀라운 건,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해 잃은 돈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신분 문제는 뜻밖에 풀렸습니다.
변호사 말로는 한참 걸릴 거라 그냥 잊어먹고 있으라고 했던 영주권이 그 기도 후 2주 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조건부 기도였음에도,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가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신 건 제 '거래 조건'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입다의 승리가 '딸을 건 서원' 때문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당신의 자녀가 곤경에 처한 것을 불쌍히 여기신 아버지셨습니다.
나의 조건부 기도 때문이 아니라, 나의 어리석고 연약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긍휼이었습니다.
영주권을 받은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교회에서 선교팀을 꾸리다가 갑자기 한 분이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남편에게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이번에 같이 선교 가실 수 있으세요?” "한번 기도해 보세요." 남편은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도했는데, 와이프를 데려가라는 감동을 주셨다는 겁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쑥 떠올랐습니다.
'아, 내가 했던 기도.'
'신분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 위해 쓰겠다던 그 약속.'
저는 그 약속을 잊고 살았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으로 그 영주권을 들고 비행기를 탄 것은 선교 여행길이었습니다.
나중에 전도서를 읽다가 마음이 쿡 찔리는 말씀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전도서 5:2)
"경솔히 서원하는 것은 사람에게 올무가 된다" (잠언 20:25)
입다는 조급함에 경솔하게 서원했습니다.
저도 조급함에 미숙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 제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입다가 딸을 실제로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딸은 “나의 처녀 됨을 두 달 동안 애곡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사기 11:37-38)
'처녀로 있음을 애곡'한다는 것은 결혼하지 못함을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서원대로 그에게 행하였는데, 뒤 이은 구절에서 "그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1:39)라고 굳이 덧붙입니다.
입다는 딸을 평생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했을 수 있습니다.
마치 한나가 사무엘을 성전에 드린 것처럼요.
외동딸이 평생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입다의 가문이 끊긴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입다가 정말로 딸을 죽였다면?
이것은 입다의 무지와 죄, 사사 시대의 영적 암흑,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실수를 보여주는 비극입니다.
사실 율법에는 잘못된 서원을 돈으로 속전하거나(레 27장), 상위 권위자가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규정(민 30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서원을 회개하고,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열려 있었습니다.
입다는 성경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걸까요?
“서원은 무조건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솔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서원했을 뿐 아니라, 그 서원을 절대화하여, 하나님 말씀 앞에서 다시 점검하고 돌이킬 기회를 놓친 것이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입다 이야기는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본보기가 아니라, 잘못된 서원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경고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의 서원 하나 때문에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이름 없는 소녀.
하지만 이 아픔 속에서 배워갑니다.
조건 없이, 거래 없이, 그냥 신뢰하는 법을요.
"이것 해주시면 저것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을 신뢰합니다"라는 고백을요.
조급할수록 함부로 맹세하거나 약속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조건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아들을 내어주신 그분은,
나의 거래가 아니라,
나의 신뢰를 원하십니다.
입다의 이름 없는 딸처럼,
우리의 실수와 상처도
누군가에게
은혜의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슬픈 이야기가
성경에 남겨진 이유일지 모릅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독자님의 삶에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난해한 성경을 헤매다, 뜻밖에 삶의 답을 찾기까지.
우리 함께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