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사기꾼이 성공한다면서?

야곱이 받은 건... 그가 기대한 축복이 아니었다

by Shin란트로

두 아들을 키우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성경에는 형제가 싸우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을요.

가인과 아벨. 형이 동생을 죽입니다.

야곱과 에서. 동생이 형을 속입니다.

요셉과 형들. 형들이 동생을 노예로 팝니다.

아들들이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읽어주기가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엄마, 왜 형제끼리 싸워?"

"형이 동생을 죽였어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야곱과 에서 이야기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결말이었습니다.

속인 사람이 축복을 받았다는 것.


형의 옷을 입은 동생

창세기 27장을 읽어줄 때였습니다.

늙은 아버지 이삭은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큰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둘째 야곱을 불러 계획을 짜줍니다.

염소 가죽을 팔에 붙여 털 많은 형처럼 꾸미고, 형의 옷을 입히고, 아버지 앞에 보냅니다.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왔습니다. 일어나 잡수시고 나에게 축복해 주십시오.”
(창세기 27:19)

다섯 살 큰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 야곱이 거짓말했어?"

"응... 그렇네."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응, 안 되지."

"근데 하나님이 야곱한테 축복 주셨어요?"


착한 척 뒤에 숨은 진짜 마음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고, 선생님께도 순종적이었습니다.

"참 착하네", "말 잘 듣네"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하나님을 알게 된 후, 깨달았습니다.

제가 착했던 게 아니라는 것을요.

전략적으로 계산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결국 나의 유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하겠지.'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나를 좋게 보시겠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속 중심에는 '내'가 있었습니다.

순종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이 엄마 리브가의 계획을 따른 것처럼, 저도 제 안전과 유익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교회 초대가 망설여진 이유

아들 친구 엄마를 교회에 초대하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좋은 분이었고, 대화도 잘 통했습니다.

"우리 교회 한번 와보세요."

그런데 그분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기꾼이 성공한다더라?"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 아, 그게..."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겠지만, 저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런 건가?'

'속이는 자가 축복받는 게 하나님의 방식인가?'


야곱의 두 번 속임

야곱은 두 번 형을 속였습니다.

첫 번째, 장자권.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배고파할 때, 야곱은 팥죽을 주고 장자권을 샀습니다.

에서가 “내가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창세기 25:32)

에서는 충동적이었고, 야곱은 계획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로부터의 축복.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형 행세를 했습니다. 늙고 눈먼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Why not 에서?

하지만 계속 읽어보니, 에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팥죽을 주자 에서는 먹고 마신 후에 일어나 갔다. 그는 장자권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창세기 25:34)

성경의 다른 버전에는 '멸시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영적인 것을 가볍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지금 당장 배고픈 게 미래의 축복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사람의 두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러나 그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
(창세기 26:34-35)

에서는 정직했지만, 영적으로 무감각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선택

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선택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뱃속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 나누어질 것이니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창세기 25:23)

야곱이 거짓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리브가도 남편 이삭을 속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셨으니까요.

그렇다면 야곱과 리브가의 속임수는 뭐였을까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내가 이루어드려야 한다고 판단한 걸까요...


내 인생의 키를 내가 쥐고

스물여덟,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를 생각합니다.

낯선 땅, 서툰 영어, 불확실한 미래.

저는 오로지 남편만 의지했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용기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하는 대로, 남편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어쩌면 엄마 리브가의 방법을 따른 야곱과 비슷했습니다.

스스로 헤쳐나갈 힘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삶이 내 생각처럼 녹녹지 않기 시작하자, 달라졌습니다.

나중에는 제 방식을 찾으려 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속였던 것처럼, 저도 제 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열심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했던 시간

교회라는 곳을 나가게 된 후,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이었습니다.

교회 행사마다 참석했고, 다른 교우들을 섬겼고, 교회를 내 집처럼 돌봤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이렇게 헌신하면 축복받겠지.'

어쩌면 저도 내 열심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이 20년간 라반 밑에서 뼈 빠지게 일했던 것처럼요.

사람들은 "믿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내가 중심이었습니다.


기도 모임에서 마주한 나

매주 있던 모임이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날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집사님도 기도 제목 있으세요?"

"아... 저는 뭐, 괜찮아요."

"아니에요. 집사님도 기도받으셔야죠."

그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나는 항상 남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나도 기도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날, 자매님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저는 속이는 자 같습니다. 겉으로는 헌신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야곱이 진짜 치른 대가

야곱이 축복받았다고요?

그의 인생을 자세히 보세요.

20년간 외삼촌에게 착취당했습니다.

라헬과 결혼하려다 레아와 사기 결혼을 합니다.

임금을 열 번이나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뼈 빠지게 일했지만 삼촌과 그 가족들에게 존중받지 못합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자녀들에게 똑같이 당합니다.

아들들이 요셉을 팔아버리고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거짓말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것처럼, 자신의 자식들도 야곱을 속입니다.

“나그네처럼 살아온 세월이 130년이 되었습니다. 내 조상들의 나그네 생활에 비하면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정말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세기 47:9)

야곱 스스로 고백합니다.

"험악했다."

축복받은 인생이 아니라, 험악한 인생이었다고.

정말 고달픈 세월을 보냈다고.


얍복 강가, 절망의 밤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밤.

얍복 강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형 에서를 만나게 됩니다.

두려웠습니다. 에서가 복수하려고 자신을 죽일까 봐.

그날 밤, 야곱은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씨름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를 쳤다. 그래서 그와 씨름하는 중에 야곱은 엉덩이뼈가 위골 되었다." (창세기 32:25)

날이 새도록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창세기 32:26)


이름을 고백하는 순간

그때 그 사람(하나님의 천사)이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야곱'.

그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다', '속이다'.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속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고 사람과 겨루어 이겼으므로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창세기 32:28)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다', '하나님이 통치하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평생 자기 방식, 엄마의 방식, 제 꾀를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얍복 강가에서, 그는 마침내 항복했습니다.


절뚝거리며 걷는 삶

야곱은 얍복 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허벅지 관절, 그러니까 엉덩이 뼈가 어긋났으니까요.

평생 그 흔적을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강했던 야곱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약한 이스라엘로 살아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 교만, 제 방식, 제 열심을 내려놓은 후.

저는 예전처럼 똑 부러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로마서가 말하는 진실

또 그것은 성경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하신 말씀과도 같습니다. (로마서 9:13)

이 구절이 오래 불편했습니다.

왜 야곱을요? 사기꾼을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함을 보신 게 아니라, 방향을 보셨습니다.

에서는 정직했지만, 영적인 것을 팥죽에 팔 정도로 무감각했습니다.

야곱은 속였지만, 축복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방법은 틀렸지만요.

하나님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통해 야곱을 깨뜨리고, 빚으셨습니다.


사기꾼이 성공한 게 아니었다

아들 친구 엄마가 물었던 그 질문.

"성경에 보면 사기꾼이 성공한다더라?"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야곱은 성공한 게 아니에요. 그는 130년을 '험악하게' 살았어요. 속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은혜로우신 분이시니까요."

"그래서 야곱도 변했어요.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께 항복한 자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거짓말한 야곱이 왜 축복을 받았는지 물어보는 아들에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응, 야곱은 거짓말했어. 그건 잘못이야. 그리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어.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야. 완벽하지 않아도 돼. 실수해도 돼. 하지만 계속 하나님께 나아가야 해. 그게 신앙이야."


착한 척했지만 결국 나의 유익을 구했던 저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평생 씨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배워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우리를 쓰시니까요.

사기꾼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신 것처럼요.

그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독자님의 삶에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난해한 성경을 헤매다, 뜻밖에 삶의 답을 찾기까지.

우리 함께 걸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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