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떼 i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데렐로 Dec 05. 2022

당신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

매주 로또를 사는 사람의 이야기



‘지난 주에도 로또를 샀다.’

이 문장의 ‘도’라는 보조사를 본다면, 눈썰미 없는 사람이라도 내가 종종 로또를 산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이다. 그렇다. 나는 거의 매주 로또를 산다. 1등에 당첨되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혹시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는 있어서다. 


로또. 복권의 이름이다. 45개의 숫자 가운데 6개의 숫자를 맞추면 1등에 당첨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로또는 ‘로또6/45’(*) 라고도 한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같은 형식의 복권이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로또가 판매되기 시작한 건 2002년 12월 2일이다.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 만약 드라마에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PPL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로또 판매 20주년 맞이 홍보. 하지만 PPL과는 아무 관계없다.


공부나 운동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 매번 떨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로또 당첨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첨된다면 상당액의 세금을 내야한다. 당첨 금액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므로 일률적으로 얼마라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요즘 보통 1등 당첨금이 15억원 정도는 되니까 세금으로 몇 억 원은 내야 한다. 그러니 흔히 말하는 불로소득이라고 치부하기도 조금 어렵다.


2003년 초 처음 로또를 구입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종종 로또를 사는 이유는 후배 녀석이 던진 한 마디 때문이다. 평소 진지한 성격이라 나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 후배인데, 로또 광풍이 불던 초기에 이렇게 한 마디를 했다. “로또도 사지 않으면서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사람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마흔을 넘기고도 불혹은커녕 항혹(恒惑)에 시달리던 나를 겨냥한 듯한 일성이었다. 


2년 전 만난 그 후배는 아직 인생이 바뀐 것 같지는 않았다. 후배는, 20년 전 ‘인생과 로또’ 발언 당시 경기도 어딘가에 살았고 서울에 주거지를 마련하길 희망했다. 2년 전 만났을 때 아직 서울 공략에는 성공하지 못 했고, 서울 가까이까지 진격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결과를 짐작해서였을까, 후배에게 로또 당첨 여부를 묻지는 않았다. 진지한 후배가 아직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것은 로또 당첨만도 어려운데, 그걸 인생과 연결시켜서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은 아닐까.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백십몇만 분의 1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8,146,060분의 1이란다. 나는 쉽게 '매우 낮은 확률'로 이해한다. 한때 수학 공부를 하면서 확률도 공부를 하긴 했으나,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확률과 관련하여 내가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순열의 문제는 아니고, 조합의 문제라는 정도다. 그리고 이제는 팩토리얼을 어떻게 계산하는지조차 까먹었으니, 당첨 확률 계산은 아예 불가능하다. 


로또는 확률 계산을 하지 못 해도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 몇 천원의 돈과 내가 당첨될 수도 있다는 기대 혹은 환상과 당첨금을 좋은 곳에 쓰겠다는 선의 정도가 있으면 될 것이다. 아,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운. 한자로 운(運), 영어로 럭(luck). 


내가 여러차례 로또를 사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한 순간을 짚어낼 수 있다. 숫자 세 개가 맞으면 당첨자 가운데 꼴등인 6등이다. 상금이 5천원인데, 당첨자 거의 모두가 그 당첨금으로는 다시 로또를 산다. 그 위 5등은 숫자 네 개가 맞아야 한다. 단지 숫자 하나가 더 많은 거지만, 그 확률은 비교가 안 된다. 5등 당첨금은 5만원이다. 


어떤 때, 나는 6등에 맞은 줄 알고 판매소에서 새 로또로 바꿔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그 로또를 기계에 넣고 확인하더니 어떻게 해 줄까요 하고 묻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멍하니 바라보니까, “5등이니까 5만원인데 로또를 10장(5게임 짜리 10장) 줄까 아니면 일부 현금을 주고, 일부는 로또로 줄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6등인 줄 알았던 내 로또가 5등에 당첨되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로또를 샀건만 5등 당첨만 해도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깐 생각을 한 후 목소리에 힘을 주고 요구했다. “5만원을 현금으로 주시구요, 이건 자동 5천원을 주세요”하면서 5천원 짜리를 새로 내밀었다. 그게 내가 이제까지 5등에 당첨된 두 가지 사례 중 하나다. 


로또에서 이 순간이 가장 즐거웠다고 기억하는 것은 5만원이라는 ‘거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6등인 줄 알았다가 5등이 된 의외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 의외성에도 그리 즐거웠으니 만약 1등이 된다면... 이런 상상을 할 때면 내 안 좋은 심장에 무리가 갈지 모른다는 달콤쌉싸름한 걱정을 하고는 한다. 


여기까지 쓴 후 지난 토요일 밤의 로또 추첨 결과를 확인했다. 물론 “꽝”이었다. 이 짧은 문장에서 주목할 단어는 ‘꽝’이 아니라 ‘물론’이다. 이 부정적인 단어를 보면, 로또를 대하는 나의 심리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무한다. 내가 당첨은 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로또 판매금액을 좋은 목적에 쓴다니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 이건 순진한 생각일까, 어리석은 생각일까.


이번 주에도 다시 로또를 살 것이다. 그때 머릿속으로는 로또를 살 때마다 떠올리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러다가 혹시 정말로 당첨되는 거 아녀? 

이 마지막 문장이 나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이유이리라.



*로또 관련 정보 : 이 글에 나오는 우리나라 로또 관련 정보는 나무위키의 ‘로또6/45’항목을 참조하였다.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 복권 당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한 줄 요약을 잘 했으나, 너무 판에 박힌 듯해서 우습다). 1995년 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