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엄마, 우리 키울 때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별로 안 힘들었는데. 몰라 기억 안 나. 애들이 다 그렇지, 뭘 그리 유난이니."
낼모레 일흔 친정 엄마를 만나 하소연하지만 도움이 안 됩니다. 그저 예쁜 손주들이 뭐가 힘드냐고 합니다. 너희들 키울 때 기억은 안 난답니다. 분명 힘든 시절도 있었을 텐데, 좋은 기억으로만 남은 걸까요.
"절 위한 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또한 다 지나가. 그냥 버티고 견뎌!"
선배 엄마들을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터널 같은 시기를 이미 통과한 여유 있는 모습으로, 앞다투어 조언(이라 쓰고 '오지랖'이라고 읽히는)을 해댑니다. 터널 안에 있는, 아니, 터널 앞에 선 채 한 걸음을 내딛기 직전인 이에게는 위로도 위안도 되지 않습니다.
"진짜 애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말도 말아요. 우리 애는 지난 모고에서 몇 등급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같은 처지의 엄마들을 만난다고 마음 편치 않습니다. 내 새끼 얘길 하는 자체가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내 무덤에 삽질을 하는 기분입니다. 힘든 얘기 하나 하면 '내가 더 힘들다' 열 개가 이어집니다. 누가 더 힘든가 배틀이 벌어집니다. 입시 얘기에 공통 화제가 시작되나 싶다가도, 진짜 정보는 요리조리 피해 말을 빙빙 돌립니다. 듣다 보면 은근 자랑을 하고 있는 걸 계속 들어주는 건 더더욱 곤욕입니다.
누군가에게 속엣말을 하고 나면 마음속 짐이 덜어지는 게, 자식 얘기는 해당되지 않는 걸까요. 혼자 삭히기엔 버겁지만 그걸 꺼내어 남들에게 보이는 건 겁이 납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대한민국의 '고3'으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할 것이고, 가장 적은 양의 잠을 자게 될 겁니다. 가장 깊은 한숨과 가장 묵중한 부담을 품은 1년일 겁니다. 물론 이걸로 모든 것이 끝은 아닐 겁니다. 가장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극한 공부의 시절이 될 거란 의미겠지요.
모두가 그 시절을 겪어 왔습니다만, '내가 고3 때는...'이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입니다. 시험은 어려워졌고 할 일은 많아졌으며 한눈팔 거리도 다양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의 병이 깊은 여러 수험생도 많습니다. 다 정신력 문제라고요? 그런 말씀 어디 가서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고3이 되면 못 할 텐데, 못 갈 텐데, 못 놀텐데.'라는 (본인 피셜) 정당한 근거를 대며 연말 일정을 잡는 모습에 한숨이 납니다. 공부의 '공'만 꺼내도 눈빛으로 쏘는 총에 '으악!' 비명을 지릅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가장 힘든 건 본인이라는 거 압니다. 가장 걱정되고 불안한 건 수험생 자신일 겁니다. 하지만 엄마들도 힘이 듭니다.
갱년기 즈음일 테니 몸도 마음도 시들어 가기 시작하겠죠. 남편은 남편대로 양가 부모님들은 그들대로, 여러 결의 걱정들이 쌓여가고 있겠죠. 직장에 다니든 안 다니든 눈코뜰 새 없지요. 그래도 인생에서 중요한 첫 번째 시기를 통과하는 자식을 위해, '그래, 지금 해줄 수 있는 걸 해 주어야지. 최선을 다 해야지. 나는 엄마니까.'라는 심경으로 숨을 고르고 또 고르는 중입니다.
어디서도 해소되지 않는 마음을 글로 써 보려 합니다. 내년만큼은 나 하고 싶은 일들을 자제하고,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 마음을 다잡습니다. 남들에게 받을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을 글을 쓰며 나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시시콜콜 흉을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대신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보려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또는 그 반대였는지 회상해 보려 합니다.
기억을 따라 기록해 보겠습니다.
그 끝에는 나를 향한 위로와 위안이 있기를, 아이를 향한 뾰족한 마음이 뭉툭해 지기를, 시험장에 혼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에 울컥하지 않을 용기와 응원이 모이기를, 바라고 바라봅니다.
고3 엄마의 일기를 시작합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