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우리는

#1 통학

by 씬디북클럽




"대표님, 시간 다 되었습니다. 나갈 준비되셨습니까?"

"이제 양치질을 해야 하네. 먼저 내려가서 시동 걸고 기다리게."


"대표님, 아직 안 내려오십니까?"

"엘베 탔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도로 내렸네. 조금 더 기다리게."


"대표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잠시 눈 좀 붙이겠네. 라디오 좀 꺼 주게. 과속방지턱도 살살 넘고."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몇 시쯤 귀가 예정이십니까?"

"상황 봐서 다시 연락하겠네."






한 살 많은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말했습니다.


"학교에 태워다 주는 거, 그거 절대 하지 마세요. 저는 그 수발 다 들다가 스트레스받아서 암 걸린 것 같아요."


(좀 더 세게 말했지만 최대한 순화해서 적어 봅니다. 지인은 실제로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초기에 발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수술 경과도 좋고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이는 바라던 대학의 학과에 입학했고요,)


도보 10여 분 거리의 학교를 두고,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조금 먼 곳의 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자가용으로는 10여 분이지만, 대중교통 노선이 애매해 갈아타기 포함 30분 이상이 걸립니다. 못 걸어갈 거리는 아니지만, 음... 자고로 대표님들은 걸을 줄을 모르시는 것 같은... 쿨럭... 말을 줄이겠습니다.






매일 아침

'쾅'하고 차문 닫는 소리에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가 많습니다. 대표님 일정을 맞추는 운전기사가 된 기분입니다. 대표님 기분까지 맞추다 보면 도대체 저의 기분은 언제 누가 챙겨줄 수 있는 건지, 지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나 찰나의 후회도 종종 합니다.

교통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왕복 30분, 한 달에 스무 번이라고 하면 등교만 600분, 자그마치 10시간입니다. 게다가 학원 끝나고 모셔도 와야 하니 곱하기 2를 하고 일 년이면 곱하기 12를 하고 이대로 삼 년이면... 길바닥에서 줄줄 새는 저의 시간은 언제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는 건지, 알아서 다니라 할 걸 그랬나 막심한 후회도 자주 합니다.


아...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하는데 도통 잘 되지가 않네요. 이럴 때는 저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상책인 듯싶습니다.






집과 아주 먼 곳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니 21km가 넘는 거리에 있군요. 나고 자란 고장 인천의 남쪽 신도시에 살고 있던 저는, 저기 저 북쪽에 위치한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 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다음 기회에 알려 드릴게요.)


새벽마다 용달차를 운전하는 아빠의 출근 시간에 맞추기는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운전면허가 없었고 또 다른 자차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대신 제게는 스쿨버스가 있었습니다.


인천 여러 지역의 난다 긴다 하던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열세 대의 통학버스를 운영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한 학기당 (1년인가?) 10만 원 상당의 이용료를 내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연수구의 버스는 12호차였던 건 정확히 기억납니다.


매일 아침 6시 50분, 아파트 단지 앞에 스쿨버스가 도착합니다. 비몽사몽으로 서 있던 학생들이 좀비처럼 올라탑니다. 앞 좌석부터 3학년들이 앉습니다. 알게 모르게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12호차에는 유난히 3학년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버스 절반도 넘게 3학년이 앉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2학년이 앉습니다. 2학년은 저들 맘대로 앉습니다. 주로 맨 뒷좌석을 점유하는데 그 역시도 그때그때 다를 때가 많습니다.


1학년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제일 첫 정류장에서 타는 두어 명 만이 간신히 앉을 수 있습니다. (일부러 첫 정류장에 태워다 주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1학년은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간을 서서 갑니다. 서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음을 그때 배웠습니다.

스쿨버스 안으로 행운 여신이 가끔 방문할 때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선배가 어떤 이유로 타야 하는 정류장에서 타지 않았다면, 그 자리는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후배가 앉을 수 있습니다. 암묵적인 룰입니다. 그 선배가 정차하는 마지막 정류장까지 안 타길 바라고 바라며 빈 좌석 앞쪽을 사수합니다. 제일 마지막 정류장까지 좌석이 비어 있으면 그제야 앉을 수 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밉니다. 눈을 좀 붙이려는 순간, 앗, 출발했던 버스가 다시 멈춰 섭니다. 으악, 그 선배가 택시를 타고 버스를 뒤쫓아 왔군요. 스쿨버스에 올라탄 선배는 본인 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앉았던 후배는 (속으로) 울면서 일어섭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버스에서도 선배는 짱이니까요.


서서 가는 요령도 가지각색입니다.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엎드리거나 손잡이를 잡는 게 일반적입니다. 좌석 팔걸이에 살짝 기대다가 선배의 헛기침에 몸을 곧추 세웁니다. 아주 가끔씩 통로 바닥에 앉는 학생들도 있는데, 통로도 워낙 학생들로 가득 차기에 그마저도 다 타지 않았을 경우에나 가능합니다. 앉아서든 서서든 대부분 잡니다. 아니,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잡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는 12시면 스쿨버스 열세 대가 교문 앞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각자 아침에 타고 왔던 버스에 오릅니다. 좌석 배치는 물론 아침과 같습니다. 다른 점은 아침보다 조금 맑은 눈들로 차에 오른다는 것 정도. 그 역시도 고속도로에 오를 즈음이면 모두들 잠이 듭니다. 앉아서든 서서든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학생들이 또 잡니다. 새벽 1시, 아침에 탔던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 후면 다시 같은 정류장에서 만날 겁니다. 같은 눈으로 같은 표정으로, 흐리멍덩하게 좀비처럼 말입니다.


만약 스쿨버스를 놓친다면... 시내버스 세 번을 갈아타고 1시간 반 이상 소요하며 학교에 도착합니다. 당연히 지각입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스쿨버스를 따라잡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내일 아침에는 7시 40분에 나갈 계획이네. 진행에 차질 없이 준비하게."



앗, 오늘 밤도 대표님의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막상 7시 35분에 먼저 나가려고 하면, 조금 늦게 가도 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시간까지 계산해 정확히 7시 40분에 대기해도, 엘베나 화장실 등 변수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밖에 없는 대표님 추우실까 더우실까 조금이라도 편히 등교하시라는 간절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겁니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할 게 당연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대표님이 짱이니까요.


문을 '쾅'닫고 내리시면 '콰콰콰쾅' 하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라고 생각해야죠. 내가 뿌린 씨앗이려니, 내가 판 무덤이려니, 내 운명이려니, 해야죠. '쿵'하고 내려앉은 마음을 '끌어올려'(배우 김호영 톤으로) 낼 뭔가를 계속해서 찾아야겠죠.


이제 딱 일 년만 버티면 된다, 해야죠, 뭐.


... 대표님은 동생분과 세 살 터울이 납니다만...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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