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시점
몇 주간 미친 듯이 싸웠다. 내가 그렇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했고, 싸움은 항상 도돌이표였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난 엄마가 시키는 걸 하느라 인생을 낭비했어. 왜 그렇게 나를 못 믿었어? ⇒ 니가 언제 내 말을 들었는데? ⇒ 이거 저거 다 했잖아 ⇒ 아무런 결과가 없었으니 그건 내 말을 들은 게 아니다 ⇒ 그게 엄마 말을 들은 게 아니면 도대체 뭔데? 난 대체 뭘 한 건데? ⇒ Repeat again]
그로부터 1년가량 엄마를 만나지 않았고, 2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가 내 방에 쉬러 오면 난 사촌언니네 집으로 피신을 갔다. 엄마에게 장문의 카톡으로 내 마음 상태와 신체 반응 상태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구했다. 나의 그런 반응이 엄마에게도 큰 충격이고 상처였을 테지만 그녀는 감사하게도 잘 협조해 주었다. 연락을 최소화하고 얼굴을 부딪히지 않았다. 내가 살기 위해 그랬다. 그러면서 심리상담을 받았다. 3년간의 심리상담 과정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첫 1년은 속에 쌓여있던 것들을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그게 1년이나 걸린 게 신기하지 않은가). 빈 의자에 엄마가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보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때도 순식간에 머리로 열이 치솟고 피부가 울그락 불그락 해져서 너무 힘든 나머지 중간에 멈춰야 했다. 붉은색 헐크가 된 기분이었달까.
3명의 상담선생님들 중 두 분이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여성분들이었다. 그분들의 따뜻한 위로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한평생 엄마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다 (엄마는 대문자 T, 7남매의 장녀이자 경상도 사람이다. 그녀에게 애정표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년 차에 들어서서야 조금씩 차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담선생님들의 가이드에 따라 쏟아낼 만큼 쏟아내고, 다친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엄마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아주 조금씩 마음이 열렸고, 엄마를 잠깐씩 마주해도 피부가 뒤집어지지 않는 단계에 도달했다. 상담선생님께서 이제 상담을 종결해도 될 것 같다고, 이제는 나 혼자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깊은 감사를 표하고 상담을 종결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멘탈 폭격 사건이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7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한 달 후에는 애정하던 직장을 잃게 된 것이다. 나의 이 예민한 몸뚱이는 가장 아끼던 두 가지를 한큐에 잃게 된 상실감을 버티지 못하고 아주 제대로 맛이 가버렸다. 심장이 제 멋대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