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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강 Cindy Kang Feb 05. 2020

왜 하필 뉴욕인데? (1)

지하철 후진 건 인정. 그래도 뉴욕일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

뉴욕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곳을 정말 꿈의 도시로 불러도 되는 것인지, 낭만이 넘치는 도시라고 불러도 되는 곳인지, 우리는 스크린 도어 없는 뉴욕의 지하철역에 가만히 서서 잠시 생각하게 된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 도시의 지하철 트랙에서 운 나쁘게 미친놈을 만날 확률도 높을뿐더러, 그놈이 혹여나 나를 트랙으로 밀어버릴 확률, 발을 헛디뎌 떨어지게 되면 트랙 밑의 바퀴 벌레들과 쥐들의 몸뚱이 위에 내 몸을 뉘어야 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나는 뉴욕이 정말 싫어.



부모님이 혼자 뉴욕에서 적응을 하고 있던 나를 보러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쯤 방문하셨을 때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찬양하던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나는 뉴욕이 정말 정말 싫다고."라는 말을 들었다. 뉴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인지 설득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부분은 나도 살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지, 절대 좋아하게 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뉴욕이 너무 싫어서 울고 싶었던 적들이 많다. 홈리스(길거리에 앉아 계시는 분들)가 말 걸까 봐 무서워서 아무 노래 가사를 웅얼거리면서 빠르게 걸어간 적도 있다. 속으론 엉엉 울고 있었는데 생존본능인지, 말도 안 되는 스피드로 나는 홈리스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폴댄스를 추는 취객이 아슬아슬하게 내 코앞까지 다가와 숨을 뿜는데도 그저 경직된 상태로 등에 땀만 한 바가지 흘리고 있었던 적도 있다. 헤이 프리티, 니하오, 아리가토. 이건 일상이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Brooklyn Bridge Park 



하지만 현실이 그것뿐인가? 뉴욕의 현실은 생각한 것처럼, 아니 보이는 것처럼 끔찍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이 곳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문화들, 영화관 카페 외에 사람들과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엄청난 선물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뉴욕은 집순이가 집에 있는 걸 아까워하게 만든 신기한 곳이다.  








1::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생각들


한국에서 지낼 때, 그리고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지낼 때, 나는 많은 규칙들에 따라야 했다. 혼자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을 때부터 '그건 나쁜 거야, ' 혹은 '그건 좋은 거야, ' 같은 의견들이 자연스레 입력되어 그게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아주 혼쭐나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뜻은 물론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어른들의 말이 전부 다 틀린 것도 아니지만 일단 그들의 마음에 안 들면 난 나쁜 아이(혹은 나쁜 사람)가 된다. 내가 신경 안 쓰면 그만이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계속해서 어른들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겉모습을 가꾸며 내가 정상인임을 증명해야 하고, 개성이나 나만의 매력, 나만의 소신에 대한 생각은 딱히 해볼 기회가 없다. 여기저기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은 눈치들 속, 내 생각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그저 닥치고 따라야 하는 암묵적인 사회의 약속들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 Feedback, 2020. Cindy Kang.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옷을 입든 신경을 1도 쓰지 않는 문화가 있다니. 이게 웬 천국인가? 내 의견을 궁금해하고, 나의 유니크한 점들을 뽐내달라고 하질 않나. 칭찬을 하면 "Thank you!"라고 해야 하고, "Do you sing?(너 노래 잘해?)"라는 순수한 질문이 가능한 곳이 존재한다니. 사실 이런 말을 한국에서 들었으면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눈을 굴리며 좀 생각해봤을 것 같다. 처음엔 쭈뼛쭈뼛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만의 장점을 탐구하게 하고,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울타리 속에 있는 양들은 울타리를 열어준다고 바로 도망가지 않는다. 겁이 많은 나는 극과 극의 문화로 가서 네 맘대로 하고 살아-라고 해도 완전하게 맘대로 할 순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문화 차이로 갈등하다가 나는 중간 정도의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아직 눈치를 달고 살기 때문에 가끔 '해서는 안될 것 같은' 행동을 하면 심장이 뻐근히 아프긴 하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지내며 난 마음 편할 만큼 내가 하고 싶은 걸 했고, 입고 싶은 옷을 입었으며, 성격대로 행동했고, 싫은 건 싫다고 했고, 그게 사실해도 괜찮은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나름의 밸런스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그건 한국에선 못하는 일이야?


물론 아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난 아직은 어렵다. 길거리에서 영어로 말을 하면 시선이 따갑게 꽂힌다. 어른들이 많은 곳에서 짧은 반바지나 무릎 나온 운동복을 입고 있으면 왠지 신경 쓰인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은 간혹 내 인사에 대답을 해주지 않지만 항의할 수는 없다. 언니들과 오빠들은 여전히 어렵고, 사회에서 나이 밝히는 건 피한다. 내 다음 목표는 어느 장소에 상관없이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Stereotypes, 2018. Cindy Kang.



뉴욕에는 한국과 다르게 여러 문화에서 온 사람들, 여러 종교, 여러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학교를 다닌 사람들 다니지 않은 사람들, 한국인을 처음 보는 사람들, 도시가 싫은 사람들, 밤낮이 바뀌어 있는 사람들, 직업이 3-4개가 있는 사람들, 인권단체에 속한 사람들, 강아지 산책 전문가 등. 안정적이라고 하는 한 가지의 인생 루트를 따르기보다, 다양성 속에 열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주변 환경이 뉴욕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다.


꽉 닫혀있던 나에게 (조금 격한) 노크를 해준 뉴욕이 고맙다.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들이 존재하는 도시에 던져지면 처음엔 정신이 없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여러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흐려진다. 정신없이 알록달록한 세상 속에서 둘러볼 것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내 취향을 알게 된다. 뭐가 좋은지 싫은지, 뭐가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잘 맞고 잘 맞지 않는지. 1 아니면 2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베스트를 고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점점 머릿속에 뚜렷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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