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먼 Jan 03. 2021

인터뷰를 통해 배운 것들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프로젝트 <시네필의 초상>을 시작한 것은 2018년 3월이었다. 회사 생활에 지쳐 탈출구가 필요했고 영화는 소중한 한 줄기 빛이었다. 어느 영화 모임에서 주최한 작은 영화제에서 <백패킹>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든 강진엽 감독을 만났다.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현장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됐을까? 영화 세 편을 연출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했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그를 인터뷰하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듣고 싶은 답이 있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언젠가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꿈은 점차 요원하게 느껴졌다.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미련에 이 인터뷰가 불을 질러줬으면 했다. 아직 네게 기회가 있다고, 다시 한 번 도전해보라고. 인터뷰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았던 셈이다. 꽃샘 추위가 한창이던 이름 봄날, 문래동의 카페에서 강진엽 감독을 만났다.


미리 준비한 인터뷰 질문도 없었다. 영화와 시네필, 이 두 단어만을 손에 쥔 채 문을 두드린 셈이다. 인터뷰라기 보다는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서울까지 올라와 영화를 찍게 되었는지.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감사하게도 사적이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주셨다. 


제가 이런 이야기도 했나요?


핵심 질문이 없이 떠들다 보니 변죽만 울리고 끝난 것 같아 걱정도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 강진엽이라는 사람의 삶의 궤적과 생각의 바다를 탐색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 무엇을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나의 성공과 실패는 무엇인가.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것들. 영화를 경유하여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인터뷰로 해볼 수 있는 작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반 동안 일곱 분이 나눠주신 이야기는 무지개처럼 다채로웠다. 안평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상과 기대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당시 기자 지망생(현재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이었던 춘희님과는 영화를 매개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민에게는 개인의 성장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고, 메릴봇님과 행동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긴 시간 수다를 떨었다. 별책부록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서점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솔지님과는 삶의 색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저마다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을 나눠주셔서 여러 독자들께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런 게 영화의 마법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처음 뵙고 인터뷰를 부탁드린 분들도 많았다. 짧은 한두 시간 사이에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귀중한 시간을 내주시고, 부족한 인터뷰어를 믿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일곱 분께 감사하다.


이걸 사람들이 읽을까?


<시네필의 초상> 프로젝트는 2인조 그룹으로 진행했다. 인터뷰이들의 사진을 찍어준 포토그래퍼 동규가 없었다면 밋밋한 콘텐츠가 되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다니면서 동규와 콘텐츠의 형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눴다. 두 시간 가량의 녹취를 정리하다 보니 분량이 제법 길었다. 글을 여러 편으로 나눠서 올릴까? 영상으로 찍는 게 낫지 않을까? 여러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으로 찍을 경우 카메라를 의식해 짧은 시간 내에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한 호흡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편으로 나눠서 읽히게 하고 싶지 않았고 요약하거나 생략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동규와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정보와 인터뷰의 주요한 예상 주제에 대한 생각을 서로 공유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 동규는 인터뷰 내용을 중간중간 엿들으며 사진을 촬영했다. 단순히 인물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인터뷰의 주제와 내용, 인터뷰이의 인상과 성정, 대화를 나누는 시간과 공간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구도를 잡았다. 후보정 과정에서도 정리된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였다. 그런 동규의 노력 끝에 <시네필의 초상>이라는 프로젝트 제목에 걸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2019년 1월 솔지님의 인터뷰 이후 공백기가 길었다. 주변에서 물어보면 회사 일이 바빠졌고 동규도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중단하게 됐다고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인터뷰이 섭외에 대한 고민이 컸다.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 프로젝트 서문에 쓴 것처럼 10대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네필을 만나보는 것이 본래의 취지였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 대상을 알아보거나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주변에 많은 20~30대 위주로 섭외를 하게 되었다. 그마저도 섭외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점차 흐지부지 되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방식, 콘텐츠의 형식과 제작 방법도 중요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원동력은 동기부여와 실행력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마감도 없으니 하고 싶은 마음, 열정이 중요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목적이나 주제 없이 '변죽을 울려가며' 인터뷰하는 방식 나름의 장점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보였다. 영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좋은데, 그래서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일까? 이 인터뷰를 왜 하는 걸까?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나의 질문은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있나요? 였다, 라고 서문에 썼다. 정말 궁금했던 걸까. 어쩌면 그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좋은 인터뷰이들을 만난 덕분에 결과적으로 콘텐츠의 내용은 만족스러웠지만 좀 더 뾰족하고 솔직한 핵심 질문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소한 인터뷰>는 내가 품은 질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답변이 궁금하다는 단순한 욕구를 컨셉화하여 뚝심있게 밀고나간 콘텐츠다. 거리의 가게들을 인터뷰하는 잡지 <브로드컬리>는 서점, 빵집, 카페, 식당과 같은 작은 가게를 시작하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목표가 분명하니 콘텐츠의 결이 달라진다. 창업 비용, 손익 분기점, 월 평균 매출, 위기의 순간 등 필요한 정보를 과감하게 질문한다. 


하고 싶으면 일단 시작해보는 것. ENFP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를 잘 못하는 건 큰 단점이다.) 다만 꾸준하게 나아가려면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면 새로운 물음표를 이정표 삼아 나아가고 싶다. 물론 모험의 종착지는 여정이 끝날 때까지 절대 알 수 없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7 선명하지 않으면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