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블랙독>을 추억하며
'학교 선생님은 실력이 부족하다.'
담론의 장에서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몇 가지 암묵적인 가정에 의해 뒷받침 된다. '①학교 선생님의 수업은 대체로 입시적합성이 부족한데, ②교사의 실력은 수업의 입시적합성을 기준으로 측정되며 ③그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기간제 선생님은 실력이 더 부족하다.'는 주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위 가정에 몇 가지가 추가되어야 한다. 즉, '④임용고시는 교사 수업의 입시적합성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인데, ⑤기간제는 임용고시에 실패한 사람들의 비자발적인 근무 형태이다.'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용고시 합격'은 '기간제'와 연결될 때는 실력의 근거가 되지만, '교사'와 연결될 때는 정년의 보장으로 수업을 연구하지 않는 나태함의 출발점이 된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노력과 실력을 폄하하거나, 학교에서 실제로 직업정신이 결여된 교사의 존재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학교 현장에서든 위 가정들이 모두 타당하기란 쉽지 않으며, 따라서 '누가 더 좋은 교사인가?'의 문제는 '사교육vs공교육' 혹은 '정교사vs기간제'의 단순한 구분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드라마 <블랙독>은 기존의 학교 드라마에서는 부수적으로만 다뤄졌던 '교사 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위와 같은 단순한 대립구도를 해체하고,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좋은 교사의 조건을 찾고자 한다. 교사의 입장에서 학교는 여러 가치가 투쟁하는 공간이다. 입시와 교육이 부딪히고 행정과 수업이 충돌하며, 전통적인 교권에 대한 향수와 학생사회에 대한 존중이 미묘하게 공존한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동료 간의 위계와 견제로 가득한 것은 물론이다.이렇듯 복잡한 교사들의 사회를 보고 있자면, 좋은 선생님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교사의 자리에서 입시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하는 교사만이 좋은 교사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누가 좋은 선생님일까?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교사가 놓인 환경의 복잡함을 통해 학교 교사의 현실을 변호하는 데 머무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서로의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학생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조명함으로써 결국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대입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밀어붙이든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주장하든 선택의 중심에는 학생의 삶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수능 위주 수업과 대입과 동떨어진 수업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모두 정당성을 잃는다.)
결국 이 드라마는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던 고하늘(서현진 분)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교사가 되는 것이 직업과 지위의 문제라면, 선생님이 되는 것은 존재의 문제다. 다시 말해 고하늘이 좋은 선생님인지 아닌지는 그녀의 임용고시 합격 여부나 학교와의 계약 형태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그녀를 선생이라 불러주는 학생들 앞에서 스스로가 부끄러움 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려 애쓴 만큼 그녀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다.
소위 공교육의 붕괴라는, 이제는 오래된 현상을 바라보며 붕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던 것인지 따지며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보여준 섬세한 논증을 다시 단순하게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당신네들도 어느덧 각자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평가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면서 끝내 내 앞날을 걱정해주고, 본질을 바라보며 공존하자고 가르친 소중한 선생들의 얼굴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