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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브러리 Jan 21. 2016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2014)

자유로운 예술가와 성실한 직업인, 박찬욱


영화 <박쥐>의 스틸컷


이건 전락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전락의 쾌감은 있지만 뛰어오르는 쾌감이 있어서는 안 되죠.


박찬욱 감독이 본인의 영화 <박쥐>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박 감독은 <박쥐>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작품 속에 '전락'의 담론을 녹여내는 그는, 역설적이게도 좀처럼 상승기류에서 내려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필모그래피를 채운 열 편 남짓한 영화들을 하나같이 예술적이다. 비록 세간의 평가가 모두 긍정적이진 않았다. 허나, 나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전락'이란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미세한 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혹, <박쥐>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락의 경험을 만끽하려 했던 건 아닐까. 그래, 오래도록 상공에 머물렀으니 추락의 짜릿함이 그리울 수도 있겠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은 평론가 이동진이 쓴 책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와 책의 영역을 끊임없이 종횡하며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어째보면 영화평론가라는 협의보다는, 문화평론가라는 광의가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평론가로서 이 같은 인터뷰 전집을 출간했다는 사실이 영화학도로써는 상당히 기쁜 소식이다. 이하 <그 영화의 시간>에는 총 세 명의 감독을 취재한 내용이 담겨있다. 최동훈, 이명세, 그리고 박찬욱이다.


위에서 '취재'라고 표현했으나, 이보다는 '심도 깊은 토론의 장' 정도가 적합하다. 명품 감독들이 충무로에서 긴 세월 동안 다져온 내공이 있다면 이동진 평론가는 오랜 시간 폭넓은 문화를 마주하며 단련해온 예리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아닌,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용호상박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동진 평론가가 '못 뚫는 게 없는 창'을 들고 돌진할라치면, 세 감독이 '어떤 것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로 태연스레 막아내는, 모순(矛盾)적인 인터뷰들이 펼쳐진다.


<박쥐> 스틸컷 중 박찬욱 감독의 모습


세 감독 모두 대단했지만, 사적인 호감도로 인해 단연 박찬욱 감독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는 영화만 훌륭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언변까지 타고난 입담꾼이었다. 자신만의 영화관 혹은 세계관이 뚜렷했으며, 각각의 작품들에 본인이 사유했던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예술가였다. 그냥 아무런 이유나 타당성 없이 한 장면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테마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부여된 설정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근거를 마련해두는 치밀함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볼 때에 은밀히 숨어있는 메타포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쏠쏠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공간의 경우, '어떻게 하면 다른 작품에서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가 제게 제일 중요합니다. (중략)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봉준호 감독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식으로 상상해봐서, 그들이 하지 않을 것 같은 방향으로 찾아나가는 식이라고 할까요. (p159)


개인적으로 위 내용이 가장 박찬욱을 잘 묘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박 감독 스스로 말한 것이지만). 박찬욱은 철저하게 마이너 지향적이다. 그는 주류를 거부한다. 어째 보면 평범한 것에 트라우마라도 있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탈적인 성향이 강한데, 이러한 기질은 거의 모든 작품에 짙게 배어 있다. 자신을 미국 B급 영화광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박찬욱은 끊임없이 기존의 전통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진보적인 영화인이다. 그의 정치성향은 과연 어떠할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이러한 영화적 특색은 아쉽게도 모든 대중을 매혹시키진 못한다. 일부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작품이 아닌 감독을 향해 힐난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거북스럽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또 그의 과감한 표현방식에 열광하고 심지어 숭배를 마다하지 않는 '광신도'들도 적지 않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상극된 세간의 평가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중들의 피드백은 곧 흥행의 여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감독으로써의 수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제 영화들에 대해서 '왜 극 중 상황이 항상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냐'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대답은 '그래야 효과가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나머지 요소들을 단순화해야 특정 요소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인물을 좀 더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어야 질문이 분명하게 떠오르는 거죠. (p137)



영화 <스토커>의 배우들과 박찬욱. (출처, 20세기폭스코리아 트위터)


이동진_ 강렬한 영화적 성향을 앞으로 바꾸지는 않으시겠죠?
박찬욱_ 제 취향을 수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전 창작을 통해 저의 일천한 경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니까요. 교제 관계, 활동 범위 등 저의 편협한 실제 관계에서 벗어나 자극적이고 낯설고 드라마틱한 것에 대한 동경이 많습니다. 저와 비슷한 일상의 인간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들을 관객으로서는 즐겨보는데, 그런 작품을 직접 만드는 것에는 전혀 흥미를 못 느껴요. (p43)


박찬욱을 표현하는 숱한 수식어 중에는 '고급 변태'라는, 다소 거북한 단어도 있다. 이런 어휘 역시도 작품에서 표현되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기인한 것이다. 덕분에 박 감독은 실제로도 응큼한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했을 게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그것은 단순하게 영화적 발상에 한하는 것이며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진짜 변태라 해도 어떤가. 그가 창조해내는 것은 단순히 저질적 이미지들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담론들이 예술적으로 승화되는 '고급'적인 순간들이다.





박찬욱의 영화관에는 다양한 문학들이 깊게 개입한다.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을 각색하여 <박쥐>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작품 곳곳에서 이미지나 대사로 문학적 키워드를 끌고 가는 부분들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엄청난 씨네필로 유명한 박 감독이기에, 도대체 책까지 읽을 시간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좀체 알 수 없다. 어찌 됐건 그의 작품들이 단순히 오락에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한 번 더 곱씹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독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독서를 통한 폭넓은 사유는 그의 영화들을 보다 단단하고 밀도 있게 만들어주는 값진 원료가 된다.


20년 동안 열 편의 영화로 채운 필모그래피가 과연 최후에 어떻게 완성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박찬욱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현존 최고의 감독이란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이 사실에 이견이 없다. 항상 새로운 시도로 신선함을 제공하는 그를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박찬욱의 '전락'을 목격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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