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파 프롬 홈
유구한 역사를 가진 출가의 기록들은 대개 미성숙했던 무언가가 성숙해지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오딧세이』)에서 반지를 끌어안고 떠나는 프로도의 여행(『반지의 제왕』)까지 많은 주인공들은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되고 고생해서 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의 서사 전개는 더 이상 돌아올 집이 없는 디스토피아적 영화들과도 차이점을 가지게 되어 있던 집이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는 비교적 안온하고 보장된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스파이더맨의 출가는 전통적인 방식의 여정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전통적인 방식보다 경쾌하게 진행된다. 학교에서 지도교사의 인도 하에 친구들과 함께 떠난다는 여행은 그렇게 오만가지 폭력적인 테러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 같은 것도 없이 마냥 신난 아이들의 용감한 분투로 가득하다.
플립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심정적 변화가 이렇게 그려졌는가 싶기도 하긴 하다. 영화 초반에 이미 퓨리는 우울해하며 이야기 한다. 플립으로 돌아온 건 좋은데 돌아오고 나니 스파이더맨 같은 쪼까난(!) 능력자조차 전화를 씹어대는 비참한 몸이 되었다고. 이미 전 세계의 반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플립을 겪었으니 그 플립이란 인류의 심리적인 무언가를 통째로 바꾼 무언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 플립 이전과 이후의 인류는 인터넷 이전과 이후의 인류와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사라진 자들의 미성숙한 외형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성숙으로 바뀌어 가볍게 지나간다. 작고 소심하던 브래드는 잘생기고 듬직한 남자가 되어 여심을 뒤흔들고 있고, 그것은 네드와 피터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는 식이 대표적이다.
차라리 플립보다는 미스테리오가 상징하는 아이언맨의 상실이 영화 내에서는 더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아마도 주인공인 피터가 플립을 통해 사라졌다 돌아온 탓이 클 것이다. 그들이 사라졌던 시간은 말 그대로 사라졌던 일이기에 다시 그 시공간으로 돌아온다 해도 그들의 그 시공간은 공백인 채로 툭 떨어져 이어진다. 사라진 자들 본인들 보다는 사라진 자들의 빈 자리를 바라보아야 했던 자들의 충격이 훨씬 크며, 플립으로 인해 사라진 자들의 자리를 바라보는 남은 자들의 마음은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훨씬 자세히 등장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플립이 아닌 그 이후의 이야기로 바로 넘어간다. 아이언맨이 그의 생을 바쳐 일구어낸 인류 절반의 회귀는 그만큼 그 자신의 죽음을 극적이게 만들고, 다시는 그런 영웅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사람들을 뒤흔들게 된다. 그리고 그 빈틈을 교묘하게 노리는 것이 바로 미스테리오다.
미스테리오가 사용하는 환각의 기술은 사실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다. 미스테리오 자체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무언가라기보단 야심가이자 공상가인 일반인에 불과하다. 그의 기획력과 연출에 대한 열정이 마치 마블 코믹스의 기나긴 여정 동안 열광을 불러일으키며 전지구적 대중들의 마음 속에 하나같이 유사한 영웅상을 새겨넣었던 것과 닮아있다. 아이언맨 이후 스파이더맨을 없애고 새로운 대중의 영웅이 되겠다는 미스테리오의 허상은 자본주의를 만난 사이비종교와도 같은 모습이다. 그가 진짜 영웅일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삽입된 그의 비열함을 반증하는 다양한 장면들과 함께, 돈을 휘두르던 토니 스타크와는 달리 돈을 쫓아 휘둘리는 미스테리오 팀의 모양새는 그가 끝내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죄의식 없이 파괴하고, 그를 통해 구원을 만들려 한다. 미스테리오의 폐허 속 구원은 이미 폐허를 맛본 이들이 쉽게 믿을 만 하지만, 그렇다고 오래 믿을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스파이더맨에게 된통 혼이 나지 않았더라도 그의 최후는 알만 한 것이다.
미스테리오의 몸서리치는 질투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의 후계자는 스파이더맨으로 공고해지는 것 같다. 연인과의 히어로 특색을 살린 데이트도 그렇지만, 대놓고 정체가 까발려져버린 피터 파커의 특성도 그러하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은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시민들인 것이다. 물론 정체를 밝히기까지의 과정은 서로 다르지만 피터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두고 보건데 이렇게 미스테리오가 몸 바쳐 피터의 정체를 질러주지 않았다면 피터는 영영 스스로 밝히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결론은, 우와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