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교향곡

칠드런 액트

by 말 넘기

영국의 작가 중 살아있는 와중에 이미 거장의 반열에 들어 선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영화 《칠드런 액트》의 원작 작가 이언 매큐언이다. 그의 여러 작품이 이미 영화화되어있는데, 《어톤먼트》가 그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이번의 《칠드런 액트》가 그 대표작 중 하나로 추가될 전망이다. 원작도 탄탄한데 바로 그 작가가 각본에도 참여한 영화는, 섬세한 연기의 결을 가진 배우들과 만나 영국의 고지식한 베이지톤-영국 영화에 특히 자주 보이는 색 중 하나로, 뭔가 깔끔한 베이지색 벽에 고풍스러운 그림 하나 걸려있거나 예쁜 테이블에 잘 정돈된 화병 하나가 놓여있을 것 같은 분위기, 피오나의 피부색과 법원의 내부 풍경과 피오나가 극 중 내내 듣는 클래식 음악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을 배경으로 문자에서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원작과의 차이점은 결말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애덤이 다루는 악기를 바꾼다는 등의 소소한 것들뿐이다. 그렇기에 만약 영화를 흡족하게 본 감상자가 있다면 원작을 다시 읽어도 그 감동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추천할 수 있겠다. 원작은 조금 더 사설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피오나나 애덤의 이미지를 바꾸는 사설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극 중에서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고 있는 이미지가 소설 속에서는 문자로 표현되기 때문에 영화와 소설을 함께 감상하는 것은 서로의 미장센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드문 작품에 해당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원작과 그것을 재창작 한 서로 다른 종류의 이야기는 무엇이 더 먼저 세상에 출판되었는지를 가지고 선후를 따질 수는 있어도, 그것의 종속적 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니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덮어두고 이제 영화 그 자체에 대해서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렇다고 영화의 특징인 영상과 소리 그 자체에 대한 초점이라기보다는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을 가로지르는 여러 극단들, 혹은 이분법들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영화는 극단의 비교와 대조로 가득하다. 여성과 남성, 노쇠해 가는 자와 삶의 앞길이 창창한 자, 기혼자와 미혼자, 부모가 되지 않은 어른과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자녀, 이성과 감성, 법과 의학으로 대변되는 과학과 영혼과 사후를 논하는 종교, 삶과 죽음, 관계의 회복과 단절 등의 극단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마치 피오나와 애덤이 각각의 개념을 대표하는 화신처럼 그려진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과 태도에서 묻어 나온다. 이렇게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신선하고 강렬하다. 애덤이 어째서 그 나이 또래의 누군가가 아닌 피오나에게 깊은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알법한 이야기이다. 애덤의 고정된 세계와 피오나의 느려져가는 세계는 서로 너무나도 달랐고, 특히나 애덤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와중에 피오나에 의해 강제로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애덤은 그의 신념이 고집일 수도 있으며 그의 부모 또한 진정으로 그의 죽음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받게 된다. 애덤의 알껍질이 깨지고 그때 가장 먼저 인지하게 된 것이 피오나였던 것이다.


사실 미성년자의 수혈에 관한 판결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명백한 것이었고 피오나에게도 애덤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결국 수많은 케이스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그것이 유별나지게 된 계기는 그녀가 애덤의 생을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애덤이 그녀에게 자꾸만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애덤은 수많은 시와 편지들을 보내고 몰래 피오나를 따라다니게 된다. 피오나는 그 시도들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애덤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 하지만 그녀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되지는 않는다. 애덤은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피오나의 삶에 자신을 편입시키길 바란다. 둘이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공상이 대표적이다. 피오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거운 세상사와 강제로 분리된 상태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신경써주기를 바라는 애덤의 마음은 가볍다고 보기엔 힘든 것이다. 실제로 그는 피오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를 바라는 소망을 일부 가지고 또다시 재발한 병에도 불구하고 수혈 거부를 택한다.


애덤이 시도했던 짧고 가벼운 키스는 극단들을 연결하고 싶은 다리였으나 미약했다. 그것이 힘을 얻기 힘들었던 까닭은 사실 이분법이 무너져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수식어를 둘러쓰고 있지만 결국은 둘 다 방황하는 영혼일 뿐인 그들은 상호 간의 삶을 바꾸기에는 동력이 부족했다. 사랑이야기의 묘미 중의 하나가 그 감정이 서로를 얼마나 바꾸어놓는 것인가를 지켜보는 것이라면, 이것은 상호 간의 사랑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계기가 없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착은 일방적이었으며 사랑이라는 성숙한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 끝나버렸다.


피오나는 그녀의 중요한 연주회의 앙코르에서 그녀가 원래 그녀의 파트너와 계획했던 곡이 아닌 애덤과 함께 불렀던 곡을 부르고 연주하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애덤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애덤의 죽음은 그녀를 뒤흔들어 폭우 속에 뛰게 하고 비참하게 돌아와 울게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삶을 산산 조각낼 수는 없다. 그녀는 도리어 이 기회를 통해 남편과 다시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피오나에게 남은 애덤의 크기와 애덤에게 남은 피오나의 크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법인 아동법은 더 이상 아동이 아닌 애덤을 지켜줄 수 없다.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는 사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가차 없이 어른으로 분류되고,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떠나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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