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박두만(송강호) 3화

박두만 '주의'보 1호 발령

by 시네피에

연기, 과하게 해석하기


"그래 가지고, 여자들이 좋아하겠냐 인마"
- 용의자 조사 中, 박두만.



[3]화에서는 '용의자 조사 장면'을 '과하게' 해석해보겠습니다. [2]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배우 송강호가 표현한 박두만의 '주의 집중/분산/이동'입니다.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박두만의 주의가 어디에 집중되어있는지, 어디로 분산되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해서 집요하고 디테일하게 물고 늘어지기 위해서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의자 조사 장면

용의자 리스트 작성을 위해 사진을 찍는 박두만


사람 가리는 박두만

박두만이 용의자를 조사하는 경찰서 장면은 몽타주 기법으로 연출되고 있으며, 여러 용의자 후보들이 짧은 시간 동안 등장합니다. 박두만은 각각의 용의자들을 대할 때마다 태세 전환을 보여주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집중 정도를 달리하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용의자 후보들을 대하는 박두만의 반응에서도 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박두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객들은 더욱 풍부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됩니다. 몽타주 기법을 통해서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방식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습니다.




장발남

첫 번째 후보는 지저분한 장발 남입니다. 삐딱한 자세와 태도를 보이는 장발남에게 박두만은 위협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과거 연애사를 묻거나, 외모를 지적하는 등 거칠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장면에서 박두만의 주의는 100% 장발남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고정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시종일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지 않고 장발남에게만 '초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숱 없는 소심남

두 번째 후보는 안쓰럽게도 머리숱이 부족한 소심남입니다. 박두만은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기를 두드리며, 진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자기를 두드리다가 먹통이되 난감해하는 박두만을 소심남은 슬쩍 쳐다보다가 작은 터치로 타자기를 작동시킵니다. 이러한 소심남의 행동이 거슬렸는지 박두만은 그를 노려보며 성을 냅니다.


숱 없는 소심남을 타박하는 박두만


*이 장면에서 박두만의 주의는 70% 정도가 '타자기'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0% 정도가 소심남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타자기가 먹통이 되는 순간 100% 타자기에 주의가 집중되는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주의에서 벗어난 소심남이 타자기를 작동시키자 자연스럽게 박두만의 주의가 이동하여 결국 소심남에게 100% 집중되는 과정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얻을 수 있는 인물의 성격 단서는 바로 '독수리 타법'과 '기계치', '열등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두만은 타자기의 자판을 외우지 못한 사람이며, 동시에 타자기의 동작원리나 작동법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심한 듯 타자기를 작동시키는 소심남의 반응을 보면, 일반적으로 누구나 알법한 동작원리를 박두만이 모르고 있다는 것 또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박두만은 이런 방면으로는 '문외한'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방증하듯 박두만은 소심남에게 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또한 이 장면에서는 오브젝트, 즉 소품을 다루는 배우 송강호의 행동선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동시에 주의를 1% 미만으로 두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완전히 무의식적이거나 습관적으로 보일 만큼 자연스럽게 보이며, 그만큼 박두만이라는 형사가 담배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등장하겠지만, 배우 송강호가 소품을 다루는 방식은 이처럼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느껴지기에 인물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양복남

세 번째 후보는 범생이처럼 반듯하게 차려입은 양복남입니다. 박두만은 조곤조곤하게 예의 있는 목소리로 사건의 정황을 설명하고 진술을 받습니다. 양복남 역시 천천히 피해자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진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박두만의 태도는 앞의 2명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으며, 손바닥이 보이게 제스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양복남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두만의 주의는 100% 양복남에게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0/50의 비율로 타자기와 양복남에게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력 분산에서 박두만이 양복남을 그다지 유력한 용의자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박두만의 인물 퍼즐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박두만은 사람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을 가리는' 것입니다. 조금 더 과하게 유추해보자면 박두만은 의외로 '품격'을 추구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양복을 차려입고 멀쩡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신도 비슷한 수준을 갖춘 사람처럼 격식을 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메라 울렁증

용의자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클로즈업으로 카메라를 만지는 박두만의 손이 나타납니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대다가 자신의 향해서 찰칵하고 사진을 찍어버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 장면 역시 박두만이 기계를 다루는 데에 능숙하지 않다는 인물의 성격 퍼즐이 추가되는 장면입니다.]


*배달부와 영수증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조사하던 박두만 옆으로 배달부가 음식을 꺼내놓습니다. 박두만은 영수증을 요구하고, 배달부는 미리 말하지 않았다며 얼버무립니다. 둘의 실랑이가 시작되자 뒤쪽에서 바라보던 다른 형사가 자신의 영수증을 쓰라며 건네주지만, 박두만은 배달부에게 계속해서 핀잔을 주려합니다. 배달부는 박두만과 형사가 이야기하는 동안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립니다.


용의자 조사 중 배달부와 실랑이를 벌이는 박두만

*이 장면에서는 박두만의 주의가 옮겨가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물론 배우 송강호는 이 과정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용의자+타자기)->(진술서+배달부)-> (배달부) -> (배달부+형사)-> (영수증+배달부)-> (영수증+형사)-> (배달부) 순으로 주의가 분산되고 이동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재밌는 추론을 해보자면, '인간이 한 번에 두 가지가 넘는 곳에 주의를 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입니다. 박두만은 다른 형사에게 따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배달부에 대한 주의를 상실해버렸고, 그 틈에 배달부는 슬그머니 자리를 떠버렸습니다.


+앞 장면의 담배를 다루는 모습처럼, 배우 송강호는 수저를 손에 들고 배달부를 지적하는 모습, 꾸깃한 영수증을 손으로 훑어 펴는 등 그 물건과 행동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그 물건들이 손에 익었는지를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해주어 인물에 대한 신뢰도와 매력을 더더욱 높이게 만듭니다.



#갈무리

[3]화에서 '과하게' 해석해본 박두만의 모습들을 정리해보면, 박두만은 비록 시골 아재지만 형사로서 가져야 할 기민한 주의집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의자 별로 주의집중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사람에 따라서 주의분산의 정도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빈틈이 존재하는 구간도 매우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타자기나 카메라를 능숙지 못하게 다루는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점들에서 더욱 '인간미'가 느껴지고 입체적인 모습이 강조됩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주의가 분산될 때는 두 가지가 한계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배우 송강호가 주의 집중/분산/이동의 과정을 세밀하게 잘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화에서는 '롱 테이크 샷'으로 유명한 '논두렁 장면'을 '과하게' 해석해보며 배우 송강호와 박두만 형사를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살인의 추억/박두만(송강호)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