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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pr 09. 2018

[120bpm]투쟁 : 연대의 힘

어떻게 죽을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된가

120 bpm 120 battements par minute


감독     로뱅 캉필로

출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아르노 발로아

개봉일   2018. 03.15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1년. 액트업 파리(ACT-UP : 1987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지고 프랑스에서는 1989년에 조직된 액트-업은 에이즈 운동 단체다.)의 활동가들은 에이즈의 확산에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와 제약회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회원들은 둘로 나뉜다. 감염자이거나 비감여자이거나. 나땅(아르노 발로아)은 비감염자이지만 액트업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단체에 가입하고 이곳에서 만난 감염자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션의 건강은 악화된다. [120bpm]은 이들의 사랑 이야기이자 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2018년의 에이즈는 여전히 불치병이기는 해도 감염 되었다고 시한부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 병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감염자들은 약을 복용해도 조금의 진전 없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비참하게 망가지는 육체 앞에 속수무책으로 에이즈라는 병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고가의 치료약은 치료가 아니라 구토와 설사를 줄뿐인 상황에서 감염자들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HIV바이러스가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와 정부의 무관심과 먼저 싸워야 했다.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서 무지했고 정부와 언론은 동성애자들의 병으로 에이즈를 인식시켰다. 8-90년대 에이즈의 기하급수적인 확산은 병에 대한 인식 부재와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액트업의 활동가들은 같은 목표를 위해 싸우지만 싸움의 방식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우선순위와 방법들이 모두 다르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의장면은 감독이 이들의 투쟁에 얼마나 현실적으로 깊숙이 접근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그는 실제로 ‘액트업’ 멤버로 활동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대사의 연결은 마치 실제 상황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서 편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120bpm]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지만 뛰어난 각본가이자 편집기사로서의 경력이 이번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자들이 ‘생’을 위해 싸우는 여정을 그리는데 있어 각 인물들의 개인사를 투쟁의 과정에 어떻게, 어디까지 들어갈 것인지, 로뱅 감독은 감상적으로 접근해서 낭만적으로 포장하거나, 계몽적인 메시지로 영화를 도배하지 않고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적절하게 배합했다.

액트업 파리의 중추적인 인물 션은 열여섯 살, 첫 성관계를 통해 에이즈에 감염됐다. 덤덤하게 이 사실을 고백하는 션의 얼굴에는 그 어떤 원망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해 그는 물론이고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에이즈 감염을 알리는 것이 곧 동성애 커밍아웃이었을 만큼 에이즈에 대해 무지한 시대에 액트업은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편견에 두려워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한부 인생이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에 함께 대항하고 연대한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라고 한 오노 요코의 말처럼 액트업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지만 동성애자가 대부분인 그들의 활동은 신문지면의 한 줄로도 알려지기 힘들다. 그들은 에이즈에 대한 의학 정보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그들은 매주 모여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토론하고 이를 토대로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학교에 가서 콘돔을 나눠주고, 제약회사에 가서 가짜 피를 뿌리고 전단지를 뿌려도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그 누구보다 액트업에 적극적이었던 션은 병세가 악화되면서 액트업의 활동에 회의를 가지게 된다. 십년동안 그는 열심히 싸웠고 이제 죽음의 문턱 앞까지 왔다.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미래가 있는 삶을 위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절박한 가능성은 삶을 절실하게 만든다. 어떻게 죽을 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결부되는 것이다. 기사 한줄 나기 힘들었던 액트업의 활동이 TV뉴스에 까지 나오는 것을 션은 병원 침대에서 지켜본다. 그러나 희망은 병의 악화를 따라오지 못한다.


고통으로 진통제 없이는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육체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에 자신의 살아있음을 발악하듯 증명한다. 인간의 욕망은 이토록 강렬하다. 죽음의 그림자에 한쪽 발을 담근 앙상한 션의 몸을 어루만지는 나땅의 손길은 그래서 더 아련하고 슬프다.  

감염을 당한 사람도 감염을 시킨 사람만큼의 책임이 있다는 션의 말에 나땅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지 않은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국가는 질병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개인은 자신의 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둘은 균형을 이루고 함께 가야한다. 다만 국가는 각 개인의 무게를 달리 재면 안 된다. 건강의 권리에서 동성애자-이성애자, 여성-남성, 가난-부에는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액트업은 말하고 있다.


감독은 액트업의 투쟁이 오직 그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공감하게 만들었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고 내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희망으로 치환하는 것은 역시 연대의 힘이다. 삼십 년 전 시작한 싸움이 성취한 결과는 단지 신약개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증명해냈다는 것이다.  

 

션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의지로 부활하고 극장을 나오는 관객의 가슴에는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의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


2017년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120bpm]이 이번 주에 서울에서는 막을 내릴 것 같다. 혹시 보기를 망설였던 사람이 있다면 주저 말고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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