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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pr 30. 2018

[몬스터]혐오가 불러 온 범죄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 #1. 샤를리즈 테론

MONSTER 몬스터 2003년. 

감독    페티 젠킨스 

출연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티나 리치 


신작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선택에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지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이에 따라 제작사들은 스타 마케팅을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는데 ‘스타 마케팅’을 뛰어넘어 대체 불가한 카리스마와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배우들은 그리 많지 않다. 등장과 동시에 대중과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는 운 좋은 배우들도 있고 단역을 거쳐 주연까지 영화 한 편, 한 편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자기만의 영역을 다지는 배우들도 있다. 영화 한 편으로 스타로 급부상하기도 하고 영화 한 편으로 경력에 마침표를 찍기도 한다. 늘 누군가에게 ‘선택’당해야 하는 ‘배우’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직업이다.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어?’ 이미 익숙한 배우이지만 영화 한 편으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완전히 바뀌는 작품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샤를리즈 테론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지만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두고 모델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말없이 걷기만 하는 모델 일이 지루해 연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으로서 꽤 규모 있는 영화들에 출연하지만 그녀가 맡은 배역들은 배우로서의 그녀가 필요했다기보다 키 크고 늘씬하고 그림처럼 예쁜 얼굴이 필요했던 배역들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남자 배우들 옆에서 악세서리처럼 빛나기만 할 뿐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는 쇼 비즈니스에 있어 엄청난 장점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취급되기도 한다. 완벽한 미모로 먼저 주목을 받은 배우들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헐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로서 샤를리즈 테론 역시 자신의 배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몬스터]라는 영화를 선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듬해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쓴 것이다. 



영화는 7명의 남자들을 총으로 쏴 죽인 연쇄 살인범 에일린 워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샤를리즈 테론이 에일린 워노스를 연기했다. 에일린 워노스는 정신분열자 아버지, 자식들을 버린 어머니, 9살 때부터 자신을 강간한 아버지의 친구, 불우하다 못해 최악의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13살 때부터 몸을 팔기 시작한 이후로 34살에 살인으로 붙잡히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었고 이는 그녀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는 철저히 에일린의 시선에서 그녀의 증언을 토대로 그녀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그녀의 삶에 접근한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사랑’이라는 에일린의 고백은 그녀를 더욱 외로워 보이게 한다. 사랑받기 위해서 그녀가 했던 행동들에 대한 대가는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들로부터의 정신적, 육체적 강간이었다. 망가질 데로 망가진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다 느끼고 죽기로 결심한 날, 에일린은 셀비를 만난다. 이제 겨우 미성년자 티를 벗은 레즈비언 셀비에게서 전에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애정을 느낀 에일린은 셀비와의 관계가 그녀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셀비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 에일린은 다시 한 번 철저히 망가진다. 


어느 특정한 대상에 대해 가지는 혐오는 그 대상을 일반화하고 자신의 혐오를 합리화시키려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찬 남자 손님을 받았을 때 그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정당방위로 총을 뽑아 든 에일린은 이후에 돈을 주고, 성을 사려는 중년의 남자들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어 마땅하다고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 시킨다. 철저하게 자신을 기만하고 배신했던 남자들에 대한 기형적인 혐오가 그녀를 ‘몬스터’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 범죄들이 ‘묻지마 살인’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 적대적인 태도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한 번 생긴 혐오는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 온갖 억지를 갖다 붙여 증오의 크기를 증식시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첫 살인 이후, 경찰에 잡힐 까 겁이 난 에일린은 매춘을 그만두고 평범한 직장을 갖고자 하지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람은 없다. 평생 남자들을 상대해 온 그녀지만 그녀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순진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자아이들에게 가슴을 보여주면 그들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 어리석었던 어린 시절의 그녀와 다름없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사람들은 창녀가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무시하지만, 우리가 매일 밤 어떤 마음으로 일을 나가는지는 모를거야.’ 라고 에일린은 말한다. 창녀라는 이유로 그녀가 당하는 수모는 참으로 끔찍한데 남자들은 그녀의 면전에 욕을 하고 주먹을 날리고 멸시의 시선을 보낸다. 그녀를 돈을 주고 산 이상, 그들에게 에일린은 막 대해도 되는, 그래야 마땅한 창녀인 것이다. 남자들을 죽이고 갈취한 돈으로 연인 셀비와 함께 고급 식당을 찾은 에일린 역시, 자신이 돈을 지불 한 만큼 자기 마음대로 행패를 부리려한다.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지는 세상에서 살아온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꼭 성이 아니더라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가지는 인간의 저질스러움을 우리는 의외로 많은 곳에서 목격하고 경험한다. 내가 월급을 주는 사람이니까, 내가 비싼 돈을 내고 이 옷을 구입했으니까, 내가 돈을 냈으니까 화를 내고 되고, 내가 돈이 더 많으니까 욕을 해도 된다는 의식은 존재의 가치를 재화로 매기는 천민자본주의의 부끄러운 민낯일 것이다.  


에일린은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불우한 유년시절과 현재를 보면 그 말에 상당부분 동의하게 되지만 결국 그 말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나쁜 놈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이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시궁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저지른 일들이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결국 죄책감으로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좌)영화 속 샤를리즈 테론/(우)실존 인물 에일린 워노스

한 인생의 끝없는 추락을 보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세상을 향한 증오와 그 증오만큼 사랑을 원하는 애정결핍의 창녀가 느끼는 불안과 슬픔, 기쁨과 절망을 인상적으로 잘 전달했다. 정말 샤를리즈 테론이 맞나? 싶을 만큼 그녀는 철저히 망가짐으로서 오히려 영화에서는 완벽하게 빛이 났다. ‘여신’이라고 불릴 만큼 완벽한 외모의 그녀가 서른이 넘은 거리의 여자를 연기하기 위해 살을 찌우고, 눈썹을 밀어버리고, 망가진 피부 표현을 위해 특수 분장을 하고 이에는 보철을 끼웠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변신하는 것이 배우의 책무라고 하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배우들을 향한 미디어와 대중의 외모 평가가 잔인하리만큼 혹독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체중조절은 자기 관리의 기준이 되고, 자기 관리는 배우의 중요한 덕목이 된다. 그녀의 외모 변신도 인상적이지만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단독 주연으로 한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카리스마와 연기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분명[몬스터] 전후로 나뉜다.) ‘그래도 여잔데...’하는 조금의 핑계도 버리고 온전히 영화 속 인물이 되었다가 광고나 행사장에서는 다시 ‘여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열광한다.  

 

[매드 맥스]의 퓨리오사를 연기하기 위해 자진해서 삭발을 했고, 곧 개봉하는 [툴리]에서는 아이 셋을 둔 육아에 지친 엄마를 연기하기 위해 다시 살을 찌웠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 변신에 먼저 주목을 하지만 결국 연기에 감탄하며 극장을 나오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출연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40대 중반의 그녀가 앞으로 어떤 영화에서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관객으로서 기대하며 그녀의 현명하고 용기 있는 작품 선택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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