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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Apr 27. 2018

[네 멋대로 해라]숨가쁜 젊음

[기획] 거장들의 첫 영화.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

연출   장 뤽 고다르 1930년생 

출연   장 폴 벨몽도, 진 세이버그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영문 포스터

1959년은 영화사에서 특별한 해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사랑] 그리고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가 모두 1959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등장이 곧 ‘누벨 바그(새로운 물결)’였다. 시네마떼끄에서 영화를 보고 ‘까이에 뒤 시네마’라는 영화잡지에 영화 비평을 쓰던 젊은이들은 전과는 다른 문법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들의 시작은 가히 혁명적이었으며 이들은 전설이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영화를 만드는 모습을 자신의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상한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60년대 프랑스 씨네키드들에 대한 애정을 [몽상가들]이라는 영화에 그대로 담았다.)  이제 곧 아흔을 바라보는 고다르는 지금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가 쓰고 연출한 영화는 단편, 장편,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모두 백편을 넘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영화는 그의 초기 작품들, 그러니까 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환점이 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 전환점의 의미와 가치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콘텐츠의 영상을 접하는 ‘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날 일이 드문 요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어디선가 봤고 이미 체험한 감각들. 그것이 수십 년 전의 것이라고 해도 인간의 감각을 시대 순으로 놓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는 만들어진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보아도 새롭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좀도둑 미셸(장 폴 벨몽도)은 니스에서 차를 훔쳐 파리로 가던 중 경찰을 살해하게 된다. 친구에게 자기 몫의 돈을 받아 미국인 기자 지망생 파트리샤(진 세이버그)와 함께 이탈리아로 도망가는 게 그의 계획이지만 친구와의 만남은 번번이 어긋나고 파트리샤는 그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그를 향해 좁혀오고 파트리샤의 밀고로 그는 경찰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네 멋대로 해라]는 내러티브의 개연성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독백인지 방백인지 대화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인물들은 쉬지 않고 말을 하는데 영화 말미에 미셸이 얘기하듯 그들은 각자의 얘기만 떠들어 댈 뿐, 그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개연성을 가지고 내러티브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고다르는 스스로를 에세이 작가라고 밝혔다. 인물들의 대사가 그들 행위의 정당성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고다르 자신의 생각을 배우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아야 할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존재한다. 이는 주로 파트리샤의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데 그녀는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 ‘슬픔과 무 사이에서 나는 슬픔을 선택할 것이다.’를 인용하기도 하고, ‘내가 자유롭지 못해서 두려운 것인지 두렵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어.’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녀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 견습생이라서가 아니라 유한한 삶에서 나이 들고 죽어가는 것이 두려운 젊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것’아니면 ‘저것’일 수밖에 없는 선택에 대해 파트리샤는 계속해서 고민한다.  


반면 미셸은 단순명료하다. 미래를 고민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돈과 차가 필요하면 훔치면 되고, 파트리샤와 함께 있을 때는 오직 그녀와 섹스하기만을 원한다. 그가 도둑질을 하는 데에는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되겠다거나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실수든 사고든 경찰을 죽였는데도(여기에 대해서도 감독은 설명이 없다. 죽였다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에게서 윤리적 갈등, 죄책감은 읽히지가 않는다.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오직 파트리샤 뿐이다. 파트리샤가 자신의 밀고를 미셸에게 고백했을 때, 미셸은 도망가지 않고 ‘이제는 좀 쉬고 싶다.’며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 둘은 미래를 고민하면서도 오직 현재를 살고 싶은 청춘의 양면과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 제목 ‘숨 가쁜’ 역시 청춘을 대변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 50년대에 이미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우고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내는 미셸의 행동을 통해 그가 험프리 보가트와 자신을 동일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멋대로 해라]는 미국 영화의 아이콘으로서 험프리 보가트를 인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헐리우드 느와르-영화범죄자인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는-의 구조를 가져오기도 했다. 구조는 느와르이지만 이를 담는 형식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야외에서 촬영 된 장면을 보면 행인들이 동원된 엑스트라 배우가 아니라 진짜 행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처럼 완벽하게 짜여진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파트리샤가 작가 파블로스코를 인터뷰하러 간 장면에서 기자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은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생각나게 하는데, 고다르는 지가 베르토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심지어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만들어 정치적 선전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픽션으로 만들어진 감동을 거부한다.”라고 했던 베르토프는 카메라의 렌즈와 자신의 눈을 동일시하고 진실만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고다르가 핸드 헬드를 이용해 현장감을 살리고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찍은 것을 보면 그가 베르토프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네 멋대로 해라]가 처음 나왔을 때 평단에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영화는 가장 혁명적이고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가 되었고 후에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문화적 인용들과 개연성 없는 대사와 장면들은 수수께끼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발견, 해석되고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는데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될 것이다. 


 

추신 

1. [네 멋대로 해라]의 원안은 프랑수와 트뤼포가 썼다. 그는 영화감독이기 전에 엄청난 영화광으로 자신의 영화 [아메리카의 밤]에서 ‘영화가 삶보다 중요하다.’고 까지 얘기했다. 고다르와는 절친한 사이였으나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사이가 멀어졌다. 

2. 감독의 카메오 출연 : 신문에 실린 미셸의 지명수배 사진을 보고 경찰에게 신고하는 행인역할은 고다르가 직접 연기했다. 

3. 파블로스코는 프랑스 영화 감독, 장 피에르 멜빌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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