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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May 15. 2018

[브런치 무비패스] 트립 투 스페인.

영국 아재들의 잡학다식 여행기

트립 투 스페인 The trip to Spain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0년 영국 북부 레스토랑 투어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2017년 스페인으로 떠난 두 남자,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트립 투 스페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잡지사에서 이번에는 스페인에 가달라는 군. 같이 갈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 통화의 전화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전 영화들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식도락 여행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의지하고, 각자 자신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대화는 그들이 맛보는 스페인 음식 이상으로 감칠맛 난다.


두 배우가 작품으로 처음 만난 것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002년 영화 [24시간 파티 하는 사람들]에서였다. 주연이었던 스티브 쿠건은 이후 헐리우드로 진출하면서 배우로서의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각본가로서도 인정을 받게 되고, 단역으로 출연했던 롭 브라이든은 영화보다 스탠딩 코메디와 TV/라디오 호스트로 코메디언으로서의 재능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경력을 영화는 그대로 가져오는데 두 배우가 각자 자신을 연기하는 만큼 영화는 픽션임에도 중년의 두 배우가 겪는 실재적인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관찰 예능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한 사람이 성대모사를 하면서 상황극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상황극에 참여하고 이들의 성대모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데 이들이 인용하는 인물들(로저 무어, 마이클 케인,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말론 브란도, 우디 앨런 등등) 성대모사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연기 연습을 위해 거울 앞에서 이들이 보냈을 시간과 노력을 짐작케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하루 일정이 끝나고 각자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나뉜다. 이들의 대화는 음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과 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문학적인 텍스트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시인이자 작가 로리 리(스티브는 로리 리의 ‘한 여름 아침의 산책’을 지침서처럼 들고 다닌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동물 농장’과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여정을 인용하면서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박학다식하고 유쾌한 대화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각자의 커리어에 대해 농담을 던지면서도 냉철한 조언을 하고 그것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들의 이런 태도에서 서로를 라이벌이 아닌 동료로서 인정하고 아끼는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연륜을 느낄 수가 있다.  

[트립 투 스페인]는 연애, 자식, 일 모두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 스티브의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데 영화 중간 중간 드러나는 이들의 개인사는 영화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섞여있다. 중년에 들어선 두 배우는 믹 재거와 찰리 채플린을 예로 들며 50대에 들어선 자신들은 인생의 황금기에 있다고 위로한다. 사회적으로 안정기에 들어섰고 운동과 식단으로 자기 관리도 잘 해서 그들의 말처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맞구나, 고개가 끄덕여 지면서도 말과는 다르게 확신 없는 눈빛에서 그들의 불안이 느껴진다.


두 사람의 수다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을 때마다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스페인의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여행 중에 맞닥뜨릴 수 있는 일탈, 유명 관광지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의 유쾌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만은 않은 대화와 남부 스페인의 풍경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트립 투 스페인]은 두 배우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다섯 번째 호흡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윈터바텀은 [수탉과 황소 이야기]를 촬영 할 당시, 스티브, 롭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단순히 이 둘의 대화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만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처음 가졌고 그의 이런 생각은 2010년 영화로 실현된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 일주일간 함께 여행을 하고 언제 볼 때 되면 보자 말하며 쿨하게 헤어지는 두 남자의 다음 여행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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