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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May 23. 2019

록 스타, 음악이라는 가면을 쓴 메신저.

<벨벳 골드마인>1999. 조나단 리 마이어스의 화려한 등장.

벨벳 골드마인 VELVET COLDMINE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이완 맥그리거, 토니 콜렛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카메라 앞에 한 남자가 서고, 카메라 뒤에서 그를 보는 대중들이 그를 향해 환호를 보낸다. 일 대 수천수만의 만남. 남자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그를 알고 싶어 하지만 과연, 그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진짜 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1998년 개봉한 <벨벳 골드마인>은 1970년대에 유행했던 글램 록과 그 스타들을 통해 시대를 회상하고 있다. 197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과 전쟁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평화 운동은 다양한 문화적 결실과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이때의 런던 거리는 이러한 변화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시대와 비교해 보아도 파격적이고 과감한 스타일, 다양한 색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록 스타들(특히 글램 록)이 있다. 그 중에서도 데이빗 보위가 젊은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짙은 화장과 염색, 화려한 의상, 그리고 그 이상으로 특별한 아우라는 그가 데이빗 보위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대의 아이콘이자 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그의 캐릭터를 영화는 적극 모방하고 있다. 모방이라고는 해도 그 캐릭터가 가진 상징성이 너무도 큰 것이어서 주연배우의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당시 무명에 다름없던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가 데이빗 보위를 연상시키는 브라이언 슬레이드 역을 맡았고, 그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현재는 1980년대 미국이다.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 아서(크리스찬 베일)는 상사로부터 영국 락 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10년 전 암살 자작극에 대한 특집 기사를 써보라는 지시를 받는다. 달갑지 않은 과제다. 브라이언이 무대 위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연기를 할 때, 아서는 공연장에 있었다. 10대 아서에게 브라이언은 우상이자 욕망이고 또한 꿈이었으며 암울했던 청소년기의 위안인 동시에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아서는 브라이언에 대한 예전 기사들을 수집하고, 그의 주변 사람들, 브라이언의 전 매니저와 전처 맨디(토니 콜렛), 음악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커트 와일드(이완 맥그리거)를 만나 인터뷰해가면서 한때 세상을 뒤집어 놓은 락 스타였으나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브라이언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성의 자유를 외치던 70년대가 끝나고 맞이한 80년대는 화려하고 매혹적인 파티 후에 찾아오는 숙취처럼 공허하고, 한때 브라이언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의 현재는 (영화가 그리고 있는) 뉴욕처럼 어둡고 우울하며 황폐하기까지 하다. 그들 모두는 브라이언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에게 매료되었고, 그들 자신이 기억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그에게 버림받았다. 브라이언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그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그와 함께 한 시간들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서 아서는 자신의 과거를 또한 회상한다. 

대중들이 전에 본적 없는 화려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에서 양성애자임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브라이언을 TV로 보며 아서는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보수적인 부모에게 저 사람이 바로 나라고 외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분명 세상은 변하고 있고, 거리엔 브라이언처럼 꾸미고 다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그가 속한 세상에서는 브라이언을 모방하는 것은 금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서가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했던 반면 브라이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어릴 때부터 확실히 알았고, 그에게 욕망은 족쇄가 아닌 해방이었다. 록 스타를 꿈꾸던 꼬마는 댄디한 소년으로 자랐고,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그것이 물건이건 사람이건 자신이 가진 것, 성적 매력을 적극 활용할 줄 알았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순순히 굴복했다. 


브라이언은 무엇이 사람들을 열광시키는지, 스타의 본질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가면을 씀으로서 비로소 솔직해질 수 있다고 말한 그가 음악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이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을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하면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기성세대는 그를 경멸했다. 

브라이언은 ‘맥스웰 데몬’(데이빗 보위가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던 것처럼)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무대에 오르지만 브라이언 슬레이드라는 이름 또한 그의 본명은 아니다. 무엇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쫓는다면 맨디가 수년을 그와 함께 살고도 결국 그를 몰랐던 것처럼 우리는 절대 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시대의 아이콘이자 세상을 바꾼 개척자로 대중은 그를 기억하지만 진실은 그 역시 시대의 일부였을 뿐이고, 글램 록의 종말과 함께 그도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아서는 취재를 이어가면서 브라이언의 현재에 그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선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로서 극적인 퇴장을 연출했던(결국 실패 했지만) 그가 이제 80년대의 대중들이 열광하는 다른 마스크를 쓰고 여전히 록 스타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아서의 기사는 무산되면서 진실 또한 묻혀버린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바라본 70년대 글램 록 스타들은 모두 오스카 와일드의 후예들로서 금기된 것을 근사한 것으로 포장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화려한 타자의 삶을 곧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으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저주에서 축복으로 승화 시킨다. 결국 남는 것,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스타일이라는 것을 이들은 말한다. 

<벨벳 골드마인>은 브라이언 슬레이드라는 록 스타의 전기를 다룬 뮤직 드라마이자 미스테리한 사건의 실체를 쫓는 추리극이며 두 뮤지션의 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 풍자와 유머로 시대를 통찰한 코미디이기도 하다. 급격한 카메라의 움직임(줌인, 줌아웃, 패닝). 극적인 조명, 화려한 세트는 당시 뮤직비디오 촬영 기법과 많이 닮아있고, 한편의 꽁트와도 같은 장면들이 광고처럼 감각적으로 이어진다. 아무생각 없이 보고 있어도 브라이언 이노에서부터 루 리드까지 (데이빗 보위를 제외한-영화의 제목 역시 그의 노래에서 가져왔음에도) 당시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음악과 90년대 최고 뮤지션들의 음악, 그리고 시들기 직전의 만개한 꽃처럼 화려한 영상에 2시간동안 취하게 된다. 


주인공 브라이언을 연기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존재는 마치 외계에서 온 것처럼 캐릭터의 신비로움을 극대화하고 그 외에 다른 배우가 이 배역을 맡는 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해 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소위 유명세라는 것을 얻게 되지만 캐릭터의 강렬함 때문인지 꾸준한 작품 활동이 있었음에도 꽤 긴 시간동안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하다가 2005년 우디 알렌 감독의 <매치 포인트>을 통해 그의 섬세하고 위태로운 매력을 어필하고, 곧이어 TV드라마 <튜더스>에서 헨리8세를 맡으며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쌓아간다. 특히 <튜더스>에서 그의 카리스마는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빛이 난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많은 작품들을 찍을 테지만) <벨벳 골드마인>는 언제나 그의 대표작 리스트의 처음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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