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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10. 2019

'우리'이기 이전에 '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별기.

<결혼이야기> 2019.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


연출         노아 바움벡

출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좋은 이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변심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이별이든,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서로에 대한 악감정만 남아버린 지긋지긋한 이별이든, 이별은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고, 여전히 상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품고 있음에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이별은 어떨까? 외부에서 야기된 문제(혹은 비극적 운명)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차오른 문제, ‘우리’이기 전에 ‘나’로 살아가는 두 사람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별을 겪는 과정을 담은 영화 <결혼이야기>가 지난 27일 개봉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느끼는 부부사이의 현실적인 괴리감(결혼 생활 중에도 이혼 과정에서도)을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이별이란 관계의 마침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라는 것을 보여준다.

10년 전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한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현재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의 주연배우이자 감독으로 연극계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남들이 보기에 재능과 매력을 겸비한 이들은 완벽한 커플이다. 여전히 함께 살고(또한 함께 일하고 있으며), 둘 사이엔 아들도 있지만 이들은 이혼을 준비 중이며, 이혼을 준비 중이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었다거나 서로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기에 변호사 없이 서로 합의하에 원만한 이혼을 하고자 한다.


LA에서 들어 온 드라마 제의를 받아들인 니콜은 촬영을 위해 아들과 함께 LA로 거처를 옮긴다. 그녀가 동료의 추천으로 이혼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니콜과 찰리의 이혼은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니콜이 변호사를 찾아간 것은 남편 찰리를 공격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이혼과정에서 겪는 골치 아픈 절차들은 변호사에게 미루고자 해서였지만 뉴욕과 LA를 왔다 갔다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찰리는 이 모든 (그에게는 불필요한) 과정이 니콜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변호사 선임료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아들 헨리는 뉴욕을 잊고 LA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며 니콜은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LA에 머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경의 전조현상은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결혼생활을 잠식한다. 순간순간 문제가 있음을 느끼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별거 아닌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이 문제들은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결혼생활의 한계를 먼저 인지한 것은 니콜이다. ‘함께’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은 찰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가 성장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자꾸만 작아져서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자괴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가 좋은 남자라는 것도,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는 한 그 무엇으로도 인생을 합리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찰리가 열쇠고리처럼 쓰는 작은 커터 칼로 묘기(?)를 부리는 장면이 있다. 그는 칼날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작게 튀어나온 칼날은 결국 그의 팔에 상처를 내버린다. 자신의 커리어에만 집중한 나머지 니콜의 상실감에는 무심했던(별일 아닐 거라 치부하고 외면한) 그의 오만이 결국 파경의 씨앗이 되어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결혼이야기>가 흥미로운 점은 이혼 사유가 어찌되었든 두 주인공이 이혼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다. 변호사가 개입되고 그들(변호사)의 이해충돌까지 더해져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가능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날선 말들로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데, 아닌 척 무시하려해도 어쩔 수 없는 배신감으로 진심은 왜곡되고 과장되며 거기에 또 반응 하여 자신도 모르게 더 심한 말들을 내뱉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영화는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또한 관객은 누군가의 편에 서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지는 큰 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를 쓰고, 연출한 노아 바움벡은 이번 영화는 물론이고 전작들(<프란시스 하>, <위아영>, 등등)에서도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 지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주는 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를 준다. 거기다 탄탄한 각본,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편안하고 감각적인 영상이 재미와 감동을 더해준다. 


영화는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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