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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24. 2020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1. 핫 샷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페달을 밟는 만큼 적립금이 쌓인다. 이 돈으로 당신은 사과 한 알을 먹을 수도 있고, 감자튀김을 먹을 수도 있으며 원하는 만큼의 치약을 쓸 수도 있다. 당신의 아바타에 새로운 옷을 입힐 수도 있고, 유료 동영상을 시청할 수도 있다. 

당신이 타고 있는 자전거는 늘 같은 자리에 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 타기는 날씬한 몸매, 건강한 신체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이다. 당신은 회색 츄리닝을 입고,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일상이다. 이것은 근접한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그린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1의 두 번째 에피소드 ‘핫 샷’ 속 인물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방은 스크린으로 둘러 쌓여 있고, 기상 시간이 되면 스크린에 2D 태양이 떠오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 화면에서는 광고가 쏟아지는데 광고를 건너뛰기 하기 위해서는 적립금을 사용해야한다. 광고 시청은 의무이고, 모든 광고는 유료 동영상으로 이어진다. 주인공 빙(대니얼 칼루야)이 볼 수 있는 것은 화면 속 세상뿐이다. 진짜 바깥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약간의 적립금을 사용하면 원하는 대로 배경화면을 바꿀 수 있다. 진짜 나는 좁디좁은 방 안에 있지만 화면 속 아바타는 산 속이든, 해변가든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화면 속 아바타는 미소 짓고 있지만 빙은 표정이 없다. 매일 똑같은 일상, 페달을 성실히 밟는 이상 안전한 공간과 음식(자판기에서 나오는 배양된 음식이 전부라 할지라도)이 보장되지만 그게 전부다. 빙은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떤 즐거움도,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자전거 페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핫 샷’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유명해지는 것 뿐. 허나 이 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금액의 입장 티켓을 사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빙의 시선을 끄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 희망을 꿈꾸게 하는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그녀의 이름은 애비(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그녀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음색에 굳어져 있던 빙의 표정은 풀어지고, 생기 없던 눈에서는 빛이 반짝거린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을까, 빙은 그녀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보라는 제안을 하지만 그녀는 입장 티켓을 살만큼의 적립금이 없다며 웃어넘긴다. 빙은 자신의 적립금을 모두 털어 그녀에게 입장 티켓을 선물한다. 애비의 노래는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녀에게서 노래가 아닌 외모를 보고 노골적으로 그녀를 희롱한다. 인간의 가치는 유명해질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느냐(물론 매력적인 외모도 포함된다) 없느냐로 판가름 나고, 유명세는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 머뭇거리던 순진한 애비는 사창가에 팔려가듯 성인 채널 주인공이 되고 그녀를 사랑하는 빙은 분노한다. 

빙은 이 세상이 역겹다. 진짜 나무에서 열린 사과를 먹을 수도 없고, 진짜 흙 위를 걸을 수도 없으며 진짜 태양을 볼 수도 없는 삶, 약자(여기에서는 비만이라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조차 없는 사람들)를 모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인간이 수단으로서 밖에 이용되지 않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그의 삶에 유일한 진짜가 되어 주었던 애비의 맑은 눈빛은 사라지고 그녀의 껍데기만 성인 채널 안에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시 페달을 밟는다. 

필사적으로 적립금을 모아 ‘핫 샷’ 무대에 오른 빙은 자신의 목에 유리조각을 겨누고 자신의 분노를 폭발적으로 쏟아낸다. 아바타를 통해 야유를 보내던 관중(그들은 각자의 방에 있다)들은 이내 숙연해진다. 그리고 환호와 박수가 이어진다. 빙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을 비난하는 것으로 유명인이 되고 자신이 욕하던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그의 존재가 아이러니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가 세상을 풍자하면 페달을 밟는 우리들은 그의 블랙 유머에 피식하고 웃는다. 그게 전부다. 페달은 여전히 돌아가고, 우리들은 스타를 꿈꾼다. 그렇다면 스타가 된 빙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금 더 커진 방 안에서 조금 더 큰 화면으로 ‘가짜’ 숲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은 자신의 분노를 기억할까?

넷플릭스에서 시즌 5까지 방영된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 미러>가 묘사하는 세상은, 물론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보다 진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블랙 미러>가 보여주는 놀라운 상상력은 익숙하고도 낯선 즐거움과 두려움을 선사하며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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