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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n 28. 2021

[왓챠] 바그다드 카페

위기, 갑작스러운 변화, 그 마법!

https://www.youtube.com/watch?v=oCLpLWcX2cg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모래바람이 이는 삭막한 사막 한 가운데, <바그다드 카페>라고 간판이 걸린 허름한 카페 하나가 있다. 장사를 하고 있기는 하는 걸까? 의문이 들 만큼 모든 것이 낡고 지저분한 이곳, 당연히 손님은 없고, 바닥 위에 쌓인 먼지는 카페트만큼이나 두껍다.


모텔과 주유소를 함께 운영 중인 이 카페의 안주인 브랜다(C.C.H.파운더)는 항상 화가 나 있는 상태다. 땅이 부서져라 바닥을 때리는 그녀의 걸음에도, 크게 치켜 뜬 두 눈동자에도, 바람에 휘날리는 그녀의 가디건 옷자락에도 그동안의 울분과 짜증이 배어나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장사에 관심 없는 한량 남편, 아들(브랜다에겐 손자)이 울던 말든 피아노 건반만 두드리는 첫째, 언제나 놀 궁리만 하는 둘째까지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홀로 가게를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장 난 커피 머신을 찾으러 시내에 다녀 온 남편의 빈손을 보고 브랜다의 화가 폭발한다. 아무리 폭언을 쏟아 부어도 그녀의 화는 사그라들 줄 모르고 그녀의 폭언을 견디다 못한 남편은 자신이 한 일은 생각도 않고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다. 모래 바람을 맞으며 허탈함과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그녀 앞에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육중한 체구의 낯선 여인이 멈추어 선다.

한 여인은 눈물을 닦아내고 한 여인은 땀을 닦아낸다. 사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땀을 흘리는 여인이 방을 찾는다. 얼마만의 손님인가? 브랜다는 낯선 억양을 가진 이 손님을 반가운 미소로, 그럼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맞이한다. 이 새로운 투숙객의 이름은 야스민 문치그스테트너(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이다. 남편과 함께 미국을 여행 중이던 독일인인 그녀는 어째서 홀로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남편의 폭언, 다툼, 끝내 폭행까지 저지른 남편을 떠나 온 그녀의 얼굴에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남겨진 여인과 떠나 온 여인. 각자 인생의 최악의 시점, 이들의 만남은 인생 최고의 반전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 손님이 언제였는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낡고 지저분한 방에 들어선 야스민은 낯선 땅에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혼자가 된 자신의 처지가 서럽다. 게다가 자신이 챙겨온 트렁크 안에는 온통 남편의 물건뿐. 그녀는 여행을 계속 이어가야할지 독일로 돌아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방에 걸린 그림 한 점이 작은 위로가 되어준다.

브랜다는 아무래도 이 새로운 손님이 수상하다. 한물 간 극장 간판 화가 루디(잭 팰런스)와 나르한 분위기의 타투아티스트 데비(크리스틴 카우프만)가 한 가족처럼 카페에서 지내기는 해도 장거리 운전을 하는 트럭 운전수들이나 잠시 들리는 자신의 가게에 이름도 낯선 독일 로젠하임 출신의 여자가 차도 남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마을 보안관에게까지 연락해서 이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려 하지만 브랜다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미국을 여행 중인 관광객이라는 사실 뿐이다.


브랜다가 장을 보러 카페를 나간 사이 야스민은 카페 곳곳을 청소한다.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해서였을 수도 있고, 늘 화가 나 있는 브랜다가 깨끗해진 공간을 보면 조금이라도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쌓여있는 짐들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던 공간들이 야스민 덕분에 제 모습을 되찾게 되지만 브랜다는 자신의 동의 없이 청소를 한 야스민에게 대로한다. 브랜다는 이 모든 변화가 갑작스럽고 불편하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돈 된 책상 앞에 앉으니 처음에 느꼈던 불쾌감은 사그라들고 만족감과 평온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느낀다.

브랜다와 그녀 가족의 미소를 보면서 야스민 역시 자신감을 찾아가고, 그녀는 천천히 바그다드 카페에 스며든다. 누군가 “야스민”하고 부르면 그녀는 “내 이름은 ‘문치그스테트너 부인’입니다.”라고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정정했다. 그것이 그녀의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부인. 그녀 스스로 그 자리를 떠나왔지만 그녀 역시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청소를 하고, 간단한 마술을 익히면서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야스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생김새도, 언어도,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두 여인이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바그다드 카페는 생기와, 웃음, 평화의 조화를 이루어간다.

1987년에 만들어진 <바그다드 카페>는 1993년에 한국에서 개봉했고, 당시 꽤나 큰 주목을 받았는데 단순한 플롯과 극적인 갈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의 진동은 크고 오래간다. 위기는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거부하고 싶어서 방치해두어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처음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할 모습으로 변해버려 두려움을 더한다. 하지만 작은 행동, 그것이 주는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그 마법 같은 즐거움을 야스미과 브랜다라는 두 여인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가 <바그다드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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