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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Jun 10. 2021

[왓챠] 디 액트 THE ACT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THE ACT, 디 액트 (2019, 훌루)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이 세상엔 너와 나 둘 뿐이라고. 너는 나를 지켜주고, 나는 너를 지켜주는, 우리는 서로의 천사라고, 매일 밤 잠 자리에 들기 전 딸의 눈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엄마는 말한다. 모녀의 눈빛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가득하지만 이들의 거대한 감정에서는 뭔지 모를 썩어가는 애정의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다. 


2015년 6월,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스프링필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웃의 제보로 디디 블랜차드(패트리샤 아퀘트)와 그의 병약한 딸 집시 블랜차드(조이 킹)가 살고 있는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그 곳에서 자신의 침대에 쓰러져 죽어 있는 엄마 디디를 발견하는데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딸 집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도대체 이들 모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9년 미국 훌루 채널에서 8부작으로 방영 된 [디 액트]는 2015년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드라마로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어렸을 때부터 하반신 마비, 백혈병, 천식, 발달 장애 등등 갖가지 병으로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집시와 그런 딸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싱글 맘 디디, 이들 모녀의 가슴 아프고 따뜻한 이야기가 지역 사회 여러 매체에 공개되면서 이들은 여러 단체와 개인으로부터 후원을 받게 되고 심지어 그림같이 예쁜 집까지 선물 받게 된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모녀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칼에 맞아 죽고, 딸은 사라져 버렸다. 경찰은 이들 모녀의 페이스북에서 충격적인 메시지, “그년은 죽었어. 돼지 멱을 따고 그녀의 순진한 딸을 강간할거야. 엄청나게 비명을 지르겠지.”를 발견하고, 그 메시지가 포스팅 된 주소를 찾아간다. 위스콘신의 허름한 주택을 급습한 경찰은 그곳에서 너무도 멀쩡하게 두 발로 서 있는 집시와 그녀의 남자친구 니콜라스 고드존(캘럼 워시)을 발견하고 그들을 체포한다. 

사실 집시는 하반신 불구도 아니고, 백혈병 환자도 아니었으며 7살의 지능을 가진 장애아도 아니었다. 아픈 것은 오히려 엄마 디디였다. 디디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실제로 아프지 않음에도 아픈 척을 함으로써 주변의 관심을 받으려 하는 증상이 뮌하우젠 증후군이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병적 증상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환자로(물론 이 모든 사실은 디디의 죽음 후에 알려진 것이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딸 집시가 온갖 병들을 앓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어떤 때는 없는 증상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약물을 주입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경제적 후원을 누려왔던 것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라는 대로 따랐던 집시는 자신의 병명이 무엇인지, 어떤 약을 먹는지, 심지어 자신의 나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말을 따르는 것이 엄마와 그들 가족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집시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바깥세상, 특히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에 따라 집시의 반항 또한 늘었는데 그럴 때마다 집시를 침대에 묶어 두거나 때리는 등 엄마 디디의 학대 역시 심해졌다. 한 번 시작된 반항은 그 어떤 처벌과 구속 속에서도 제 갈 길을 찾았다. 온라인을 통해 바깥세상과 연결 된 집시는 니콜라스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와 함께 연애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싶지만 엄마 디디가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집시가 떠나도록 내버려둘 리 없다. 집시가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엄마가 없어져야 한다. 


자신이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한 니콜라스는 집시에게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을 빌어 그녀의 엄마를 죽이고 그녀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오, 나의 왕자님! 이때부터 집시에게 니콜라스는 백마 탄 왕자님이 되고 자신은 구조를 기다리는 공주님이 된다. 평생을 엄마의 보호,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살아온 집시. 엄마만 사라지면 자신의 삶이 디즈니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녀가 실제로 마주한 바깥세상의 현실, 니콜라스가 보여주는 하층민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 속에서 뭐가 맞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 그러니까 걸을 수 있음에도 사람들 앞에서는 휠체어를 타는 연기를 하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여길 줄 모르는, 윤리적 판단이 없던 집시는 나중에 체포가 되고 나서도 사람들을 속여 왔던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살해 도구를 직접 구입하고, 니콜라스에게 살해 방법을 지시 하는 치밀함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며 눈물을 흘리는 집시를 보면서 우리는 혼란을 느낀다.


 평생을 엄마의 조종대로 살아온 가엾은 소녀, 그녀가 받아 온 학대가 그녀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녀를 피해자로만 그려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었다. 대개는 감정 이입의 실패가 이야기의 실패로 이어지는데 [디 액트]는 오히려 그 반대다. 드라마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하지 않고, 그 과정(디디의 경우 타고난 성향, 가정 환경, 이혼, 주택 난, 등등)을 천천히 묘사할 뿐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는 충격적인 사건들, 블랜차드 모녀 친족 살인 사건도 그런 사건들 중 하나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디 액트]는 그 호기심에 대한 대답을 위해 극 전개를 자극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사실과 증언, 그리고 상상의 영역을 적절하게 배합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 가지는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한 수작이다. 

흑백으로 분명하게 나뉘는 이야기, 인물들이 아니기에 블랜차드 모녀를 연기하기가 꽤 힘들었을 텐데 디디와 집시역을 맡은 패트리샤 아퀘트와 조이 킹의 천사와 악마, 그 경계를 미묘하게 왔다 갔다 하는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추신

관찰자의 시점으로 줄곧 드라마를 보다가 마지막 장면, 수감된 집시가 감방 침대에 앉아 이미 죽은 엄마의 어깨에 상상으로 기대는 장면에서 뭔가 울컥한 감정,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엄마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도 엄마가 되는 애증의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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