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젊음

길 위에 선 청춘들을 그린 영화들

by cinejwk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최소한의 것만 챙겨서 훌쩍,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낯선 공간, 낯선 사람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일상에 지친 나에게 선물하는 휴식이나 잠깐의 일탈이 아닌 영원히 떠도는 삶. 매일이 모험이고, 순간이 영원이 되는 우연의 연속들. 미래는 너무 멀리 있고, 현재는 따분한 청춘에게 길 위의 삶은 사라지므로 해서 존재하고픈 모순을 정당화한다. 그 무엇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금이라도 당장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방랑객의 모습은 쓸쓸하고 그들의 자유는 공허해 보인다.


[영원한 휴가]에서 알리 파커는 새로운 공간에 가면 모든 것이 새롭고 호기심이 들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두려움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신호라고 했다. 어딘가에 익숙해진다는 것, 안정감을 느낄 때 불안해지는 아이러니. 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를 거부하는 알리는 그 역시 세상에 바라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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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항상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알리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이 갔던 장소들이 하나의 점이 되어 그 점들을 이으면 아마도 어떤 모양이 나올 테고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한다.

영원한 휴가, 짐 자무쉬, 1980.

16mm로 촬영 된 짐 자무쉬의 뉴욕대 영화과 졸업 작품으로 그의 첫 영화다. 알리의 발길대로 나열된 이야기는 심플하고, 학생 영화이기에 제작비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미장센과 카메라의 움직임도 소박하다. 주인공 알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받고 아파 보인다. 활기차고 화려한 뉴욕이 아니라 전쟁의 폐허와 같아 보이는 빈민가 뒷골목이 불협화음으로 흩어지는 ‘오버 더 레인보우’ 색소폰 연주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왔을지도 모르는 윌리는 경마와 카드게임으로 돈 벌 궁리나 하면서 그가 TV 디너라고 부르는 냉동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백수건달이다. 친척이 헝가리어로 그에게 말을 하면 짜증을 내면서 영어로 말하라 하고, 미식축구를 보면서 ‘미국에서는 이래, 저래.’하지만 그는 미국 주류 사회 편입에 실패한 주변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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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게 뭔지 알아? 새로운 곳에 왔는데, 다 똑같아 보인다는 거야."


사촌 에바를 만나기 위해 클리브랜드로 향하는 윌리와 동행한 에디는 눈으로 뒤덮인 클리브랜드를 보면서 말한다. 에바와 함께 떠난 플로리다 또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바람 부는 해변가는 황량해 보이기 그지없다.


여기보다 어딘가에. 그러나 이방인은 언제나 이방인으로 남는다.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1984

짐 자무쉬의 두 번째 장편영화.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빔 벤더스의 ‘사물의 상태’ 자투리필름을 사용해서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온 에바의 무심한 태도(개인적으로 그녀의 쿨한 태도가 좋았다. 친구하고 싶달까), 그녀가 좋아하는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와의 어울릴 것 같이 않은 부조화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황량한 클리브랜드의 호수, 플로리다의 해변 가는 물론이고 뉴욕의 모습 또한 도시의 개성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떠난 엄마를 찾아 떠나는 마이크의 여정은 보는 내내 불안하다. 기면 발작증이 있는 남창이라. 길은 사람의 얼굴처럼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자신은 이 길을 기억한다고 하는 마이크,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는 계속해서 떠돌 것이고 아마도 영원히 엄마를 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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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지 얼마나 됐지? 3년? 4년? 그런데 우린 아직 살아있어. "


스콧의 말 대로 거리에서의 생활은 험난하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 영화에 나오는 어린 남창들의 방황은 선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돌아 갈 곳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결말이 다르다고 해서 무엇이 더 낫다 고 말 할 수 없지만, 마이크의 여정에 안정과 위로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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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구스 반 산트, 1991

연약하고 불안한 소년도 아닌 남자도 아닌 마이크를 완벽하게 연기한 리버 피닉스의 아름다움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기름은 충분히 채웠다. 이제 태워줄 성냥만 있으면 된다. 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감함과 자유로움은 젊은 작가 샐에게 영감이 되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무력하고 공허한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불완전한 젊음, 그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쓰는 젊음은 불안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딘의 방황은 미치도록 마시고 즐기고 난 후의 지독한 숙취와도 같다. 답을 찾기 위한 방황과 문제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방황은 분명 다르다. 딘의 결핍,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를 찾으면 그의 방황은 끝이 날까? 그 어느 곳도 집이 아니라면, 집은 어디에 있는 걸까?


‘무지개의 끝에 금이 아니라 똥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 그걸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 방황의 끝에 환상에서 벗어난 카를로의 말이다. 누군가는 철이 든 것이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패배했다고 할 것이다. 이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하리. 길 위에서도 길 밖에서도 시간은 지나가고 인생도 지나가는 것을.


온더로드, 월터 살레스, 2012

잭 케루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영화화 했다. 소설의 힘이 너무 커서 영화의 장점을 따로 뽑기가 애매하나, 젊고 매력적인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몰아 볼 수 있는 즐거움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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