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허락하지 않은 붓터치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전달된 메시지를 재해석하기

by Rootin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 주는 감동은 그가 읽은 세상의 빛의 의미에서 나온다. 빛은 온 곳에 머무르면서 사람의 눈에 시간, 공기, 인간의 영혼을 비춘다. 그림이 매개할 수 있다는 것은 고흐의 피와 살로 증명이 되었다. 그리는 내내 자신이 왜 하필 화가가 되었는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물었다. 몸의 쇠약함이 마지막에 달해서 생명 너머를 볼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 남아있었다. 젊었던 시기에 꼭 목표라고 생각하고 남기려고 했던 미술의 발전이나 바라보는 방식의 진일보는 이미 그려나가는 움직임 속에 모두 담겨 채워졌다. 고통과 가난은 희망을 빼앗아갔지만, 절망은 그림과 관계를 맺지 않았다. 매일 그린다는 것은 빛이 눈에 보인다는 것과 같은 선 상에 있는 진리였다.


반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였다. 가족의 영향으로 20대 초반에는 신학을 공부했다. 20대 후반 무렵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졌고 전업화가를 결심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수채화를 그리는 모베라는 화가에게 배움을 얻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 매독 환자인 매춘녀를 고흐가 집으로 데려오면서 모베는 스승의 자리에서 떠난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매춘녀와도 멀어지고 시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농부를 그렸다. 파리에 1년 반 정도를 머무르게 된 것도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지만,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날씨가 좋은 프랑스 남부 지역인 아를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친분을 쌓았던 고갱이라는 화가와 짧은 기간 동안 함께 좋은 작업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끝내는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귀를 자르는 일을 저지른다. 가족, 동네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발작과 정신질환을 앓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흐가 붓을 들기 이전에 그는 처음부터 불안과 절망을 감당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아무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방황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 어두운 마음을 깊고 참된 사랑, 즉 예술을 통해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평생의 숙제였다. 누군가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진심을 담아 대하듯이 자연에 있는 나무 한 그루도 그 생명의 숨이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색채와 명암이 중요했던 이유는 생명이 말하는 순간순간을 보여주는 데 적합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시선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용기가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한 것 중에 유일한 안식처였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자연에서 만나는 대상들이었다.


감자먹는 사람들.PNG 감자 먹는 사람들 ∙ 1885년 4월 ∙ 캔버스에 유채

주로 마주하고 우선시했던 것은 현상 배후에 있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나이 많은 시골의 목사를 표현할 수 있는 건 그림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가져다가 쓴다는 것의 힘을 출처로 삼는다. 인물화를 잘 그린다는 것을 소중함을 무엇과 바꾸는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좋은 화가가 자연에서 대화하며 완성하는 모습으로 여긴다. 색채를 통해 조화나 대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을 향해 마음이 쏠려있는지를 구현할 수 있는 자유라고 알고 있다. 일을 완수했을 때는 기쁨을 맛본다. 해내지 못한 것을 이뤄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행복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이 가지는 감동은 그린 사람이 성의를 가지고 고뇌한 흔적에서 나올 수밖에 없음을 미리 깨닫는다. 선배 화가였던 밀레의 문장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고흐는 자신이 예술가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매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약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스스로가 보기에도 더 못나 보이고 버려진 매춘부를 집에 들여온 것은 예술가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합리적인 결정이었던 것이다. 예술가는 때에 따라서 수월히 받아들여질 수도, 그 개성의 편차에 따라서 멀리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규칙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함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함을 힘겹게 벗어나지 않은 고흐였다. 화가로서 자신이 세상과 자연을 보듯, 세상의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봤을 때 감정이 과잉된 '개'에 비유했다. 그만큼 어울리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화가의 정체성이 숨길 수 없는 모습이라는 걸 직감했다. 강한 확신은 삶의 행동에서 일치함으로 나타난다. 도시의 그림은 도시에서, 시골의 그림은 시골에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다움으로, 농부는 농부 다움으로 명확히 구분되어야 했다.


주관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는 신념을 부순 것은 생계 걱정이었다. 파리에서 활동하고 전시 경험을 하며 아카데미에서 화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그전부터 친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모델비마저도 모자랐던 현실이었다. 파리는 동시대 서양 미술의 최전선을 고흐에게 선물했다. 동시에 파리에서 심해진 병과 건강악화는 인상파 사람들과 어울리며 겪은 잦은 과음과 퇴폐적인 생활 때문이었다. 일본 판화를 보며 색채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을 포함해서 파리에서의 1년 6개월 간 강렬한 경험은 고흐에게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시간을 지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발작, 망상, 신경과민은 고흐가 남은 생을 살아가는 데 불리한 조건이었고, 사회는 이러한 사람들을 격리시켜 놓았다. 생명의 시계가 단축되는 행동들과 별개로 그림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색에 대한 탐구의 질이 점점 깊이를 더했다. 서로 보완하는 색, 대조를 이루는 색, 대비되는 톤과 광채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확장해가고 있었다. 젊은 연인의 사랑, 어떤 집단의 이데올로기, 마음속의 일렁거리는 주체 안 되는 희망, 그 외 인간 속에 있는 것은 고흐의 붓터치를 통해 그려지는 모델이 되었다.


씨뿌리는사람.PNG 씨 뿌리는 사람 ∙ 1888년 6월 ∙ 캔버스에 유채

파리를 떠나 도착한 아를이라는 프랑스 남부 도시는 고흐의 마음과 닮은 곳이었다. 잘 익은 밀밭 위로 별이 빛나는 밤, 씨 뿌리는 사람, 해바라기, 밤의 카페는 모두 아를이 고흐를 만나 반사시킨 풍경이었다. 고갱이 함께 작업을 위해 도착하기 전까지 좋지 않은 건강을 견디며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고대하던 동료 화가를 만난 지 불과 2개월 만에 예술적 견해를 빌미로 관계를 틀어버렸다. 생명이 허락하지 않은 붓터치였다. 고흐는 동네 사람들의 불신으로 정신병원을 가야 했고, 요양원, 파리의 작은 집, 또 다른 시골집에 외롭게 머물러야 했다. 건강이 최악에 달하면서 더 이상 고흐의 그림은 고흐가 그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고흐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정신 속에서도 희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릴 수 있는 것은 행위가 몸과 분리되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과 별개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행위는 고흐의 권총 자살을 통해 막을 내렸다.


고통의 순환을 끊지 못했을 때는 더 그리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이 아니라, 희망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예술은 죽지 않았고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고흐가 표현한 현대회화는 동작이었다. 움직이고 있는 상태와 그것이 말하는 메시지가 주제다. 화가는 색의 조화와 배치를 통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자연에서 승화한 고단함에서 만들어진다. 실제로 보이는 것과 색을 통해서 얻어진 울림은 그에게 같은 것이었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얻지 못했던 소속감은 내부적 시선을 맴돌게 하는 원흉이었다. 덕분에 만들어진 소수적 취향은 농촌을 택했다. 농촌이 가지는 의미를 두고서 농촌의 냄새를 맡는 고흐가 나섰다.


고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버텨내는 것이었다. 그림이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도록, 기호로 인식되지 않도록 해석과 경험을 주목한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표면적 특성은 그 존재다움을 모두 말해주지 않는다. 존중이 결여된 시선은 겉모습 안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에게서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사건이 극적이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존재를 그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고흐의 마음에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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