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망자를 대변하는 자유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 영화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역사로 읽기

by Rootin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은 조선시대에 그가 이룬 다양한 분야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광장을 돌고 다니는 사람들은 재현된 왕을 기억한다.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은 링컨 동상과 함께 그가 이룩한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기념관에 방문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미국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사람을 명분으로 한, 목적의 정치를 실현했다는 데 있다. 세종대왕은 한반도의 조선 사람들에게, 링컨은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할 수 있는 변화를 지도자로서 구축하는 선택을 만들었다. 사람들에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일으키는,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적어도 큰 합의점 내에서 모두가 동일하게 가질 수 있는 좋은 선택권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을 뿐이다. 선택권을 나쁘게 사용하는 것까지 모르지는 않았지만 동의하지도 않았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게티즈버그 전투

링컨의 결단 하나가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된 큰 분기점은 'American Civil War' 중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1863년 7월 1일에서 3일까지, 모두 합쳐 17만 2천여 명의 남군과 북군 병사들이 펜실베이니아 주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에서 격전을 벌였다.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남부군과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군과의 전쟁 중 북군에게 우세하게 흘렀다. 많고 많은 전투 중 특별함을 획득한 계기는 1863년 11월 19일 숨진 전사자를 기리는 봉헌식이었다. 여기저기서 치러진 전사자에 대한 예우 중 가장 유명한 명성을 얻게 된 발로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때문이다. 링컨은 비주류 시골 마을의 변호사 출신이었지만 스토리텔링 능력과 수사 화법이 우수하다는 장점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재능은 연설 하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무기임과 동시에 150년 이상의 역사를 지탱하는 하나의 주문이었다.


노예제 폐지를 통해 링컨이 막고자 한 것의 본질은 전쟁 종식은 아니었다. 전쟁은 늘 곁에 따라오는 말의 꼬리 같은 것이었다. 노예제를 반대하는 남군, 전쟁을 해야 만 먹고살 수 있는 농장주, 법안 통과로 인해 정치적 생명을 마감하는 정치인, 같은 당 내에서 입지를 포기해야 하는 당원 등 총과 대포 없이도 치러져야 하는 전쟁은 수두룩하게 다양했다. 피와 군인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하고도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 한 단면, 그것만이 링컨이 추구한 세상이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에 이어 7년 후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노예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한 나라임이 분명했다. 유럽 각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로 인구가 급격히 상승했고, 남부에서는 부유한 지주들이 멕시코만,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올라가 흑인 노예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대규모 목화농장을 조성했다. 노예제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는 불일치한 모순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를 알면서도 이미 노예제가 존재한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그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방 가입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모순의 반복과 굴절은 복잡했다.


하나의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고통과 가족의 죽음으로 돌아가고, 평등함에 기초한 법은 누군가에게 최악의 불평등으로 귀결되는 것은 뼈저린 사실이다. 문제는 전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정치가 있고, 정치로 실현할 수 없는 깔끔한 투표는 더 이상 없다는 시대에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결정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더 나이지기 위함을 속이고 더 가치 있어지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노력으로 향했다. 마음가짐이 분명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게티즈버그 연설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링컨은 허무하게 죽어버린 군인들을 미국이라는 거대한 성전의 주춧돌로 포함시킨다.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생전에 이룩하고자 했던 목표는 같았다는 것을 명심한다. 헌신은 곧 인간 자유의 실현을 말한다. 아직 닿지 못한 고지는 게티즈버그에서 죽지 않은 모든 이들이 함께 올라가야 한다고 독려한다. 결국 또 누군가 올라가는 도중에 하차하더라도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리게 해 줄 것이라고 제창한다. 그곳이 미국이며, 미국은 국민의 정부이면서, 국민에 의한 정부이면서, 국민을 위한 정부로서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을 마무리한다.


게티즈버그 연설

11월의 추운 날씨에 게티즈버그에 모인 기자, 군인,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은 링컨의 연설이 끝난 것을 몰랐다. 링컨에 앞서 연설한 하버드 대학 총장은 2시간에 걸쳐서 장광설을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링컨이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박수를 쳤다. 할리우드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연설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몇 년 후의 링컨을 불러들인다. 그는 가족을 곁에 두고 사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사령관이다.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모두를 설득한다. 노예제 폐지안 13차 수정안은 그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소재다. 영화 속 링컨의 언급은 그를 반대하는 정치인, 군인, 가족에게서도 논리의 오류가 발견되지만 스스로 내뱉은 말속에서도 모순을 자초한다. 결국 링컨은 말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쉴 새 없이 내뱉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스필버그는 수다쟁이 양반의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는 인물들이 하나씩 수그러지는 스토리 라인으로 관객을 끌고 나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링컨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만 한다. 하지만 링컨은 그 대답을 채 다 듣기도 전에 지루할 법하지만 듣다 보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콩트를 구현한다. 유머와 풍자는 빠지지 않고 인물들을 잡아 둔다. 그 유머의 핵심을 먼저 읽은 자는 자리를 떠난다. 결국 하나도 올바르게 지나가지 못하고 있는 전쟁통은 웃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로 드러난다. 하지만 링컨의 표정과 말투는 우스꽝스럽지 않게 클로즈업되며 듣는 인물이 동화되는 음악으로 그가 설득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링컨의 말에 가장 많은 반대를 저지르는 것은 그의 아내와 두 명의 아들이다. 가장 많은 양보를 내어주는 것은 큰 아들의 군입대를 막지 못한 결정이었다. 그 외 정치적 숙적들은 보는 관객이 모두 예상하는 대로 노예 폐지안에 동의하고 조력하는 인물이 된다. 1865년 1월 31일 화끈한 노예제 폐지 통과 현장은 그전까지 차분하게 쌓아온 링컨의 불같은 야성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다.


영화'링컨'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의 아버지를 재창조한다. 영화 속에 재현된 링컨은 가족에게 져주고 밖에서는 승리를 가져오는 인간적인 평범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링컨이 던졌던 농담을 모두 회수할 때까지 관객은 미국이 지니는 국가 이념을 자연스레 따르게 된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나라는 그 아버지를 영웅으로 과거와 현재를 규합한다.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하여 미국 내 시장에서는 영화의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그 외 나라에서는 반응을 불러오지 못한다. 미국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 스필버그의 연설이었다. 실제 링컨의 연설은 미국 대통령의 자격으로서는 올바르게 부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없고 죽은 군인들은 되살아난다. 새 생명을 얻은 망자는 말이 없다. 그들은 대변하는 변호사 링컨은 자유를 지킨다. 영웅은 사라지고 신이 등장하여 역사의 이정표에 대한 판결을 내린다. 분명한 건 더 이상 자유를 잃은 노예는 없다는 것이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은 자유롭게 링컨을 기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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