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rubble>에 대한 되새김질
인간보다 완벽한 기술, 실수하지 않는 기계가 전문성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사람이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고 길러낸 '완벽함'이라는 꽃은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완벽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공장과 시스템은 사람의 손길을 점점 더 쓸모없어지도록 만들고 있다. 실수가 많은 인간은 기계보다 변수가 많다는 이유로 생산 활동에서 배제되어 가고 있다. 거주하는 공간에서도, 배움을 얻는 교육의 장에서도, 노동이 집약된 일터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대상들은 은폐되어 가고 있다. 이는 오래된 개발 현장의 꿈이자 규모의 실현이 펼쳐지고 있는 압축 성장 시대가 그린 미래였다.
어렵게만 보였던 고성장과 빠른 도시화는 가로막고 있던 벽을 모두 허물고 마침내 숙제를 모두 끝내버렸다. 목표가 분명했던 만큼 차선이었던 것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우선이었던 것들에게 모두 내주었다.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한 삶의 터전들은 그 후유증으로 각자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이는 땀을 흘려서 주어진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젊은이가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을 낳기도 했다. 내실을 다지지 못한, 겉만 부풀어 오른 몸체는 똑바로 걷기 힘들 정도로 균형을 쉽게 잡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의 성적인 단시간 내 이룩해 낸 경제 성장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이루고자 했던 지향점이었다.
미래는 정해진 운명이 아닌 것이, 같은 시기 비슷한 조건을 가진 개발도상국이 모두 지금의 한국이 되지 않았다. 다수가 노래하고 참여한 성장 담론에 권력이 뒷받침해 만든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제는 그들의 돌림 노래가 모두 다한 만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현실을 돌아볼 때도 됐다. 육찬 작가의 <잔해 rubble>은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순 뒤 다가오는 감정과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타포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잔해 rubble>은 서사를 품고 있다. 육찬 작가는 전작인 <barrier>에서 부서진 벽 사이 LED 오브제를 차용해 빛과 조형물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 바 있다. 이번 <잔해 rubble>은 벽을 부수는 과정, 혹은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을 조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향점을 정해놓고 향해가는 여정에서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시작과 끝 사이에 있는 요소들로 기억된다. 각 장면들이 앞뒤 맥락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전체 이야기의 주제가 비로소 드러나곤 한다. <잔해 rubble>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시각적 경험은 완결되는 작품 서사를 해체하고 그 사이에 숨겨진 혹은 버려진 순간의 재조합이다. 완결을 향해 달려가는 빠르고 강력한 열차 속에서 들여다보지 못한 찰나들이 기찻길 바깥에 놓이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넘어서 기억나지 않을 만큼 쉽게 잊어버린, 침묵했던 평소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인간은 태초부터 불완전하고 완벽할 수 없기에 실패, 추락, 불쾌함을 삶에서 피할 수 없었다. 현대인은 이러한 애로사항을 극복하고자 성공, 도약, 쾌적함과 관계 맺기 시작했다. 가장 완벽한 것에 가까워지려 할수록 불편한 것들은 퇴출돼야 했다. 기억에서도 잊혀야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훈육했다. 가로막는 벽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에 몸을 맡기며 내가 나인지, 누가 남인지도 헷갈리는 연속된 나날에서 길을 잃으면 비로소 허물어진 벽이 남긴 잔해에 감정을 내어주게 된다. 좋은 것을 성취해 내려고 부순 수많은 벽의 흔적은 무엇부터 배제하고 파생시켰는지에 대한 역사책이다.
<잔해 rubble>은 흙과 시멘트에서 발견되는 어둡고 차가운 색을 시각에 마련한다. 조형물 사이사이에 잘리거나 깎여진 표면은 떨어져 나간 부분을 궁금하게 만든다. 원래는 잔해가 아닌 정형의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속에 울퉁불퉁한 질감은 다시 흐트러진 시간 순서를 재구성한다. 기존에 갖추었던 모습이 아니라 잔해 그 자체로 굴곡진 정서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가벼운 단열 스티로폼 위에 미장을 통해 제 형태를 갖추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잔해는 결국 비어 있는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면서 빠른 사회를 지탱하느라 놓고 온 상태, 대화, 정서를 다시 부른다.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부스러기가 세상 밖으로 나온 만큼 기존에 기호 체계로는 해석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직접 마주하고 혼자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작품이다. 양식은 산업적이지만 주제는 내적이다. 작품 배경에 있는 작가의 물리적 행위와 직접적이 연관을 맺고 있어 쉽게 감정에 몰입해 볼 수 있다. <잔해 rubble>은 불완전한 인간이 늘 머무르는 비어있는 공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속 의미를 되찾아준다. 기억에 남길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작은 순간순간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잔해를 배제시켜 버린 후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 잔해들을 천천히 바라본다면 내적인 대화의 영속성을 다시 갖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