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tin의 조건
1. Intro
Rootin은 집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외부에 의존하거나
내가 서있는 장소를 바꿔가며 위안을 얻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일상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늘려가고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했다.
그 동기와 목적 자체가 Rootin이었다.
2. 나 자신
나 자신 스스로에서 느끼는 에너지가 중요했다.
직무 역량 포트폴리오가 아닌,
시험을 보고 매겨지는 등급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얼마큼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이었는지.
나머지의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의 주체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 플랫폼이 되었다.
집에서 혼자 작업할 때도, 외부 사람들과 팀 프로젝트를 할 때도, 구직 과정을 지나갈 때도.
어디서 어떤 옷을 입고 활동하느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길 자체에서 가치를 지니는 정신을 보유한다.
3. 내가 내가 되면서 미래와 연결될 수 있었던 과거
최종적으로 바라는 모습은
본질적으로
살면서 얻은 통찰을 콘텐츠에 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어떤 과제나 업무를 수행할 때도 이러한 본질을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동기와 목적이 Rootin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 과제나 업무가 어떤 이력이 될지, 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나 본인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향상되고 있었던 것이다.
20살 때의 나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늘어났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도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서 문제를 개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과 실패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20살 때는 모든 것이 막막했었다.
뭐 하나 잘 해내는 것이 없었다.
부적응,
불성실,
나약한 정신력,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스스로를 불신하는 마음,
남들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
만족할 수 없는 인간관계. 등
지금과 당시의 내가 다르기 때문에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 건
흘러왔기 때문이 아니다.
동기와 목적 자체가 Rootin이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서 얻은 경험과 깨달음은
무엇을 어떻게 시도했는지에서 찾아왔다.
하나하나의 선택을 내리고 책임지고 감수했다.
하루에 한 번씩 몰입하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매일 한 번에 하나씩.
적어도 20살 때의 막막함은
꾸준한 일상을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 시도해보고 경험해서 매듭짓고 끝낸 후에는
그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신념으로서의 Rootin
사람들은 누군가의 신념이 틀리길 원한다.
아니, 틀려야 만 한다고 믿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신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신은 내부적 신념과 외부적 경험이 결합했을 때 생겨난다.
신념은 외부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다양한 경험을 겪는 동안 신념은 발전해야 한다.
상황과 조건에 맞게 뜻을 내세울 수 있어야
더 강한 압박과 험난한 역경에서도
또 한 번 앞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신념의 조건에는 나 자신의 자유가 있을 뿐,
어렵고 무서울 때 포기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함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비난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Rootin은 내가 생각하는 선함을 유지하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동기이자 목적 그 자체였다.
5. 회귀로서의 Rootin
살다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아프거나 다칠 때가 있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다시 한번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선
그 질병 만을 치료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병은 핑계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아픔은 그 경험에 침식당하는 상태를 유혹한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이 상황이 불행한 서사의 첫 단추가 되는 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더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Rootin은 불행한 서사를 만드는 것과 반대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어느 때나 유감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는 걸 피할 수 없다는 것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
왜냐하면 꾸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던 동기와 목적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미래를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미래는 노력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내가 된다면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지을 수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내가 없다면 외부적인 사건들로 인해
곡해되고, 타자에 의해 판단되고, 객체화된다.
너무 아프고 힘들 때라도
고통은 고통이고,
나는 나라는 단호한 인지가 필요하다.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선
인식이 안정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그 안정은 나라는 몸과 마음에 새겨진
기억과 역사를 통해 길을 제시받는다.
내 안에 새겨진 기억은 오늘도 내게 쥐어져 있다.
6. 용기로서의 Rootin
쉬운 길, 쉬워 보이는 길, 이미 지나온 길에 있는 건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한 편으로는 또 다른 미래를 확인하고 싶지만,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다짐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변명거리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증거물로 삼는 것이다.
이만큼 위험요인이 가득하고 득이 되지 않는다는 합리화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마음속에서 가지고 있었던 소망은 질투나 원망으로 변해간다.
용기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바라는 것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선택지다.
그런데
바라는 미래의 모습에
내가 자유로운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면
용기는 하나의 선택지가 아닌 유일한 답이다.
자유로운 행동을 저지르기 위해선
나를 둘러싼 사고의 틀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두려움이라는 마음은 마음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질문이나 가설이
직접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커져버린 가짜 생각과 같다.
용기라는 마음은 욕망에서 출발하여 시작된 솔직한 감정이
실패와 상관없이 행동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상태와 같다.
두려움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장치이지만
내가 채우고 싶었던, 가보고 싶었던, 해보고 싶었던
자연스러운 욕망을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용기는 뭐든지 해보고 부딪혀 볼 수 있게 하는 무기 같지만
세상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기에는
우주는 너무나 넓고 인간의 생은 한정되어 있다.
Rootin은 적절하게 두려움과 용기의 조화를 꿰는 길을 걷는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걸지도 않고,
매일 무엇인가를 잃지도 않는다.
나를 제약하는 사고의 틀을 점진적으로 허물어 가면서
매번 새로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길 위에 서있다.
그 중심에는 나라는 주체가
매일 주어지는 마음을 다스린다.
7. Outro
결국 나를 완성시키는 건 성공, 인정이 아닐 것이다.
성공과 인정이 찾아온 그 바로 다음날에도
꾸준한 동기와 목적 없이는
그다음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실현시키고자 하는 여러 가치체계,
적절한 용기와 도전을 통해 얻은 경험,
그 자체가 Rootin이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