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살다보면 그런 때가 있죠. 언제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싶고,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겠는. 결론을 알고 보는데도 지루할 틈이 별로 없는 영화입니다. 한 사건이 여러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영화죠.
계획한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게 세상이고, 생각한 것보다 허술한 게 세상입니다. 영화는 그 부조리함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어요. 너무 사실적이어서 때로는 뒷골이 서늘할만큼. 훌륭한 영화입니다.
부동산 회사의 고액 연봉자인 앤디(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 분식회계를 저질러서 돈이 필요합니다. 동생 행크(에단 호크)는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비를 못 줘 쩔쩔매고 있고요. 팍팍한 삶에 압박을 느낀 두 사람은 부모님의 보석 가게를 털기로 합니다. 소심한 행크는 친구를 끌어들이고, 모든 계획이 예상하지 못하게 틀어지죠. 그러면서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영화의 만듦새가 엉망이란 말이 아니고, 엉망진창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네트워크>, <허공에의 질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유작입니다. 설국열차의 각본에 참여했던 켈리 매스터슨 각본입니다.
동생만 챙기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그러면서 아버지를 닮아버린 형을 연기하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어른이를 연기하는 에단 호크.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앨버트 피니... 연기의 합이 착착 들어 맞습니다. 명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죠.
<맨 오브 스틸>의 악당으로 나왔던 마이클 섀넌의 등장도 강렬하고요, 무엇보다 형과 동생 사이를 오가며 속물 연기를 펼치는 마리사 토메이가 인상적입니다. 캐릭터도 연기도 뭐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영화를 통해 판타지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곱씹으려는 사람이 있죠. 이 영화에 열광할 사람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국내에선 2009년 개봉했는데 6천명 밖에 안 봤습니다.
데이트 영화로는.. 글쎄요.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나,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이나 명랑하지 않습니다. 같이 보고나면 분위기가 촥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겠죠. 밝고 경쾌한 영화도 많잖아요. 뭘 굳이.
p.s. 마음의 준비도 안 했는데 나오는 베드신이라니. 감사합니다. ㅋ
(데이트 활용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