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숙제하는 마음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심호흡을 해야한다. 그래야 볼 수 있다. 흡사 숙제하는 기분이다. 보고나면 생각도 많아지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끔 머쓱한 미소를 짓기도 하는데. 자의로 멈출 수 없는 극장이 아니면 한번에 끝까지 보기가 힘들다. 영화로는 현실 대신 판타지만 보고싶으니까. 지독하게 현실적인 한동안의 삶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간 그렇다.
'어느 가족'을 보기 전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다. 봐야지 봐야지 하며 미루기를 몇년째.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영화를 봤다. 얼마 전 봤던 인물들이 훌쩍 나이가 든 채 영화에 등장했다. 철부지 아빠였던 릴리 프랭키는 그 사이 아버님이 되어있었고, 키키 키린은 '아이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나이가 들어있었다. 함께 늙어가며 영화를 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기분이 묘했다.
현실을 직시하다
굳이 영화로 현실을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묵직한 주제, 불편한 주제를 스크린으로 보길 꺼린다. 영화의 이야기를 능숙하고 세심하게, 유연하되 진심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랄까. 마음이 앞서 저만치 먼저 달려나가서도, 무책임하게 쭈뼛거려서도 안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실을 보고, 멈춰서 생각하게 만드는 솜씨를 지녔다. 아무나 못한다.
그에게는 가족이 화두다. 천착하는 주제. 때로는 누군가의 부재가 가져오는 이야기를, 때로는 누군가의 등장이 불러오는 이야기를 다룬다.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든 문제를, 가볍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 그렇다고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설득도 강요도 하지 않는다. 냉담하고 차분하게 지켜볼 뿐. 이런저런 모양의 가족 사이에서 결국 성장하는 개인. 이기를 바란다.
안도의 발견
안도 사쿠라. 감독 아버지, 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는 장면이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지간해서는 우는 장면을 넣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그 장면은 버릴 수 없었다 한다. 아들을 갖고 싶었던 속마음을 들킨 듯 활짝 웃는 시장 장면, 되짚어 볼 수록 공들여 찍은 애정신, 서늘한 취조 장면... 대단한 배우다.
화사한 가족영화, 훈훈한 드라마를 기대하진 마시라. 그 정도로 가벼웠다면 황금종려상은 아마 다른 이에게 돌아갔겠지. 가끔은 묵직하게, 가끔은 서늘하게. 극장을 나서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맴도는 그런 영화. 누군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챕터 1을 이 영화로 마무리 한 것 같다고 한다.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장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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