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고. 기억해야만 한다고.

<리멤버>

by CINEKOON

과거 역사에 대한 복수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아무래도 역시 타란티노일 것이다. 그는 <바스터즈>를 통해 역사를 시원하게 왜곡해서라도 나치와 그 부역자들을 응징했다. 또 <장고>에서는 KKK단을 비롯한 인종 차별주의자들을 통쾌하게 쏴죽였었지. 그 두 영화 속 복수의 대상들인 나치와 KKK. 그들은 모두 현대 미국 사회에서 청산되어야 마땅한 존재들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현대 미국에선 인종 차별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또 네오 나치 등의 세력 역시 엄연히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그들 모두 척결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미국인들에겐. 그 부분에서 <리멤버>는 통렬하되 아릿한 뒷맛을 남긴다. 죽여야 마땅한 자들인데, 슬프고 찝찝하게도 영화 바깥의 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영화 바깥의 어른들은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리멤버>의 결말부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유사부자 관계가 된 제이슨에게 프레디가 무릎을 꿇는 장면은 영화 바깥에 앉아있는 나에게 끝내 닿고야 말았다. 진작 했어야만 했던 일인데 아직까지 끝맺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윗세대의 진심. 물론 한낱 영화 속 그 진심 하나만으로 그 바깥의 세상 속 안개가 모두 일거에 걷히진 않겠지만 말이다.


'잊지말자'는 제목을 상정해두고 거기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 주인공까지 앉혀둔 영화임에도 정작 그 '지워져가는 기억'이란 소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주인공의 치매 설정은 영화의 장르적 맥락에 더 도움을 줬어야만 했다. 현재 버전의 영화 속 한필주, 그러니까 제이슨은 각본상 딱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시점에만 치매 증상을 앓는다. 게다가 그 망각에서 다시금 자각의 상태로 돌아오는 순간들 역시 너무 노골적이다. 예를 들면 도로 주변을 목적지 없이 걷던 그를 차에 태워준 가족에게 중국어를 배우는 어린 딸이 있어 한필주의 손가락에 박혀버린 한자들을 읽어내 그의 자각에 다시 도움을 주는 장면 같은 것들. 영화는 현실성과 개연성을 다소 희생하는 대신 큰 그림에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그게 별 탈 없이 잘 통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리멤버>가 잘해낸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 회상 같은 것들. 영화의 내용상 과거 회상 장면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예상 외로 <리멤버>는 그 부분을 정면돌파 하되 짧게 짧게 촌철살인으로 제공해내 이것이야말로 기억의 편린 아닐까-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만든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 아침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여러 재연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그 특유의 세피아톤 색보정은 꼭 했어야 했던 걸까 의구심이 남지만... 어찌되었든 과거 회상의 내용만 놓고 봤을 땐 지나치게 설명적인 건 아니라 과거의 그 전개가 현재의 그 전개를 크게 발목잡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이 영화가 가장 잘해낸 것은 일종의 판타지로써 현실과 공명하는 방식이다. 타란티노는 히틀러를 쏴죽였고, 비열한 부역자의 이마엔 한평생 지울 수 없는 인장을 박아넣었으며, 무지한 백인우월주의자의 심장엔 총탄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영화적 묘사들은 미국의 현재를 깔끔하게 대변했다. 허나 <리멤버>는 전혀 반대의 의미에서 대만힌국의 현재를 지저분하게 대변한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 그로인해 자꾸 발목잡히는 현재와 때문에 더 알 수 없게 된 불확실한 미래. 세상 어느 나라가 그러지 않겠느냐만 왜인지 모르게 유난히도 다이나믹했던 것만 같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마구 휘몰아치던 그 안에서 우리는 결심과 행동의 타이밍을 놓쳐 민족 반역자들을 엄벌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말 이 영화 속 한필주의 복수처럼 그들을 한데 모아다 다 쏴죽이자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면밀히 따져보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사과 정도는 받았어야지 않았겠냐고. 치우지 못하고 한 켠에 남아버린 그 현실 때문에 <리멤버>는 자꾸만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든다. 아니, 기억해내게 만든다.


movie_image-4.jpg <리멤버> / 이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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