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출까? 발버둥을 칠까?

<동감>

by CINEKOON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 나는 리메이크의 오리지널이 되는 2000년 버전의 <동감>을 보지 못했다. <봄날은 간다>와 <시월애> 등, 작금의 한국 영화판과는 다르게 멜로 드라마 장르가 강세였던 그때 그 시절의 <동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마지 않는 바로 그 <동감>. 그런데도 나는 그 <동감>을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세상엔 <동감> 말고도 빨리 봐야하는 영화들이 많았으니까. 서론이 길었는데 이만 각설하고, 여하튼 그러다보니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관람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크레딧이 올라갈 때 몸을 극장 의자에 더 파넣으며 했던 생각은...... '아니, 이거 엄청 흥미로운 이야기잖아?'


대충 만든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리메이크작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냥 그렇게 퉁치고 넘어가기엔 영화가 품고 있는 핵심 모티프가 너무 흥미로웠다. 서로 20여년의 간격을 두고 과거와 미래 속의 인물들이 전파 무전기를 통해 연결되는 거? 아니, 그거 말고. 내가 혹한 부분은 거기서 좀 더 들어가, 그 전파 무전기를 통해 알아버린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90년대 끝자락을 살아가고 있는 용은,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지금의 사랑이 20여년 뒤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가장 친한 내 친구가 미래엔 지금 내 사랑의 어엿한 남편이라니! 게다가 그 사이에서 딸도 낳았다니! 나는 그 미래를 알아버린 용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매력을 느꼈다.


예컨대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영웅은 현재의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신탁을 듣는다. 그런데 신탁은 미래 그에게 엄청난 불행이 있을 거라 예언한다. 그러자 영웅은 그 불행한 미래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결과론적으로는 그를 피하기 위해 했던 그 수많은 발버둥들이 결국 영웅을 그 불행으로 이끈다. 그렇게 파멸하는 영웅의 이야기. 그리고 <동감>의 용이 바로 그러하다. 용은 20대 초중반에나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그 나이대의 풋풋한 사랑을 느낀다. 콩닥콩닥하는 마음으로 고민하기를 수백번째, 결국 그는 그녀에게 수줍은 고백을 건네게 되고. 성공하게 되고. 그렇게 그 사랑은 영원할 것처럼만 느껴지고.


물론 20대를 훌쩍 넘겨버린 우리는 다소 꼰대 같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용의 그러한 바램이 귀엽게 헛된 것임을 안다. 20대 초반 첫 연애 상대와 결혼까지 골인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런데도 우리 용이는 그걸 모른채 첫 연애의 단꿈에 빠져있네. 귀엽다, 귀여워. 당연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용이 겪는 모든 일들은 사뭇 비극적이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지금의 이 사람이, 미래에는 내 옆에 없구나-란 생각은 조금씩 용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 역시도 그리스 영웅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불행한 미래를 막아보기 위해 나름 동분서주한다. 조금 더 여자친구를 붙잡아보려고 하고, 미래에 그녀의 남편이 된다는 내 동성친구를 주먹으로 내려치기 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이 역시도 결과론적으로는 그 미래의 불행으로 가는 속도를 그저 가속화 시킨 것일 뿐, 그 자체의 방향까지 되돌리지는 못하는 행동들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동감>의 순간들이 흥미로웠다. 아, 이 역시도 당연히 2000년판 <동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설정이겠지. 안 봐도 블루레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이 이야기를 내게 처음으로 전달한 건 지금의 2022년판 <동감>이니까. 그 <동감>이 내게 전한 그 핵심 모티프,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빗속을 헤메는 용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짠했다. 원래 멜로 드라마라는 건, '운명'을 무기화하는 장르 아니던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날 거야-라는 무기. <첨밀밀>이나 <시간 여행자의 아내>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감>은 반대로, 그 '운명'이 주인공들에게 가혹한 체벌로써 작용한다. 아, 대체 우리는 운명의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한단 말인가.


movie_image-5.jpg <동감> / 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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