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의 천일야화

<3000년의 기다림>

by CINEKOON

<3000년의 기다림>은 조지 밀러가 전하는 천일야화다. 중년의 민속학 학자로서 전세계를 여행하며 각종 '이야기'들을 연구해온 알리세아. 그런 그녀가 터키 풍물시장의 작은 상점에서 조그마한 유리공예 기념품을 하나 산다. 호텔로 돌아와 그 기념품을 만지작대던 그녀, 갑자기 공예품의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정령이 탈출해 나온다. 숨을 헐떡이더니 이내 자신을 풀어줘 고맙다며 딱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공언하는 정령. 알라딘이라면 냅다 빌었을지 몰라도, 우리의 알리세아는 이미 그녀가 연구해온 숱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 '소원'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에 거절한다. 하지만 세 가지 소원을 모두 들어주어야만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정령은 계속해 그녀를 설득하려 하고, 그 일환으로 자신이 살아온 300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그녀에게 속삭여 준다.


인류가 거쳐온 모든 시간과 또 모든 공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지속되어온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은 왕자와 공주의 연애담이기도 하고, 지혜롭고 용맹한 영웅의 일대기이기도 하며, 또 악마의 간악한 속삭임 따위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히, 그중엔 소원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반복해 전해져 내려온다. 소원. 우리가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약속. 인간사 전체를 관통하는 그 강력한 소재를 활용해, 우리 세대의 이야기꾼 조지 밀러는 정말로 꽤 그럴 듯한 이야기를 극장 안 우리에게 전달 해낸다.


영화 속 정령이 전달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사와 그 속 감정의 핵심 요소들을 살며시 맛본다. 사랑과 욕정, 권력욕과 야망, 폭력과 애통함, 지식에 대한 추구와 한계 앞에서 느끼는 답답함까지. 청자들에게 있어서는 짧다면 짧지만, 화자인 정령에게 있어서는 무진장 긴 세월이었을 그 3000여년의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롭게 스크린에 아로새겨진다. 그렇다, 스크린 안에 아로새겨지는 이야기. 조지 밀러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지만 동시에 탁월한 비주얼리스트이기도 하단 소리다. 자칫해서는 그저 대사로만 줄줄줄 읊어졌을 긴 이야기들이, 조지 밀러라는 탁월한 비주얼리스트의 손에 의해서는 그야말로 생명력 가득한 시네마틱 경험으로 번안된다. 정령이 알리세아에게 그저 목소리로만 그 이야기들을 전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보는 것과 똑같은 시각적 쾌감까지 동반해 그 이야기들을 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후자였다면 알리세아야말로 이 영화의 1차 관객이 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겠지.


짐짓, 알리세아가 정령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없이 너무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 것 아닐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이야기의 힘 안에서 설명이 된다. 인간을 가장 빨리 납득시키고 또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이고, 또 그 안에서도 공감의 마력 덕분이다.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되어 보는 경험. 그 누군가의 삶을 짧게나마 대신 살아보고, 또 그로인해 그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 인정하게 되는 일. 그 힘의 자장 안이었기에 알리세아는 결국 이야기 그 자체인 정령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알리세아와 평생을 가깝고도 멀리서 함께하게 된 건 결국 이야기 그 자체라는 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만들어온 코엔 형제와 더불어, 조지 밀러 역시 <3000년의 기다림>을 통해 이야기의 본질을 탐구하려 한다. 그리고 최근 코엔이 <맥베스의 비극>을 통해 그랬던 것처럼, 조지 밀러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 중 하나를 따와 그 탐구의 재료로 삼는다.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이이기의 힘!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곧 이야기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MV5BY2IxNzIzZDgtODA2Yi00ODNlLTg1NTItNjc3YWU0NGVmOGM0XkEyXkFqcGdeQWFybm8@._V1_.jpg <3000년의 기다림> / 조지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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