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와 비겁자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by CINEKOON

영화는 말그대로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사건을 다룬다. 그런데 왜 '비겁한'일까. 왜 로버트 포드는 희대의 무법자이자 국가에 반했던 존재 제시 제임스를 암살하는데에 성공하고도 비겁자의 칭호를 부여 받을 수 밖에 없었나. 그것은 영화가 그 어떤 명예도 허무주의로 감싸버린 뒤 저 먼 지평선 너머로 부리나케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무법자와 암살자의 삶을 통해 복기 해낸 허무주의. 그렇게 야만스럽고도 낭만스러웠던 서부 개척 시대의 태양은 점점 저물어 간다.


제시 제임스는 미국의 숱한 민담에서 소위 로빈 훗과 비견되는 사람이다. 돈 많은 자들은 털어먹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베푼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사후 이야기들은 생전 제시 제임스의 모습과 조금 달라져있었다. 누군가는 의적이라고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저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도적일 뿐이었다고도 하고. 어쨌든 영화 등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그동안 제시 제임스는 일종의 신격화된 인물로서 재생성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 영화가 깬다. 영화는 제시 제임스를 그저, 불안하고 방황하며 번민하는 부랑자쯤으로 그린다. 솔직히 대단한 무법자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그가 신기에 가까운 사격 실력 등을 뽐내는 장면이 거의 전무. 오히려 옛 동료를 뒤에서 총으로 쏴죽이기도 하는 인물로 제시 제임스는 그려진다. 이쯤 되면 제시 제임스야말로 비겁자가 아닌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제시 제임스와는 달리 아직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한 철부지 초짜이자 무법자 지망생인 로버트 포드가 있다. 항상 불안에 떨며 사는 듯 했던 게 제시 제임스였다면, 로버트 포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마구 표출해냄으로써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끝끝내 성공한 그의 제시 제임스 암살? 암살이라고 해서 언제나 꼭 당당할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로버트 포드의 암살 행위 자체는 참으로 멋없다. 로버트 포드는 제시 제임스의 집에서, 그가 벽에 걸린 액자를 청소하기 위해 의자 위로 섰을 때 그저 방아쇠를 한 번 당김으로써 암살을 성공해냈다. 어쩌면 제시 제임스 역시 자신의 죽음을 직감 했던 것 같고. 게다가 그 직후 도망가는 꼬락서니 역시 참으로 모양 빠진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건, 그의 제시 제임스 암살에 무언가 제대로된 명분 따위 없었다는 것. 투철한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들킬까 봐 로버트 포드는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세상을 호령했던 무법자도, 또 그런 그를 죽였던 암살자도. 둘 다 서부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뿐이었던 거라고 말하는 영화. 시종일관 그 허무주의가 넘실거리는 것만 같다.


9.jpg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 앤드류 도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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