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개인인가, 체제인가.

<하트 오브 스톤>

by CINEKOON


나는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내면 어딘가엔 '선'을 추구하고 싶은 일말의 마음과 그를 이어나가기 위한 의지가 존재할 거라곤 믿는다. 그러니까 인간의 존재 이유가 '선'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를 추구하고픈 마음과 의지는 분명 있을 거라 여긴단 소리.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하트 오브 스톤> 속 일종의 첩보 기관인 차터에 대해서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극중 차터는 미국의 CIA나 영국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 러시아의 SVR 같은 세계 유수의 첩보 기관들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기관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극중 설정으로는 첩보 세계의 GOAT 같은 존재일진대, 그 창립 배경에 나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직 첩보 요원 출신의 사람들이 오직 세계 평화 하나만을 위해 결성한 조직이라고? 그것도 무정부주의를 추구하며? 그래서 충성해야할 국가도 없고 그에 따른 정치색도 없으니, 그저 인류의 안보를 무너뜨릴 만한 사건이 생기면 그 곳이 어디든 세계 곳곳에 모두 프로 요원들을 보낼 수 있는 기관이라고?


나는 이 첩보 기관이 정말로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선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은 믿지만, 세상에 대체 어떤 인간들이 자기의 생활과 목숨까지 내놓아 가며 그저 세계 평화만을 부르짖은채 복무할 수 있단 말인가. CIA나 MI6 등은 적어도 미국과 영국 같은 자신들이 소속된 모국에 충성을 다해야 하니까 그냥 공무원의 마음가짐으로 일하겠거니 싶지만, 차터의 목표 자체는 말이 안 된다. 그저 오직 세계 평화만을 바라보고 창설된 비밀 첩보 기관이라... 그럼 여기 운영비는 어떻게 나오는 거냐? 요원들이랑 사원들 월급은 누가 챙겨주는 거지? 아, 돈 많은 갑부들 중에서도 오직 순수한 의미의 세계 평화만을 위해 그런 거대 기관에 돈 대줄 만한 위인이 있기라도 한 건가?


마음에 턱하고 걸리는 이 요소 하나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보자. 그렇다면 그 점을 제외하곤 영화가 좋은가? 사실 그도 아니다. 당신이 갤 가돗의 팬이라면 물론 일정 부분 즐길 수도 있겠다. <하트 오브 스톤>은 갤 가돗이라는 스타를 돋보이게끔 하는 데엔 최선을 다하는 영화니까. 하지만 액션은 평범하고 기시감이 짙다.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액션들을 전세계의 관객들은 최근 톰 크루즈의 진기명기 쇼로 변모한 <미션 임파서블> 최근 시리즈들을 통해 이미 숱하게 경험해왔다. 그 지점에서 액션 장르 영화로써 <하트 오브 스톤>의 타이밍은 그리 좋지 않게 느껴진다. 여기에 그 액션들 사이를 잇는 동선도 다소 무모하고. 첩보 영화랍시고 요란하게 전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지만 실상 로케이션의 힘은 충만하지 못하고 그 동선과 이유도 대충 때운다. 정직된 차터 요원이 수퍼 양자 컴퓨터를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막 상공에 나타나는 방법? 그냥 사망한 전 동료의 집에 무단 침입해 컴퓨터 기록 좀 살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뒤, 이번에도 그냥 비행기 갖고 있는 현직 요원 동료 살살 구슬려서 가면 됨. 제아무리 <007> 스타일의 활극 첩보 액션이라 할지라도 이건 너무 대충 때우기만 하려 했던 거 아닌가.


다만 악역의 존재는 일견 흥미로웠다. 제이미 도넌이 연기한 파커는 전직 요원으로서 이미 첩보 기관에 의해 버림받았던 적이 있는 인물이다. 대의를 위한답시고 자신이 붙잡혀 있던 곳에 폭격을 허가한 윗대가리들과 그 기관. 그렇게 그저 부속기관이자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서 이용되던 파커는 순수한 복수심으로 차터를 분쇄하려 한다. 그런데 그 설정을 들으니 딱 떠오르는 인물이 둘 있더라고. 바로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과 <스카이폴>의 라울 실바. 제이슨 본은 전직 CIA로서 자신을 쫓는 전 직장 CIA와 맞선다. 그리고 라울 실바 역시 마찬가지. MI6의 요원으로서 활동했던 그는 파커 마냥 조직에 의해 배신 당하고 이를 계기로 악당이 된 인물.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언제나 현재의 시대 정신과 국제 질서, 세계 정세를 반영해왔다. 예전의 첩보 영화들 속 악역은 보통 공산주의 세력이거나 제 3세계의 독재자였지. 하지만 라울 실바와 <하트 오브 스톤>의 파커를 통해, 애스피오나지 장르는 대의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시스템과 조직으로부터 버려진 개인들의 이야기를 악역으로나마 하고 있다. 물론 그 역할이 악역인지라, 어쩔 수 없게도 나중엔 주인공들에 의해 처단 당하지만. 그래도 장르의 역사에 있어 한 번쯤은 곱씹어 볼만한 문제 아닐까? 그들의 그 상황과 그 분노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은 점점 더 체계화 되어가고 있고, 그로인해 개인들은 본래 갖고 있던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게 각 개개인들은 체제에 반기를 드는 악당으로 결국 변모한다. 물론 그것도 그 체제 입장에서 악당이겠지만. 그러니까 매번 큰 그림이라는 미명 하에 작은 개인들을 교체 가능한 부속품 마냥 희생시키지 말고, 가끔은 그 예전의 <스파이 게임>이 그랬던 것 마냥 인간 하나 하나의 의미와 존재를 좀 생각해달라고. 숫자 '1'이 아니라, '한 명'으로 좀 여겨달라는 볼멘소리다. 


FdcntH_UYAEqPM2.jpg <하트 오브 스톤> / 톰 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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