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에 맞서는 '지금'!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by CINEKOON


훌륭한 영화다. "때로는 스타일이 전부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형식적인 면과 그걸 구현한 기술적인 면에서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와중 전편이 그랬듯 '재미있는 이야기'와 '명백한 주제의식' 역시 놓치고 가지도 않는다. 복싱 선수로 치면 인파이터와 아웃복서, 오소독스와 사우스포를 넘나드는 느낌. 그럼에도 아쉬운 점 또한 명백히 있다. 일단, 전편 못지 않게 훌륭하지만 전편만큼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전편은 당시에도 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성을 띄고 있었다. 기승전결 모두가 알맞게 포지셔닝된 듯한 느낌. 하지만 애초부터 시리즈의 2편이자 그 다음 나올 3편까지 수식하는 영화로써 기획된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결'이 없이 오직 '기'와 '승'과 '전'을 늘어놓는 방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호흡도 가쁘면서 느긋하다. 매 쇼트, 매 씬은 화면에서 쏟아지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 가쁘게 느껴지는데 반해, 전체 내러티브의 호흡은 너무 느긋하게 느껴진다. 3편까지 붙여 5시간여에 달하는 한 편의 영화로 나왔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호흡인데, 어쨌든 단 한 편의 영화로써는 그 호흡이 방만하고 느리다. 일례로,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뜨기까지 20여분이 걸렸다. 5시간짜리 영화라면 이해가 가능한 속도지만, 2시간 30분이 조금 안 되는 영화로써는 괴상한 호흡인 게 사실이지.


다만, 아쉬운 점은 이게 끝이다. 이제부터는 좋았다는 말만 할 것이다.



어크로스 더 스포일러버스!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편인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속편으로써 당연히 품는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1962년, 스탠 리와 스티브 딧코라는 두 만화가의 손에 의해 탄생한 이래 자그마치 60여년. 그 60여년의 세월동안 지면과 브라운관, 스크린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쌓여온 이른바 '스파이더맨' 관련 모든 컨텐츠를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함께 품고 달려나간다. 그것이 만화책이었든 TV 시리즈였든, 그리고 실사 영화이거나 비디오 게임이었든, 아니면 하다못해 고향을 떠나 일본 같은 타국에서 만들어진 컨텐츠였든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냥 그 역사들을 모조리 품어버린다. 물론 그를 가능케한 건 '멀티버스'라는 만능열쇠 덕분. 하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걷는 영화가 아니라 뛰어 달려나가는 영화라고 했다.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그 만능열쇠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세계 속 다른 모습을 지닌 여러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을 백화점 마냥 전시해두는 것으로 자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쩌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지금까지 제작된 역대 모든 스파이더맨 관련 컨텐츠들을 통틀어,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와 그 역사를 속속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Canon event', 국내에서는 '공식 설정'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된 이 개념은 모든 멀티버스들 속 모든 스파이더맨들의 개인적 역사를 모조리 관통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겪은 비극들이 하나의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것. 비록 피터 파커들 저마다의 얼굴은 모두 달랐을지언정, 토비 멕과이어 얼굴의 피터는 벤 삼촌과 절친 해리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또 성장했다. 앤드류 가필드의 얼굴을 한 피터 역시 벤 삼촌, 그웬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또 성장했지. 톰 홀랜드 얼굴의 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벤 삼촌에 이어 메이 숙모까지 모두 잃고나서야 각성하고 또 성장했었다. 실사 영화 기준으로만 이야기해도 이렇게 많을진대, 60여년이 넘은 스파이더맨 전체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이같은 비극이 얼마나 더 많았겠는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 공식 설정이란 개념을 통해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하나로 묶으면서도 또 분열시킨다. 모든 수퍼히어로들은 각자 저마다의 딜레마를 겪는데, 예컨대 트롤리 딜레마가 가장 대표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단 한 명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죄없는 다른 다수의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는 그 자체로 굉장히 강력한 딜레마인데,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여기에 공식 설정이란 개념까지 도입함으로써 거기에 운명론적 관점까지 추가 확대시킨다. 정해진 사건과 정해진 비극,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역사. 운명이란 존재가 가장 좋아하는 부사는 아마도 '이미'일 것이다. '이미 정해진 사건'과 '이미 정해진 비극', 그리고 '이미 그렇게 정해진 역사'.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이미'라는 부사를 강조하는 건 어른이란 존재 역시 마찬가지지 않은가. "내가 이미 다 해봐서 잘 알아", "나는 이미 겪어봤으니 내 말 들어" 등등. '이미'의 사전적 정의가 애초부터 어른들의 속성일 수 밖에 없다. '이미'는 "다 끝나거나 지난 일을 이를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른들은 삶이라는 각자의 타임라인 속에서 보통은 절반 이상의 진행도를 이미 보유한 존재들이지 않나.


바로 그 설정 때문에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각성하는 수퍼히어로의 훌륭한 성장담인 동시에, 기존 체제에 반해 달려나가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한 어린 소년의 쾌청한 성장담이다. 세상만사 모든 비극을 이미 다 겪어봤다는 강경한 태도로 "너가 아직 이해를 못하나 본데!"라고 외치는 성인 리더 앞에서, 팀의 초대받지 않은 막내가 된 마일즈는 이렇게 되받아치거든. "모두들 자꾸 내 이야기가 이미 다 정해져있다는 듯이 떠드는데, 아니야. 내 이야기는 내가 정할 거야!" 강경한 어른에 맞서는 아이. 체념한 운명에 맞서는 개인. 그러니까, '이미'를 거부하는 '지금'의 이야기.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지금까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가장 젊을 수퍼히어로 영화로 남을 것이다.


세상에 이미 정해진 미래를 기꺼이 반길 지금의 존재는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을 극복하고 돌파하길 원하지, 운명에 체념하고 달관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대표 얼굴로, 60여년이 흐르는 동안 언제나 오직 옳은 일을 해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거미줄 위의 젊은이가 선택되어 기뻤다. 게다가 그 60여년의 세월을 영리하게 담아낸 제작진까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와 그 역사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제작진이, 전체 멀티버스를 통틀어 적어도 우리 우주에는 있다. 


across-the-spider-verse.jpg.jpg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 호아킴 도스산토스 & 켐프 파워스 & 저스틴 K 톰슨


이전 19화"당신의 가장 젊은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