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존스와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
제목을 '레이더스'라고 하는 게 조금 더 옳은 표기이겠지만,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제목으로 하는 게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이후 시리즈와의 통일성도 그게 더 확실하고 말이다.
비단 영화사에 있어서 뿐만은 아닐텐데 모든 역사를 통틀어 시기와 운, 그리고 재능이 딱 합일하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조선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던 순간에 딱 이순신이란 존재가 있었듯이 말이다. 너무 거창한 예시인가 싶긴 한데, 그 정도로 <인디아나 존스와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은 엄청난 확률로 빚어진 일종의 기적이었다. <스타워즈>로 이제 막 특수효과가 영화 속에서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던 1980년대 초반 할리우드, 그 곳에는 스필버그가 있었고 또 조지 루카스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해리슨 포드가 있었다. 사실 스필버그는 팬으로서 지금의 놀란이 그런 것처럼 <007> 영화를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또 지금의 놀란과는 다르게 그가 영국인 감독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007>의 제작사에게 차이게 된다. 그러자 미국판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보겠다고 절치부심해 만든 캐릭터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 때때로 벌어지는 역사 속 안타까운 사연들은 이후 전혀 다른 위대함을 빚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디아나 존스는 출범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전설은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엄청 단순한 이야기인 것은 맞다. 성궤란 고대의 아이템이 제시되고, 이를 쫓는 나치와 그를 막으려는 주인공 일행의 대소동. 그 사이사이 오랜만에 만난 옛 연인과의 달콤한 로맨스는 양념. 어떻게 보면 스필버그가 염원했던 것처럼 단순한 <007> 영화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모험이 이 영화를 구분해낸다. <007> 시리즈가 첩보 활극의 대명사가 되었다면, <인디아나 존스>는 모험 활극의 대명사가 된 시리즈 아닌가. '모험 어드벤쳐 영화'라고 하면 우리가 즉각적으로 떠올릴 만한 대부분의 이미지들을 이 영화가 1980년대 초반에 이미 다 구축해놨다. 정글과 사막을 오가고, 고대 신전의 복도 양쪽에선 숨겨져 있던 함정들이 튀어나오고, 번쩍번쩍 빛이 나는 유물은 주인공과 악당들을 흔들어제낀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순도 100% 활극의 위대함. 영화를 보는 두 시간동안 그냥 롤러코스터를 쭉 한 번 타고 나온 것만 같은 기분. 어쩌면 그 기분이 이 시리즈를 40년 넘게 지탱해온 것 아니겠는가.
이후 시리즈 3편인 <최후의 성전>에서도 묘사되는 것이지만, 히틀러가 유대교 유물의 초자연적인 힘을 맹신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리고 끝끝내 밝혀지는 성궤의 실로 압도적인 권능. 아-, 이쯤되면 히틀러도 탐낼만 하군. 그와중 세간의 농담이자 평가처럼, 결말부에 이르면 인디가 정말로 아무 것도 한 게 없단 사실 역시 재미지다. 인디가 잠수함 타고 나치의 비밀기지까지 꼭 따라가지 않았어도, 아니. 애초부터 성궤를 찾는 나치를 굳이 막으려들지 않았어도 악당들은 간신히 찾은 성궤를 열어보곤 바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근데 그러한 점이 또 이상한 재미 요소. 어차피 그렇게 되었을 거란 결말 전개가 오히려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뭐랄까, 이 모든 게 그냥 인디가 꾸었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별짓거리 다 해가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실은 굳이 안 해도 되는 고생이었다는 진실이 너무 웃기다.
연출적인 면에 있어서도, 스필버그가 일류 감독이란 사실을 입증해내는 작품이다.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실루엣 연출부터, 요즘 영화들의 과시적인 롱테이크에 비하면 담백한 매력이 있는 롱테이크 연출까지. 무엇보다 프레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단 점이 대단하다. 만약 요즈음의 젊은 감독이 대신 연출했다면, 아마도 모험 활극 특성상 좌우 가로 x축을 활용하는 장면이 위주가 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인디의 뒷편에서 거대한 돌이 굴러올 때만 전후 z축 썼겠지. 헌데 스필버그는 한 프레임 내에서 x축과 z축을 다 쓴다. 인물이 좌에서 우로 이동하다, 뒷편에서 앞편으로 이동해 중요한 특정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아-, 스필버그는 80년대에도 스필버그였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할 5편의 개봉을 맞아,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았다. 다시 본 게 거의 20여년만 아닌가 싶던데. 헌데 영화 속에서 예전과 달라졌다는 옛 연인 마리온의 말에, 해리슨 포드의 얼굴을 한 인디가 대답하더라. 그새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고. 물론 인디 입장에서야 그를 연기하고 있는 해리슨 포드란 배우의 당시 나이가 서른아홉이었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했겠다. 하지만 그 대사를 읊는 인디의 모습을 보며, 2023년 현재 해리슨 포드가 여든의 나이로 5편을 찍었단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 말을 마음 속으로 나지막히 읊조릴 수 밖에 없었다. "아아-, 세월이 흘렀다고 말하지 말아요. 당신의 가장 젊은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