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와 역사 사이, 인간의 마음

<오펜하이머>

by CINEKOON


크리스토퍼 놀란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명감독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 때 대중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조차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기점으로 호불호의 씨앗이 움트며 자신이 만든 영화들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 논쟁 중에는 액션 연출이 형편없다느니, 여성 캐릭터를 기능적으로만 사용한다느니 하는 충분히 논의 가치 있는 비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동의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감정. 인간의 감정. 크리스토퍼 놀란은 꽈배기 마냥 한껏 꼬여있는 이야기 전개로 이른바 플롯의 마술사란 칭호를 얻었다. <메멘토>와 <인셉션>, <덩케르크> 등의 작품들을 통해 시간을 분해하고 다시 융합하는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능력은 실로 대단했거든. 흡사 루믹스 큐브 세 개를 저글링하면서 동시에 풀어내는 듯한 실력.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런 놀란은 철저히 이과형 감독처럼만 보였다. 수학적이고 건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는 귀신 같았지만, 언제나 그 이야기 안의 인간이 가진 감정에는 놀랍도록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감독. 바로 그랬기에, 나는 <오펜하이머>를 두려워했었다. 이야기의 형식과 구조 보다도, 그 안에 실존하던 인간의 마음을 찾아 훑는 일. 그게 바로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구조 아니겠는가. 헌데 과연 놀란이 그걸 잘 할 수 있을까? 확고한 비주얼리스트고 확실한 테크니션임에도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엔 늘 젬병처럼 느껴졌던 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영화는 주인공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까뒤집진 못한다. 킬리언 머피가 실로 대단한 연기를 펼침으로써 그에 그나마 큰 기여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놀란 특유의 건조한 톤 때문에 오펜하이머란 인물의 절절한 감정이 사무칠 정도로 관객에게까지 닿지는 못하고 있다 생각한다. 다만 놀란도 평소보다 더 노력을 한 것 같긴 하다. 필모그래피 최초로 만들게 된 실존 인물에 관한 전기 영화였으니 더 그랬던 것일까. 놀란은 기존에 자신이 보여주었던 일관되게 차가운 톤의 연출 위에 종종, 그의 필모그래피 입장에서는 파격으로 보이는 연출들을 더해내 오펜하이머와 그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한다. 예를 들면 철저히 오펜하이머에게만 들리는 듯한 신경질적이면서도 고조되는 각종 소리들, 자신에게 윽박지르고 있는 상대가 마치 핵폭탄이라도 맞은양 과다 노출된 상태로 보이는 상황, 아내인 키티 입장에서 남편의 과거 불륜 사실을 듣는데 그 모습이 적나라한 묘사로 직접 드러나는 장면 등. 평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연출들이 <오펜하이머>에는 산재해있다. 그러니까, 놀란이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오펜하이머>를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건 맞는 것 같다. 그에게는 일종의 도전이었을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의 감정은 종종 피상적으로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의 그가 표현을 참아내는데에 익숙했던 인물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청문회에 불려다니며 보냈던 세월은 어쩔 수 없이 더욱 그랬겠지. 고로 놀란이 화면 상의 연출에 제아무리 힘을 더 줬다한들,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것 같진 않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넘어갔다면 이후 영화사에 필히 이름을 남길 감독으로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았겠지. 프레임 위에 새겨넣는 연출로는 부족했단 걸 알았는지, 크리스토퍼 놀란은 정파 대신 사파의 길을 택해 걸어간다. '화면 연출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않네? 그럼 내가 잘하는 방식대로 해야지. 편집과 그에 따른 플롯으로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터뜨리자!'


그리고 그게 먹혔다.


놀란이 그린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는 <덩케르크>가 그당시 덩케르크의 일을 다뤘던 방식처럼 일종의 재편집화 되어 있다. 거기에는 현재가 있고 과거와 대과거가 있다. 그리고 또 오펜하이머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컬러로, 그가 직접 겪지 못한 순간들은 흑백화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런 재편집화, 그러니까 재구조화는 오펜하이머란 인간의 속을 그대로 까뒤집어 보여줄 순 없어도, 그 한 사람의 역사 속 특정 맥락들을 오려 붙여 이어감으로써 관객이 자연스레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미스테리를 밝혀나가는 추리 영화처럼 인과관계를 뒤섞은 뒤 뒤늦게 사건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도 하고, 또 그로인해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와 어떤 기분일지 따위를 간접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과거 시점에서 벌어지는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와 비교적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는 스트로스의 청문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좋은 대구를 이루며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아이러니를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그리고 아이러니가 체감되니 그 안에 놓인 인간의 마음은 자연스레 따라와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더불어 곳곳에 인서트 쇼트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는 원자들의 이동과 충돌 등은 그 편집 타이밍으로 말미암아 물리학을 넘어 인간의 마음까지도 비춰 담아낸다. <오펜하이머>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에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미스테리가 될 것이다.


원자와 역사 사이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킬리언 머피와 함께 찾아낸 인간의 마음. 특히 청문회 장면이 시작되면서부터, 오펜하이머는 절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폭발시키지 않는다. 방사능에 천천히 피폭 당하듯, 그저 안에서부터 내폭당한 인간 오펜하이머. 본디 자연의 본질을 쫓는 과학과 수학은 그 자체로 순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여의도가 그렇고 저쪽의 워싱턴 DC가 그런 것처럼 정치판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질은 애시당초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는 세계다. 그렇게 진흙탕 싸움 한 가운데에 던져진 한 인간에 대한 영화. 그 옛날의 신화 바깥에도 프로메테우스는 존재했고 그는 미국인이었다. 


a01dfaa7939819fb98e3705544b057a4.jpg <오펜하이머> / 크리스토퍼 놀란


이전 01화이유도 명분도 없이, 헤어질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