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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Feb 29. 2024

한 명의 사람, 하나의 세계

<바튼 아카데미>


흔히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들 말한다. 그러니 성인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저마다 최소 18년 이상의 역사를 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최소 18년 이상의 역사와 그를 담고 있는 각자의 세계는 또 각각의 높이와 깊이를 지니고 있겠지. 누구나 행복하고 즐거운 데에 있어서 필요한 각자만의 고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각자만의 깊이 또한 분명 존재할 것이고. 허나 행복과 즐거움은 보통 쉽게 내세워지고 관찰되는 것이라서 마치 평지에서 높은 산을 바라보듯 쉬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인 반면, 슬픔과 외로움이란 대개 타인이 봤을 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 그 관측이 쉽지 않다. 마치 그 덩치의 90% 이상을 잠잠한 해수면 아래 숨기고 있는 빙하처럼 말이다. 


명문 학교 바튼 아카데미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해 2주동안의 짧은 방학기간을 맞이한다. 학생과 교사들 대부분이 모두 신나게 학교를 빠져나갈 무렵, 슬프게도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문제아 앵거스 털리는 계부와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난 친모 때문에 몸을 의탁할 보호자를 잃어 학교에 남겨지고, 다른 교사들이 '왕눈깔'이란 별명으로 수근대며 은근히 따돌림 시키는 꽉 막힌 교사 폴 허넘도 동료의 핑계에 의해 학교에 남겨진다. 여기에 최근 베트남전 파병을 갔다 전사한 아들 때문에 심적으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메리는 학교의 조리사이다 보니, 털리와 폴의 끼니를 챙겨줘야만 해 또 학교에 남겨진다. 그렇게 마치 체에라도 거른 듯 서로 다른 이유로 학교에 남겨진 세 사람. 과연 이들은 따뜻한 연말을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각자만의 페르소나가 있다. 가족 앞에서의 모습과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 연인 앞에서의 모습 등이 모두 조금씩은 다르단 소리. 그리고 이 같은 점은 서두에서 말한 바와 맞물려, 한 명의 인간을 그 내면의 바닥까지 파악하게 만드는 걸 어렵게 만든다. 바튼 아카데미에 남겨진 세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앵거스와 폴이 서로에게 딱 그랬다. 앵거스에게 있어 폴은 융통성 없는데다 평생 연애라곤 못 해본 듯 보이는 한심한 어른이고, 반대로 폴에게 있어 앵거스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 오늘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매일 수업 시간 때만 서로를 볼 수 있었던 그들. 그들은 그렇게 한정적인 시간동안 한정적인 관계 안에서 한정적인 과정들로만 서로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주간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 되며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비록 몸은 학교 안에 묶여있지만, 적어도 학생으로서의 나와 교사로서의 나를 벗어나 서로가 한 인간으로서의 나로 발가벗은채 마주하게 됐단 소리. 그 과정 안에서 앵거스는 폴에게도 한때나마 호르몬이 터져흐르는 청춘기가 있었음을, 그에게도 아직 이루지 못해 서성거리는 꿈이 존재함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폴 또한 앵거스에게 나름의 진지한 구석이 있음을, 그리고 짐짓 반항적인 그의 모습 이면에 어떤 슬픔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일정 부분 희생하는 결말까지 가닿게 되고 말이지. 


상술했던 것처럼 한 명의 사람을 하나의 세계라고 한다면. 그 세계를 여행하는 데에는 충분한 물리적 시간과 여유로운 정신적 태도가 모두 필요할 것이다. 그게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탈리아든 간에, 한 개의 국가를 1박 2일이나 2박 3일의 시간만으로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않나. 또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아니면 도쿄나 교토, 아니면 로마나 피렌체 같은 특정 도시 및 지역들만 대충 구경했다고 또 그 국가들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되고. 그렇듯 한 명의 사람은 곧 하나의 세계임으로, 그 개개인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고 넓은 시간이 그만큼 필요할 것이다. 앵거스와 폴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고 또 그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시간이 됐다면. 나는 그걸 한 번 알아보기로 결심하는 것도 굉장히 기쁜 선택일 것 같다. 


<바튼 아카데미> / 알렉산더 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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