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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Sep 29. 2024

철의 장막을 뚫어버린 진심

<테트리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디오 게임 중 하나가 아닐까. <테트리스>는 테트리스가 쌓아올린 그 신화의 이면을 다루는 영화다. <소셜 네트워크>와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 인류 역사상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버린 기업 또는 아이템의 성공 신화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던 어두운 이야기. <테트리스>는 테트리스를 개발한 소련의 알렉세이 파지노프와 그 게임을 전세계에 유통하려던 미국의 행크 로저스를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을 소재로 삼고 있긴 하지만, 영화는 결국 소련이 드리우고 있던 철의 장막 내부에서 탈출하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 탈출 주체는 매번 달라진다. 테트리스란 게임을 소련 바깥으로 탈출시키려 행크가 철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지만 이내 그 조차도 탈출의 주체가 되고, 이후엔 KGB로부터 가족의 안위까지 협박 당하게 되는 알렉세이 또한 그 뒤를 잇는다. 비디오 게임의 저작권 반출로 시작된 체제 바깥으로의 엑소더스. 하여간에 그 어디에도 사람의 이야기가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니까. 테트리스란 익숙한 게임 이면에 이런 악다구니가 있었을 줄 그 누가 또 알았겠어. 


영화 속 소련 내부의 묘사는 시종일관 압박감을 선사한다. 공산주의란 허울 좋은 명목 아래 모두가 똑같이 평등하게 가난하고 부박해지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각종 공작이 판을 치는 세상. 미행 당하는 게 기본이요, 자신의 소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세상. 정당한 계약을 하려고 해도 그것이 불가능하고, 심지어는 골목에서 공권력에게 얻어터질 수도 있는 세상. 영화는 이같은 소련 내부의 모습을 무채색의 회색빛으로 더 강조해냄으로써 그 압박감에 한 꺼풀을 더한다. 


하지만 다소 뻔한 소리임에도, 그 철의 장막을 뚫고 나올 수 있게 만든 건 결국 진심이었다. 비디오 게임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유희 정신이 그 첫째다.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본격 비디오 게임 회사에 다니던 직원이 아니었다. 그저 컴퓨터로 업무 보는 틈틈이, 자신의 취미삼아 테트리스를 만들었던 것 뿐이었지. 그는 그걸로 이익을 보려 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그게 불가능한 사회이기도 했으니까. 좌우지간 시간을 때우며 순수한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자 욕망이었다-, 이 말이다. 


둘째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애틋한 마음. 행크는 굳이 알렉세이의 삶까지 구해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집까지 날아가게 생긴 판국인데 제 코가 석자지, 어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알렉세이의 상황까지 고려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행크는 자신의 삶을 구한 뒤 끝끝내 알렉세이와 그 가족들의 삶까지 구해냈다. 거기엔 같은 비디오 게임 개발자로서의 존경심이 있었을 것이고, 더불어 소련에서의 시간내내 자신을 도와주고 마음을 써준 알렉세이에 대한 감사함 역시 존재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체제 안에서 간신히 꽃피워낸 동업자로서의 의리와 친구로서의 우정. 행크와 알렉세이의 마지막 포옹은 그래서 감격스러웠다. 


강대한 이데올로기와 복잡한 계약 서류들 모두를 철의 장막과 함께 뚫어버린 진심. 나는 언제나 인간의 위대함이란 그런 도리를 아는 인지상정의 마음과 측은지심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테트리스> / 존 S 베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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