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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Nov 05. 2024

역지사지의 동선

<보통의 가족>


해묵은 주제지만, 흔쾌히 잣대를 세웠던 이가 정작 자신이 그 잣대 앞에 서게 됐을 경우에 느끼는 당혹감과 그에 따른 변화는 언제나 흥미로운 광경을 선사한다. 그리고 <보통의 가족>은 그 제목에서 먼저 알 수 있듯 보통의 누구나라면 보통의 수준이라 당연히 여기며 세웠을 그 보통의 잣대 앞에 섰을 경우, 보통의 당신조차 보통은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비꼬는 영화다. 근데 그 비꼼이 싫지 않다. 


그 시작점과 끝점에 있어, 캐릭터의 변화 곡선이 각각 상승과 하강의 그래프를 그린다는 점. 그리고 영화속 두 주요 캐릭터의 그래프가 서로 완벽히 대척점을 이룬다는 점 때문에 <보통의 가족>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림을 그려낸다. 명품 옷을 입고 비싼 외제 차를 타며, 그저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살인범조차 변호하는 변호사 재완. 반면 그 동생인 재규는 소아과 의사임에도 겉멋에 신경 쓰지 않고 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봉사까지 하는 등 검소한 성자로서 살아간다. 그러나 재완과 재규의 자녀들이 거의 자의에 의해 누군가를 죽이게 되면서부터, 그 둘의 입장은 완벽하게 변화해 대칭을 이룬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변화' 그 자체처럼 보인다. 재완과 재규, 각각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는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변호사와 의사라는 직업이 이미 그를 잘 수식해주고 있을 뿐더러, 심지어는 그 둘이 결국 어디까지 가 닿는지 그 끝점 또한 실상 중요치 않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그것들이 아예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니고...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재완과 재규가 '변화'했다는, 그 명백한 지점 하나라는 거지. 


좀 더 넓게 보면 이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좀 더 타인의 관점에 아량을 베풀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텍스트도 읽힌다. 뻔한 사자성어지만 이른바 '역지사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되새겨 보자는 영화일 수도. 그렇다고 그걸 반대로 곡해해서 해석하면 안 되겠지. 우리 자식이 사람을 죽였지만 부모된 자로서 내가 어찌 그들을 내칠 수 있겠냐-는 일방적인 해석으로 닿아선 아니 되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보통의 가족>은 우리와 사회가 그어놓은 기준 선을 두고 그럼에도 세상에 절대적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말하는 영화다. 지극히 평범한 한 개인으로서의 나조차, 재완의 시작점과 재규의 끝점을 두고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아예 이해 못하겠단 건 또 아니니까. 반대로, 재완의 끝점과 재규의 시작점 역시 그 어려운 고귀함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니까. 


<보통의 가족> / 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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