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새로운 시작>
갑작스런 대홍수로 영국 런던 시내가 모조리 물에 잠겨간다. 그런데 하필 바로 그 날에 산통을 느낀 임신부. 다행스럽게도 응급실로 이송되어 바로 출산을 하긴 했지만, 그 아들 이름을 현재 상황에 맞게 노아로 짓자는둥 농담을 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곧 폐쇄될 응급실을 떠나 그 때부터 펼쳐지는 로드 무비. 그 과정에서 시부모와 남편을 차례대로 잃고 표류하게 된 여자는 과연 어린 아들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엄청난 재난 상황을 다루고 있음에도 스펙터클을 배제한채 미니멀한 규모로 영화를 구성해놨다. 그런데 톤 앤 매너를 워낙 잘 잡아놔서인지, 그게 저예산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선택 정도로 비춰지지 않고 오히려 직접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절망적인 상황을 상상하게끔 만드는 요술이 되었다. 대홍수의 상황 뿐만 아니라 남편과 시부모가 외출하고 돌아오기까지의 이틀 역시 그렇다. 정보가 배제되면서 이 상황이 더 무섭고 끔찍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확실히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누군가를 두고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져 그랬나보다 젠체한다. <끝, 새로운 시작>에서 마크 스트롱이 연기한 주인공의 시아버지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내를 잃은 뒤 절망감과 허탈함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일견 이해는 된다.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가 갑자기 떠나버렸으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들과 며느리, 갓 태어난 어린 손자를 두고 혼자 생을 마감해버린다? 이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을 두고 책임만 따지는 게 어불성설인 건 알지만 그래도 말이다.
흔히들 생존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여기던데, 내가 봤을 땐 그 반대다. 생존이 이유의 전제일 수도 있다. 일단 살고 봐야 내가 지키고 누려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일단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아내야 그 삶에 이유와 목적이 붙을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살으라고. 살아내라고. 그리고 그 다음에야 이유든 목적이든 찾아내라고. 정 못 찾겠으면 스스로 만들어 부여하는 것도 괜찮으니까.
그래도 주인공이 끝까지 생존하는 건 그녀가 최근 아들을 낳아 모성애가 충만했기 때문 아니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역시 가능한 이야기다. 다만 세상에 자기 자식 버리고 혼자 살아가거나 또는 심지어 자식을 먼저 죽인 뒤 자신도 뒤따라 생을 마감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일단 살으라고. 살아내라고. 그래야만 찾든 만들든 이유와 목적도 소명 받을 수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