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틱>
모르몬교도 두 명이 웬 중년 남자의 집에 전도를 목적으로 방문한다. 분위기도 뭔가 좀 께름칙하고, 안쪽에 아내가 있으니 걱정말라고 중년 남자가 계속 채근하긴 하는데 그마저도 미덥지 않고. 그치만 왕년에 로맨틱 코미디로 좀 날렸을 것 같이 생긴 남자가 이 정도면 친절한 편이니, 그래도 얼른 말씀만 좀 전하고 나오면 되겠지.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육감을 믿어야 하는 법이다. 께름칙하고 못 미더울 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하지. 허나 그걸 못한 반스 자매와 팩스턴 자매는 그 중년 남자의 함정에 스스로 발을 들이고야 만다.
재밌는 점. 그 께름칙하고 못 미더운 중년 남자인 리드가 제이슨이나 프레디 같은 막무가내 살인자가 아니란 점. 리드는 블루칼라 살인마인 그들과 달리 높은 학식 수준으로 두 주인공을 옭아맨다. 아마 한때 교수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종교와 신화에 능통한 리드. 그는 자신의 빠삭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 그리고 무슨 방 탈출 게임방 마냥 성심성의껏 꾸며놓은 자신의 집내 구조로 종교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반스와 팩스턴, 그리고 관객들까지 현혹시킨다. 마구잡이로 바로 죽이는 살인마가 아니라 무슨 고양이 쥐 갖고 놀듯 하며 인문학 유튜버라도 된 듯 설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천주교도나 기독교도가 아니라 모르몬교도를 주인공으로 상정한 점이 대담한데, 다소 영악하게도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그 신도 수가 적고 대외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은 모르몬교도들에 대해 일말의 공감과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담해보이는데, 또 한편으로는 천주교도나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이 이야기를 꾸렸을 때보다 모르몬교도가 주인공일 때 영화외적으로 덜 비난 받을 걸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어 영악하게도 느껴진다.
<65>에선 평범한 연출을 보여줬던 스콧 벡과 브라이언 우즈 감독 콤비는 정정훈의 촬영을 등에 업고 좋은 연출을 보여준다. 여기에 최근 <컴패니언>으로 눈여겨 봤던 소피 대처, 그리고 클로이 이스트가 와이드 쇼트에서 클로즈업 쇼트까지 고루 잘 따먹으며 멋진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나 두 감독이 무려 4개월에 걸쳐 출연을 설득했다는 휴 그랜트가 제일 돋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통틀어 로맨틱 코미디의 얼굴로서 오래도록 군림해왔던 배우의 호러 일탈기. 물론 휴 그랜트의 최근 선택들을 살펴보면 그게 완전히 생뚱맞은 일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최근 <던전 & 드래곤>에서의 그는 사기꾼이었고, <젠틀맨>에서는 속물 탐정이었으며, <웡카>에서는 움파룸파, 그리고 벌써 13년 전 작품인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선 무려 식인종을 연기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최근의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헤레틱> 속 휴 그랜트의 얼굴은 유독 더 특별해보인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그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찍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호러라는 장르의 톤 앤 매너 그리고 무드가 휴 그랜트 얼굴 위 주름주름마다 겹겹이 잘 배었기 때문이다. 초절정 바람둥이였던 남자가 어느새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 무섭고 음침한 중년의 아저씨로 스크린에 얼굴을 드리우고 있나니, 영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헤레틱>은 휴 그랜트의 그런 모습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