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낭만과 공포

<컴패니언>

by CINEKOO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의 첫 스마트폰은 아이폰4로, 그걸 처음 손에 쥐었던 건 대학 생활을 한참 즐기고 있던 20대 초반이었다. 젊은 나이였으니 그만큼 적응도 빨랐을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은 내 삶 깊숙한 곳까지 자연스레 들어와 있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자연스레'라는 부분이다. 어느새 신기함은 익숙함이 되고, 새로움은 당연함이 되었다. 그러다 군대를 일찍 가 전역도 빨랐던 친구를 만났고,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해 난 그 날 역시도 자연스레 CGV앱을 열고 영화를 예매했더랬다. 그런데 그걸 옆에서 보던 친구가 펄쩍 놀라며 묻더라. 영화 예매 같은 것도 이 폰으로 다 되는 거냐고. 그 순간의 나는 그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야 스마트폰이란 신문물을 채 알기도 전에 군대를 가버렸으니 그같은 충격이 당연했을 거다.


겨우 군대 좀 빨리 갔을 뿐이던 친구도 불과 2년 사이의 기술 차이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달리 생각하면 그 2년 동안의 기술 발전이 얼마나 빨랐는지, 또 우리는 그에 얼마나 빨리 적응했었는지 얼추 체감된다. 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명확하다. <컴패니언>이 그려내는 미래는 우리에게 또 얼마나 가까운 미래일까? 사물 인터넷 기술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제어할 수 있고, 도로엔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되어 돌아다니는 시대. 여기에 <컴패니언>은 일종의 '반려 로봇'을 상정해 데이트 및 가정 폭력부터 페미니즘, 인셀 문화, 그리고 기술 혐오, 여기에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까지를 장르적 맥락 안에서 잘 비벼냈다. 예술 매체인 영화를 두고 '효율' 따위의 단어를 쓰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컴패니언>은 썩 괜찮은 가성비로 조립된 효율 좋은 작품이다. 메시지도 명확하고 장르적으로도 재미있다.


사실 영화에 큰 반전 따위는 없다. 권선징악의 구도는 명확하고 조물주에 의해 농락 당하는 피조물의 구도 역시 전형적이다. 죽을 존재가 죽어가고 살아남을 존재는 살아남는다. 하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인 아이리스가 대놓고 이야기하질 않나. 스스로의 존재에 의의가 생겨났던 순간이 딱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조시를 만났을 때였고 다른 하나는 그 조시를 죽였을 때였다고. 심지어 영화를 중간까지 보다보면 조시가 무엇으로 어떻게 죽을지도 예상된다. 내 눈치가 빨라서였다기 보다는 감독이 체호프의 총 마냥 그걸 암시하고 싶어 잔뜩 안달이 나 있었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영화가 소반전을 연이어 잘 썼다. 대반전은 없지만 적절한 순간에 조금씩 던져지는 소반전들로 영화가 잘 이어지는데 거기에 또 궁색한 느낌은 없다. 말이 소반전이지, 그것들로 인해 관객들은 극중 인물 또는 상황들에 계속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리스가 알고보니 인간 말고 로봇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 배려없고 한심하지만 그래도 착해보이긴 했던 조시가 알고보니 살인을 계획했었다는 것, 사람 좋아보이던 패트릭도 알고보니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출장 왔던 반려 로봇 회사의 수리 기사들도 알고보니 조시의 거짓말을 다 간파했었다는 것 등등. 헨젤과 그레텔이 그랬던 것처럼 <컴패니언>은 적절한 소반전들을 빵가루마냥 솔솔 뿌려대 관객들이 흥미를 갖고 따라올 수 있게끔 영리한 작전을 짜놨다.


간결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개와 여간 잘 써먹은 게 아닌 효율적 장르 맥락 아래서, 영화의 다면적 메시지도 은은히 빛난다. 전무했던 타인과의 섹스 경험을 무생물로 잔뜩 채우면서도 그 이면에선 음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던 조시는 현대 인셀 문화를 대표하는 전형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아이리스를 대하는 전반부 모습에선 은연한 가부장적 면모가, 후반부 모습에선 노골적인 데이트 및 가정 폭력의 면모가 드러난다. 그러다보니 여성주의에 대한 문맥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허나 역시 가장 인상적인 건 결말부 아이리스의 모습이겠지. 결말을 통해 아이리스는 여성 해방을 넘어 존재 해방의 차원에 까지 이른다. 길고 긴 해당 장르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알렉스 프로야스의 <아이, 로봇>, 그리고 알렉스 가랜드의 <엑스 마키나>와 병치된다. 그리고 어쩌면 <매트릭스>의 프리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불과 2년 사이에, 일찍 전역했던 내 친구는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직접 극장엘 가거나 컴퓨터를 찾아 PC방에 들릴 일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벌써 15년여가 흐른 지금. 영화 예매는 당연하고 이제 스마트폰만 있다면 외국인과도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싼 가격에 AI도 비서로 부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레 익숙해지는 데에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또 20년 뒤는 어떻게 될까.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며 다음 20년을 상상한다면, <컴패니언>이 그려내는 미래 역시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그 기술의 편리함과 낭만이 멀지 않아 보이고, 동시에 그 미래의 부조리와 공포 또한 멀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이용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 발전하는 기술은 낭만인 동시에 언제고 공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컴패니언>은 적절한 장르적 재미와 함께 그같은 두려움을 관객들 마음 속에 고이 저장시키고야 만다. 


tempImageaij1MW.heic <컴패니언> / 드류 행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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