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널 걸스>
제작 순서 상으로는 이쪽이 더 먼저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감독인 토드 스트라우스 슐슨은 <어쩌다 로맨스>로 메타 속성을 잔뜩 버무린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들이 가진 전형성을 그대로 벗겨와 그를 인정하면서도 쿨한 태도로 신선하게 놀았던 감독. 그랬던 감독의 전작 역시도 메타 코미디다. 대신 이쪽은 호러 장르. 그것도 80년대 미국풍 슬래셔 호러다.
제이슨 부히쓰 같은 무적의 연쇄살인마를 상정해 판을 깔아두고, 영화는 갖가지 장르 공식들을 가져와 신나게 메타 플레이를 즐긴다. 섹스하면 요단강 건너기 마련인 장르이니 섹스는 물론이고 아예 옷 벗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든가, 살인마의 등장을 알리는 메인 테마곡이 들리면 주인공들이 다 긴장한다든가, 아니면 죽음의 위기 앞에서 억지로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조한다든가... 슬래셔 호러 영화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설정과 장면들이 극중극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주인공들을 통해 성실히 재현되고 또 창의적으로 비틀어진다. 그러면서도 기본은 코미디라, 주인공들 하는 짓이 가끔 웃겨서 또 뻘하게 터지고. 토마스 미들디치가 연기한 영화광 캐릭터는 하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비틀대고 뻘쭘해 해서 웃긴다. 진짜 별 것 아닌데 점프하다 자기 혼자 넘어지는 게 너무 웃김.
이렇게 기상천외한 컨셉을 가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늘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더 재미있게 풀 수 있었을 법한 길을 택하지 않고 다소 빙빙 돌아가는 듯한 인상도 있고. 호러 장르를 가져온 것 치고는 너무 코미디에만 치중해 공포감이 덜한 것 역시 단점. 여기에 향후 전개를 다 예측 가능하게끔 만드는 사소한 소품 설정들도 아쉽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파이널 걸스>는 거기에 최고의 에센스를 심어두었다. 추억을 물상화 시킬 수 있는 영화 매체에 대한 헌사이면서도, 가족 간의 독특하고 단단한 멜로 드라마. <더 파이널 걸스>의 장점은 거기에 있다.
공포 영화의 조연으로 반짝했다가 결국 꿈꾸던 무비 스타는 커녕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도 별 볼 일 없는 영화들의 오디션만을 기웃거리고 있던 아만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애틋함을 느꼈던 딸 맥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아만다가 죽고 나서부터, 맥스는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엄마의 기일에 극장에서 상영된 바로 그 공포 영화 속으로 친구들과 빨려들어가게 된 것. 맥스는 거기에서 죽은 엄마의 젊은 시절을 만난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그건 아만다가 아니지. 아만다가 연기한 낸시지.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더 파이널 걸스>는 빛이 난다. 친구처럼 만난 엄마. 엄마처럼 생긴 새 친구. 독특하고 기묘한, 참으로 좋은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일련의 모험들을 거친 후, 맥스가 자신을 엄마로 여기고 있단 걸 알게된 낸시. 맥스를 위해 희생을 결심한 낸시가 말한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잖아." 그 장면에서 <라스트 액션 히어로>의 결말이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도 그랬지. 주인공 소년이 우러러보던 영화 속 영웅이 그에게 말하지 않나. "나는 언제나 이 영화 속에 있을 거야." 생각해보면 영화라는 매체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언제나 바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 가장 젊은 순간을 영화는 항상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추억도 그렇잖아. 그게 영상화가 안 되어서 오직 우리 머릿속에만 있어서 그렇지. <더 파이널 걸스>는 영화 매체의 그러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짚어낸 영화다. 전체적으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강력한 아름다움이 좋아서 영화가 자꾸 마음 속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