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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영 Nov 27. 2016

Underground Boy

다방집 소년 (연재소설 #7 상)

다방집 소년 7(상)


 사실 아까부터 정신은 돌아왔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확실히 무슨 수송기 같은 비행기 안이 아니고 오히려 밀폐된 방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은 채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했다. 이런저런 소음부터 내 앞 어딘가 멀리에서 여자 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그것도 포함합니까?”

 “……”

 “네, 그래도 아직 소년인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집행하겠습니다.”

 “……”

 “아닙니다.”

 “……”

 “그 시계는?”

 “……”

 “아! 그렇군요. 네, 이제 알겠습니다.”


 아까부터 무슨 전화를 하는지 혼자 말을 하고 있었다. 주로 나에 대해 어떤 정보를 듣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아마 나에게 할 수 있는 고문의 수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완전히 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머리 뒤쪽이 아주 아팠다. 정확히 뒤통수를 맞아서 뒤통수 쪽이 매우 욱신거렸다. 더군다나 넘어지면서 얼굴을 땅바닥에 부딪쳤는지 왼쪽 턱 아래도 따갑고 시큰거렸다. 아! 젠장! 어떻게 반항 한 번 못해 보고 맥없이 기습을 당한 것이란 말인가? 한편으로는 이미 말했듯이 그 미스터리 한 그 소녀의 말은 다시는 듣지 않을 셈이다.

  그렇게 한 번 더 굳은 다짐을 하는 나는 이미 포승줄로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어느 원목으로 된 책상에 엎드린 채 국민학교 시절 삐거덕 거렸던 학교 의자를 연상케 하는 작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마도 상당한 거구일 뿐만 아니라 눈빛이 상당히 묘했던 도깨비 군인의 그 얇고 긴 스테인리스 봉을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여기 상황 파악부터….

 드디어 나는 살며시 실눈을 떴다. 최대한 주변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이곳은 일종의 심문실 같았는데 방의 내부는 상당히 넓은 지하실 같았다. 창은 없었고 사방은 막혀 있어서 숨이 턱  막혔다. 다만 어딘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는 들렸다. 우리 다방집도 홀 두 군데쯤에 건물 마당으로 향하는 배기창이 있어서 거기로 환풍기를 매일 24시간 돌렸다. 그래서 그나마 늘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다방집이라지만 여느 꽉 막힌 곳보다는 공기 순환이 잘 됐다.

 일단 출입구를 찾아보니 내가 앉은 책상의 맞은편에 밖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하다방집 내실 옆 채 한 평도 안 되는 감옥 같은 쪽방에서 자게 되면 언제나 느껴지는 쿰쿰한 곰팡내가 여기서도 은근히 풍겨왔다.

 이런 여우들이 지배하는 요괴들의 나라에서도 지하실 냄새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나는 좀 낯이 설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빵 터졌달까?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대놓고 웃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호랑이 굴에 가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어지러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때다.

 가장 먼저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상당히 큰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지난번 고양이 나라에 갔을 때도 손에서 나오는 모종의 에너지로 고양이 인간들을 저 멀리까지 튕겨 버린 적이 있었다. 이 능력이 여기서도 통한다면 나는 이들을 순식간에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결국 나는 지금 여기서 내 능력의 한계치가 어디까지인지 알아야 한다. 지금은 손이 꽁꽁 묶여 있지만 어떻게든 이 포승줄을 풀어낸다면 나는 여기를 탈출해 기필코 이 세계의 동쪽 하늘 끝에 산다는 청룡을 찾아갈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책상 바로 위에 전등이 하나 있었다. 아까 그 여자 장교 쪽으로도 책상이 하나 있었고 그  책상 위 천장에도 갓이 있는 백열전등이 내려와 있었다. 당장은 확실히 그 수를 셀 수 없는 병사들이 늘어서서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인지 긴 총을 단단히 잡고 언제든 내게 발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들 역시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지만 나는 이들을 해치울 수 있다는 무턱 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일곱 살 무렵부터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여러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이 곳에서 펼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섣불리 나섰다가 저 장총에 벌집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확실한 것은 언제든 돈만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 우리 다방집 갤러그 전자오락게임과 달리 마음속 싸움에선 어쨌든 지는 자가 죽는 것이다. 경일이의 할아버지와의 그 힘든 싸움에서 나는 그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꿈속에서 그 큰 대고채로 현 대통령의 머리를 곤죽을 만들었던 때는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정신을 차렸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드는 생각은 결국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를 노렸다. 나는 매우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고개를 드는 연기를 했다.


 “아아! 머리야!”


 예의 체격이 단단하고 얼굴이 매섭게 생긴 그 여자 장교가 통화를 하고 있다가 내가 ‘아아!’ 하는 소리를 내자 이내 전화를 끊고는 내가 있는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장교는 바로 내 앞에 서더니,  


 “이제 정신이 드느냐?”

 “아! 네, 네!  그런데, 머리가 아주 아파요.”  

 “네 머리에서는 피 한 방울 안 났다. 엄살떨지 마라! 나는 몇 가지 너에게 질문을 할 것이다. 정확하게 대답을 하라! 알겠나?

 “네, 네!”

 “자! 일단 네 이름은 뭐냐?”

 “조성재요. 엄마가 저보고 창녕 조(曺)씨라네요. 이룰 성(成), 재상 재(宰)!”

 “본관이 어딘지 내 알 바가 아니다. 너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자, 그러면 너의 나이는?”

 “저요. 17살이요. 고등학교 1학년이요.”

 “너의 가족은 어떻게 되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안 살아서 어디 있는지 모르구요. 쭉 엄마랑 같이 살았어요.”

 “그래, 그럼 어머니 이름은?”

 “이순화씨요!”


 저쪽 이 여성 장교가 전화를 하던 책상에 앉은 비무장한 군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여성 장교와 나와의 심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미 말했듯이 너는 특수 간첩 혐의와 국경침입 혐의로 이곳에 체포되어 있다. 네 혐의를 인정하느냐?”

 “네? 왜죠? 제가 무슨 간첩이요? 저는 학생이에요. 그냥 고등학생! 정말 어쩌다 보니 여기 와 있는 거예요. 늘 잠겨 있었던 안방 금고문이 웬일인지 열려 있어서요.”

 “도대체 무슨 설명이 그래? 날 이해할 수 있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하란 말이다! 다시 한번 더 묻겠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저요. 그러니까 팩트를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냥 집에 있다가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됐다니까요.”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너 미친 거냐? 이게 무슨 장난이라고 생각하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진지하게 대답해라! 너는 어디서 왔고 무슨 목적으로 대선호국에 침입했는가?”

 “아니, 저는…. 그냥 집에 있는 그림을 보다가…….”


 내가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는 게 군인인 그녀로서는 몹시도 신경에 거슬렸는지 갑자기 화를 내며 허리춤에 차고 있는 권총을 꺼내 내 이마에 갖다 댔다. ‘철컥’하고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히 들어라! 지금부터 똑바로, 제대로, 정확하게 진술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즉결 심판하겠다. 알겠나?”


 화가 난 여우 왕국 엘리트 여성 장교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는 딱히 두렵거나, 무섭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워낙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시기 문제 때문에 상당히 쪽팔리는 일이 여러 번 있었어도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식의 위협이나 폭력이 두렵거나,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고아원 원장에게 귀를 잡힌 채 뺨을 수도 없이 맞았을 때도 아프긴 했어도 두렵진 않았다. 그저 분노가 생길 뿐…….

 다만 인간의 세계가 아닌 별 이상한 곳에 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나 할 수 있었던 내 특수한 능력들을 여기서도 펼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일단 내손을 묶고 있던 포승줄은 내 마음의 생각만으로도 스르르도 풀렸다. 오!

 일단 풀린 포승줄 끝을 아무도 모르게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이제 한 순간 필살의 공격을 펼칠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이 밀실에 있는 6명의 보초병과 1명의 기록병, 지금 여자 장교 1명 정도가 이 방안에 있는 모든 병력으로 파악이 됐다. 나는 침착하게 진술을 이어갔다.  


 “저, 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D시에서 왔는데요. 여기에 올 아무 이유나 목적은 없습니다. 전혀! 우연찮게 왔을 뿐입니다.”


 손목을 감고 있던 포승줄이 풀리자 몸 전체를 싸맨 포승줄들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아직 장교는 총을 겨누고 있는 자기 손에 집중하며 긴장을 하고 있어 내 몸을 둘러싼 포승줄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너는 바로 인간 세계에서 왔다는 말이지…. 그걸 내가 믿으라는 것이냐? 자!  자 다시 한번 묻겠다. 너는 분명 벨루아 공국에서 온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네, 벨루아 공국이요? 처음 듣는 데요. 그게 뭐예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 여자 장교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이지 벨루아인지 벨루치인지 그런 말은 내가 아는 말이 아니었다. 공국이라니 무슨 나라인가? 아! 베네치아는 안다. 셰익스피어의 <베네치아의 상인>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자! 이제 공격을 개시할까 하는 바로 그때였다.


 “그 뭐냐? 우리의 적국으로서 고양이 인간들이 많이 사는 나라다. 거기 귀족들도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다만?”

 “네! 네! 전혀요. 전혀 모릅니다.”  


 나는 깜짝 놀란 나머지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행히 저 여자 장교가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그렇구나! 내가 갔었던 그 고양이 나라를 이 요괴들이 사는 여우들의 나라에서는 벨루아 공국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오호! 그러면 나를 거기로 데려갔던 성명 미상의 소녀도 벨루아 공국에서 이 여성 장교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일단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동선을 짰다. 지금 이 여성 장교에게 충격을 가하고 다음으로 저쪽 군인 순서! 그렇지!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린 도깨비 군인도 있어야 아까 느닷없이 당했던 걸 되갚을 수 있는데 하필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알았다. 그럼 다르게 질문을 하겠다. 자, 네가 만약 인간 세계에서 왔다면 말이다. 그럼 넌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나?”

 “그, 그니까, 그 무슨 그림이냐? 여하튼 우리 집 금고 안에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펼쳐 보니까 무슨 그림인데 정확하게는 큰 나무와 기암괴석이 있는 풍경에 보름달이 뜬 산수화였습니다. 그 그림을 보다가 보름달이 하도 생생해서 어쩌다 만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제가 그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황당한 표정의 장교가 내 이마를 겨놓던 권총을 내려놓더니 다시 권총집에 넣었다. 그리고 그 장교의 바지 주머니에서 검은 손목시계를 내 눈앞에 꺼내 들었다. 아차! 이미 손목을 만져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저 시계는 내가 차고 있던 바로 그 시계였다.


 “아! 그래! 너도 거짓말을 참 잘하는구나! 내가 너에게 깜박 속을 뻔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내가 들고 있는 이 시계 말이다. 이 시계는 벨루아 공국에서 만든 특수 통신 기기로 분석됐다. 자!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벨루아 공국 간첩 놈아!”

 “제 대답은요?”


 그 말을 하면서 순식간에 내가 계획했던 일을 실행했다. 포승줄을 푸는 순간 여자 장교에게 손을 들어 에너지를 발사해 충격을 주었다. ‘붕’ 날아올라 빙글 몸을 돌리면서 뒤에 있는 초병 둘에게 에너지를 발사해 충격을 가했다. 나머지 네 명의 초병도 땅에 착지하면서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가장 마지막에 남아 벌벌 떨고 있는 기록병까지 기절시킨 후 여자 장교의 손에 쥐어 있던 검은 손목시계를 차고 지하계단으로 조심히 올라갔다.

 계단 끝에 이르자 무슨 둥글게 이어지는 복도가 나왔다. 한참을 걸어 그 복도 끝에 이르자 건물 입구가 보였다. 그런데 마침 건물 입구의 문이 열려 있었다. 밖은 여전히 밤이었다. 문밖으로 막 나가려는 누군가 나를 막아섰다.

 나에게 일격을 가했던 그 도깨비 군인이 긴 스테인리스 봉으로 나를 막아선 것이다. 소위 도깨비방망이라고 알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는 그냥 길고 얇은 스테인리스 봉의 형태였다.  

 일단 도깨비 군인과는 정식으로 한 판 벌여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계단 밖으로는 말로만 들었던 황룡사 8층 목탑 같은 굉장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건물마다 환하게 빛이 나고 있어서 무슨 대도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심문받던 건물 역시 굉장히 큰 목탑 형식의 건물이었다. 그 도깨비 군인이 무슨 신호를 하자 여기저기 건물에서 도깨비들이 구름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와! 뭐 이런 장관이 있나 싶었다. 순식간에 도시의 거리를 가득 메운 도깨비 군인들이 든 스테인리스 봉이 보름달빛에 반짝였다. 그래선지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건물들 사이를 가득 채운 도깨비들이 있지만 일단 내 앞을 막아선 이 기분 나쁘게 생긴 도깨비부터 해치울 것이다.

 새벽이 가까워져서인지 보름달이 서쪽을 향해 휘영청 밝게 떠 있었다. 드디어 나는 나에게 기습을 가했던 저 도깨비 군인과 첫 합을 맞추었다. 나는 도깨비가 부리는 저 스테인리스 봉의 움직임을 눈으로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점차 봉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도깨비의 봉이 나의 이마를 향해 정확히 날아오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도깨비의 봉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도깨비를 향해 왼손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쏘았다. 비록 엄청난 덩치의 도깨비였지만 상당한 큰 충격을 받아 저 멀리 날아가 도깨비 군인들을 덮쳐 버렸다. 일단 아까의 일은 되갚았다. 그럼 됐다. 남자 사람이 그런 정도의 오기는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기어코 요괴들이 사는 도시 여기저기에서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 도시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간첩이 탈출했다.”

 “놓치면 안 된다.”

 “저 놈이 하늘을 난다.”

 “어서 공격하라!”


 결국 나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어머어마하게 많은 수의 도깨비들을 한 명씩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 세계에서의 나의 활동은 마음속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은 해볼 만한 게임이 되었다.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밤하늘로 날아올라보니 여우들의 왕국이라는 이 대호선국의 수도는 9층에서 18층 혹은 30층에 이르는 거대 목조탑 형식의 건물들이 마치 도시의 빌딩가처럼 대로변에 죽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정확한 규격의 도로와 광장도 보였다. 군데군데 무슨 왕궁 같은 것도 보였다. 아마 저기에 여우 왕국의 교활한 왕이 살 것이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도깨비들이 나를 겨냥해 그 얇고 긴 스테인리스 봉을 날렸다. 역시나 나는 봉이 느리게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고 어렵사리 그 봉들을 피할 수 있었다. 도깨비 군인들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들의 봉을 찾기 위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디선가 이 왕국의 군인들과 경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괴들을 지배하는 여우들의 도시는 나 하나로 인해 온통 비상이 걸렸다.

 그런데 휘영청 밝은 보름달로부터 무언가가 맹렬한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공격을 해야 하나 일순 긴장을 하던 차였는데 자세히 보니 모터사이클 같은 게 날고 있었다. 그러고 더 자세히 보니 이제는 익숙하기까지도 한 그 미스터리 한 벨루아 공국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역시나 예전에 고양이 도시에서 내가 봤던 하늘을 나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탄 모터사이클 쪽으로 날아갔다.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너는 제발 정체를 좀 밝혀라! 제발!’ 여하튼 그러는 사이 도깨비들이 다시 봉을 잡고 나를 향해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술 더 떠서 어딘가 총을 쏘는 소리까지도 들렸다. 이제부터는 총알까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빨리 타!”

 “어딜!”

 “내 뒷자리 말이다! 이 답답한 소년아!”


 그녀가 눈짓으로 자기 뒷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다시는 이 소녀의 말을 듣지 않을 참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다시 이 소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왜 이 소녀를 만날 때마다 기절을 하거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가 자괴감이 들었다.

 일단 그녀의 모터사이클을 타자 그 소녀는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폭발적으로 가속시켰다. 이것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속도감이었다. 나는 떨어질 수가 없어서 하는 수없이 그녀의 허리를 꼭 감싸 안게 되었다. 내가 엄마 말고 어떤 여성과도 이렇게 꼭 껴안은 적이 없었는데…….

 도깨비 군인들의 스테인리스 봉이 난무하고 대선 호국 군인들과 경찰들이 쏜 총알이 밤하늘에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몹시도 쿵쾅거렸다.

 우리는 저 큰 만월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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