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중단평
0.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배우 김민희가 처음으로 소위 홍상수 문법에 입문하게 된 영화이다. 한편 해당 영화는 홍상수 감독 필모그래피의 분기점이라는 것이 평단의 중론이다. 이제는 마스무라 야스조-와카오 아야코, 존 카사베츠-제나 로렌즈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감독-뮤즈의 관계가 된 그들의 첫 작품을 톺아보는 것에 의의를 둔다.
1.
화가는 점 하나 허투루 찍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창작자의 긴장과 숙고는 그대로 영화미학에도 유추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그러한 차원에서 <지맞그틀>이 집중하는 ‘안과 밖’, ‘내부와 외부’를 살펴볼 것이다. 해당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요소들과 다양한 기능의 의도는 제쳐둘 수밖에 없는 점이 다만 아쉽다.
2.
내부와 외부는 <지맞그틀>에서 주제와 내러티브의 지속을 위해 주요하게 기능한다. 우선 1장에서 정재영(감독 함춘수)는 굳이 ‘복내당’을 소리 내어 읽으며 ‘안에, 복을 준다는 뜻인가?’하고 독백한다. 1장과 2장은 비슷하지만 몇몇 다른 구도, 대사, 상황의 삽입을 통해 반복과 변주라는 완만한 중복을 이룬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씬에는 더욱 농후하게 베인 감독의 의도가 있다. 변주 내러티브에 노련한 감독이 비경제적인 반복씬을 굳이 삽입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1장과 2장이 전부 정재영이 ‘궁밖으로 나가는’ 모르는 사람 김민희를 쳐다보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그 둘이 처음 조우하는 것은 ‘복내당 안’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3.
두 남녀는 꼬리잡기 하듯 내부와 외부를 왔다 갔다 한다. 그렇지만 ‘안’으로 들어올수록 파국이다. 특히 1장의 카페에서 감독에게 자신을 자꾸만 설명하고 말하는 것은 김민희뿐이다. 포커스는 주로 그녀와 변화하는 그녀의 표정에 맞추어져 있다. 관객은 주로 소리와 외화면에 대한 유추로 정재영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인데 ‘대단하십니다’, ‘알 것 같아요’ ‘참 순수하세요’와 같은 무미한 리액션은 주로 홍상수 감독의 전작에서 수작을 부릴 때 쓰는 익숙한 대사들이다. 이때의 칭찬들은 일상의 회화라기보다는 다분히 연극적이어서 더욱 거짓말 같다. 그러나 그럴듯하게 (자고 싶다는) 진심 반 거짓 반의 티키타카를 잘 이어가던 정재영은 진짜 친구가 없다는 김민희의 말에 말문이 막히고 담배를 구실로 ‘밖’으로 나간다. 김민희는 [시인과 농부]라는 새로운 ‘안’으로 (반억지로) 다시 정재영을 끌어들이지만, 그가 1) 유부남이라는 사실과 2) 작품에 대한 칭찬의 말이 감독이 항상 입에 붙이고 다니던 말이라는 사실을 두 여자에게 각각 듣고 어딘가 더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 갈까요? 정말 가요?’ ‘그냥 가세요.’라는 말이 교차하고 그 둘은 아마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된다.
5.
2장의 소동에서 김민희는 소동의 ‘밖’에 위치한다. 김민희는 내내 소동이 무슨 내용인지를 모른다. 소동 이후 사람들의 가십이 들려와도 그 밖에서 정재영을 직접 보고 웃을 뿐이다. 2장의 [시인과 농부]는 안과밖이 좀 더 극명하게 나뉜다. 김민희와 기주봉은 ‘밖’에 있고 송선미, 최화정과 정재영은 ‘안’에 위치한다. 또한 그곳 ‘안’의 현실은 자신을 모르면서 상찬하는 사람들과 괴로움으로 달아오른다. 클라이막스는 도저히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 일련의 상황들이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쓰러지는 척을 했다가, 옷을 속옷까지 전부 벗었다가 하는 급작스런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이후 바로 정상적인 (즉 옷을 입은) 상태의 정재영이 나타나는 씬이 오히려 황당해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아수라장으로 ‘안’은 황폐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밖’의 김민희와 기주봉은 고요하고 다정하기만 하다. 정재영은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면서도 더욱 ‘밖’으로 (심지어 강원도까지) 나가려고 한다.
6.
<지맞그틀>은 감독이 우연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던 ‘결혼’이라는 제재가 <오! 수정> 이후로 다시 등장한 영화이다. 그러나 <오! 수정>과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밖’에서 만나고 또 ‘밖’으로 향하는 헤어짐의 아쉬움을 산뜻하게 그린다. 김민희를 보러 잠깐 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서는 감독의 뒤를 돌아보는 마지막 씬만큼 다정하고 아쉬운 장면이 있었던가.
글쓴이 - 오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