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나에게는 영화의 작품성이나 완성도와 큰 상관없이 위로나 안정감이 필요할 때 보게 되는 소위 “comfort movie”가 몇 개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함께하는 [나 홀로 집에]의 케빈과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투 윅스 노티스]의 루시 켈슨 역시 그런 영화들의 주인공 중 하나이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엔 공부하다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틀어 두곤 했을 정도로 자주 봤던 바람에 나중엔 대사를 거의 다 외우기까지 했었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를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에도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이 영화를 유독 좋아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남녀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의 사랑스러운 '케미'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라는, 특히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라는 설정의 여주인공에게서 오는 개인적 친근함이다.
영화는 극과 극인 남녀 주인공, 뉴욕의 부동산 재벌가 출신인 George Wade(휴 그랜트 분)와 인권 문제, 환경 문제 등등을 위해 일하며 대기업의 분별없는 재개발에 맞서 싸우는 변호사 Lucy Kelson(산드라 블록 분)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루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극장이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데 반대하며 철거 현장에 드러누워 시위하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 심지어 나이 드신 부모님이 보석금을 내주러 경찰서에 와야 하는 - 수모(?)를 겪는 반면, 조지는 뉴욕 의료 센터에 엄청난 기부금을 낸 것에 대한 보답으로 “올해의 인물”로 뽑혀 축하 석상에서 우아하게 연설을 하며 좌중의 박수를 받는다.
재치 있고 매력적인 조지임에도 대기업 건설사 “웨이드”의 실질적 소유주인 친형 하워드가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가 능력이나 학벌 대신 외모만 보고 채용한 고문 변호사들 때문에 회사의 금전적 손실이 거듭되고 있다는 점이다(사실 좀 비현실적인 설정이기는 하다). 하워드는 조지에게 24시간 내로 유능한 명문대 출신 변호사를 채용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지에게 ‘때마침’ 하버드 로스쿨 출신인 루시가 찾아온다. 그녀가 자란 동네의 시민회관을 허물고 콘도를 세우려는 웨이드사의 건설 프로젝트를 막으려 찾아온 루시에게 조지는 대뜸 회사의 고문 변호사 자리를 제안하고, 그녀가 받아들인다면 문제의 시민회관을 허물지 않은 상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한다. 루시는 자신의 신념 전반에 반하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하지만, 결국 시민회관을 지켜내기 위해, 또 웨이드사의 어마어마한 자원을 자선사업에 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끌려 조지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전까진 분명 앙숙이었던 둘은, 막상 한 팀에서 같이 일하게 되자 꽤 잘 맞는 서로를 발견한다. 어떻게 보면 '지나칠' 정도로 잘 맞는데, 조지가 법적 자문을 넘어 매트리스나 옷을 구입하는 개인적인 일에서까지 루시의 조언을 구할 뿐 아니라 사적인 용건으로도 밤낮없이 전화를 해대기 때문이다. 둘은 어느새 레스토랑에서 상대방의 음식을 자연스레 가져다 먹을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고, 루시는 공과 사의 구분이 흐려지다 못해 귀찮도록 자신에게 의지하는 조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던 중, 조지의 “긴급” 연락을 받고 친구의 결혼식장에서까지 뛰쳐 나와야 했던 루시는 그가 의상을 골라 달라는 목적으로 자신을 불렀음을 깨닫자 결국 사표를 내던진다(영화의 제목인 “two weeks notice”도 후임자를 구하기 위한 2주 간의 여유를 남기고 사의를 표하는 관례를 뜻한다). 조지는 루시를 애타게 붙잡지만 결국 그녀의 확고한 뜻을 존중해 사표를 수리하는데, 정작 루시는 자신의 후임으로 채용된 매력적인 여성 변호사가 조지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표하자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사실상 이 영화는 주인공 역할의 두 배우에 '묻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데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배우라고 여겨지는 산드라 블록은 까탈스러워 보일 수도,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이상주의자 “루시”를 사랑스럽게 그려 낸다. 휴 그랜트는 [노팅 힐],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에서 선보였던 ‘로맨틱 코미디 모드’를 제대로 발동한다. 그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지고도 대충 사는 듯한 조지가 물론 좀 한심하긴 하지만, 자기 비하가 적절히 섞인 유머 감각이 휴 그랜트 특유의 처진 눈매와 합쳐지며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된다.
“변호사”라는 루시의 설정이 내게 개인적인 흥미를 더했다고 앞서 말한 바 있지만, 사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이 영화를 지겹도록 본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나도 루시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나는 꽤 어릴 적부터 인권 변호사를 꿈꿨었는데, 아마 루시는 내가 막연하게 상상하던 이상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좋은 로펌에 취직해 돈을 벌기는 커녕 여전히 부모님과 살 정도로 부와 명예(그러니까 그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정의’를 위해 노력하며 Legal Aid 같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모습 말이다. 청소년기는 그런 삶을 특히 ‘낭만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시기여서인지 나는 이 영화를 결국 신념도 사랑도 쟁취해 낸 루시와 그녀의 그런 올곧음에 반한 조지의 로맨스, 뿐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삶의 가장 낭만적인 버전, 으로 받아들였던 것도 같다.
그리고 결국 꿈꾸던 “그” 생활 3년차인 지금의 나는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깊이로 이해하게 된다. 물론 ‘정의’를 위해 일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엄청난 꿈과 포부를 가지고 로스쿨에 입학했었고 루시와 똑같이 뉴욕에서 Legal Aid Society를 비롯한 여러 비영리 • 인권 단체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감사한 기회들을 누렸지만 졸업 시점엔 번아웃을 겪을 정도로 심하게 지쳐 버렸다. ‘꿈꿔 왔던’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보통 그렇겠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지, 법이라는 제도가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부족한지,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이란 얼마나 무용한지를 깨닫는 것 또한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렇게 깨어지면서 나는 내 안의 오만을 깨달았던 것 같다. '주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까?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의나 신념을 바탕으로 ‘정의’를 욕심내는 것, 보여주기 식 희생과 겸손을 쫓게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동시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되면서 저절로 패기가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허황된 꿈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겠다”는 나의 포부가 정작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갖추지 못했었다는 뜻이다. 우리 개개인에게 맡겨진, 우리가 바꾸고 책임져야 할 ‘세상’이 사실 꽤 작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매일 보는 이웃들, 가끔 마주치는 인연들로 이루어진 나의 작은 ‘세상’을 신경 쓰는 것만도 내게는 충분히 벅찬 일이다. 내가 성숙해져 갈수록, 일터에서나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제대로’ 산다는 것, 매일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유혹 앞에서 내 영혼이 변함없이 올곧게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내 작은 ‘세상’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더 큰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인 듯 싶다.
루시 또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주 야심차게 행동했었다. 철거 현장에 드러눕질 않나, 재벌들 앞마당에서 시위를 하지 않나. 첫만남에서 조지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 봐도 이 혈기왕성한 변호사가 얼마나 많은 대기업들에게 골치 아픈 요주의 인물로 찍혔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루시가 영화 초반에 아버지에게 불평하듯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그런 노력들과 관계없이 건물들은 철거되고 재개발은 진행된다. 원수처럼 생각하던 웨이드사에 들어가 뼈 빠지게 일했음에도 회사는 이윤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처음 약속과 달리 루시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시민회관을 허물려 한다. 조지는 형의 그런 결정에 저항하지 못할 뿐더러 그에게 대놓고 추근대는 루시의 후임에게 휘둘리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렇게나 열정적이던 루시는 결국 시민회관이 철거를 앞두었다는 소식에도 예전처럼 시위를 하러 나서지 않는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듯한 그녀는 조금 지쳐 보인다. 다만 세상을 바꾸지 못한 루시가 성공적으로 “바꾼”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조지라는 인물이다. 회사의 '얼굴 마담' 정도로 취급하는 형과 달리 루시는 진심으로 그에게 ‘기대’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에 '희망'을 걸며, 그들 식의 표현에 따르면 언제나 더 옳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마음속 목소리”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런 기대대로 조지는 ‘바뀌’어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켜 낸다. 루시는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바꾸었고, 그를 통해 그들의 ‘세상’이 바뀌었으며, 나아가 언젠가는 바뀐 그들의 세상을 통해 더 넓은 '세상'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예전에는 그저 극과 극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 정도로 생각했던 영화가 ‘세상’은 어떻게 바뀌는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낭만적 고찰로 보이게 됐다면 조금 거창한 해석일지 모르겠다. 물론 오랜만에 다시 보니 아쉬운 점들도 많이 눈에 띄기는 한다(특히 대부분의 여성 인물들을 ‘골 빈’ 여자 이미지로 표현하거나 루시와 그녀의 후임이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구도로 나오는 것이 좀 아쉽다. 거의 20년 전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야심 가득하던 학생 시절 즐거운 위로가 되던 작품이 좀 더 철이 든 지금 역시 편안한 위로가 되어 주는 걸 보면, 이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나의 안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가 보다.
엄마 C의 시선
영화 “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는 2002년에 개봉되었던, 영화의 여러 장르 가운데에도 가장 흔하고 대중적이라고 할 “로맨틱 코미디”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내용으로만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선남선녀의 주인공들이 툭탁이고 다투면서 사랑을 키워 가는 흔한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저희 가족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여러 사안(같은 직종, 유사한 경험) 때문에 다른 관객들처럼 단순히 코믹한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라고만 웃어 넘길 수 없는 영화입니다. 그에 더하여, 저와 딸이 “기독교적 시각으로 영화보기”를 처음 '기획'했을 때의 의도처럼 - 어떠한 장르나 내용이든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읽어 낼 수 없는 영화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바탕 삼아, 가볍게 웃고 넘길 영화에서도 그 안에 담긴 나름의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하게 된 이번 주 리뷰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75년 된 동네 극장을 철거하는 재개발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친구들과 중장비 아래에 자리까지 깔고 누우며 몸 사리지 않는 '방해 공작'을 펼치고 있는 환경 문제 전문 변호사 루시 켈슨(Lucy Kelson)의 '활약'과 함께 전개됩니다. 오래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땅에 대규모 콘도를 신축하려는 재벌 건설사 “웨이드 주식회사(Wade Corporation)”의 '농간'으로 착수된 이 사업의 저지 과정에는, 저지 투쟁에 동참했던 남녀 친구가 - 로맨틱 “코미디” 답게 - 길에 누운 채로 '프로포즈'를 주고받는 상황이나 적법한 작업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루시가 부모님의 벌금 대납으로 풀려나는 해프닝도 '발생'합니다. 경찰서로 루시를 데리러 왔던 부모님이 이번에는 1922년 건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니 아일랜드 “지역 문화센터(community center)” 건물을 철거하려는 웨이드사의 계획을 그녀에게 알려 줍니다. 그 지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센터와 연관된 어린 시절의 추억 또한 많은 루시가 그런 일을 모른 체하며 순순히 넘어갈 리는 물론 없겠지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 루시는 “웨이드 주식회사”의 대표인 “조지 웨이드(George Wade)”를 직접 만나 담판을 하려고 회사로 찾아가는데, 여기에서 바로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포브스(Forbes)” 잡지에 사진과 기사가 실릴 만큼 '재력'과 '외모'를 다 갖춘 그 회사 대표 조지는, 사실 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미모의 젊은 여성들만 고문 변호사로 채용해 무수한 스캔들을 양산할 만큼 '여성 편력'이 심한 인사로, 무능한 변호사들 때문에 금전적 손실이 계속되는 것을 참다 못한 그의 형 “하워드(Howard)”로부터 - 회사의 실질적 대표지만 대중적 호감도가 떨어지는 본인 대신 동생을 대외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 실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익 분배에서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통보를 방금 받은 입장이었습니다.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루시에게 대뜸 출신 학교부터 묻던 조지는 그녀가 명문대 로스쿨 출신인 것을 알게 되자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하며 '이직'을 제안합니다. 자기 회사에서 수석 변호사로 일해 준다면 문화센터의 철거를 백지화하고 회사의 수익금 중 상당 부분을 사회사업에 기부하겠다는 '이례적' 조건 말이지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저명한 법률가이자 법대 교수임에도 노년이 되도록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 만큼 경제적인 부분에는 전혀 무관심한 - '인권,' '환경' 등의 문제에만 가치를 두는 -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자신 역시 “노숙자 보호소”나 “무료 법률 상담소” 등의 기관에서 일하며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루시로서는 조지 같은 사람의 제의를 선뜻 수락하기가 주저되었지만, “자기 한 몸만 희생하면” 센터의 철거를 막을 수 있고 재벌의 자금이 자선단체에 흘러가는 기회도 되리라는 생각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나름대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널리 알려진 '경구'가 된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로 그녀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완고한 어머니는 변함없이 “절대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조지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루시의 좌충우돌의 삶도 함께 시작됩니다. 침대의 매트리스를 고를 때도 그녀를 동반하고 양복 벨트를 살 때도 그녀의 의견을 물어 보는 조지는 새벽에 다른 여성과 술을 마시면서도 전화를 거는 등 마치 개인 비서라도 되듯 루시를 '활용'합니다. 그녀의 능력 덕분에 오랫동안 타협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조지의 이혼 문제도 잘 해결되었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극장 철거 반대 시위에 동참했던 친구 “메릴”과 “톰”의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로 참석 중이던 루시에게 조지로부터 “긴급상황(emergency)”이라는 문자가 와서,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고 그가 '사는' 호텔로 - 자신이 소유한 호텔 꼭대기층의 호화로운 룸에 사는 그에게로 -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방송 출연 때 맬 넥타이를 골라 달라는 용건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그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로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다며 “2주 전 통보(Two Weeks Notice)”를 내던지듯 전합니다.
“2주 전 통보”, 즉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해고할 때와 피고용인이 고용주에게 퇴직을 예고할 때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이 통지를 갑작스레 받은 조지는 섭섭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루시가 자신의 행동에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워낙 박식한데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녀의 조언을 따르며 의지하는 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한편 루시 또한 조지에 대한 자기의 속마음을 그 이후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야 깨닫게 되는데, 그런 만큼 두 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루시가 던진 “투 윅스 노티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환경 문제 전문 변호사인 남자 친구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은 루시의 넋두리 대상이 되어 준 것도 조지였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상대방이 안 먹는(그리고 자신은 좋아하는) 음식을 잘 알아 서로 자연스레 가져오고 가져가고 하는 모습은, 그들 사이에 오래된 친구나 부부처럼 스스럼없는 친숙함이 이미 형성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회사 직원들끼리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친목도 도모하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 길에 교통 정체 구간에서 갑자기 '볼일'이 급해진 루시를 위해 조지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장면 역시, '이성적' 호감이나 '신비한' 매력으로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친밀함이 공고히 구축된 그들의 관계를 시사하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루시의 로스쿨 후배인 “준(June)”이 그녀의 후임자로 결정된 이후 조지에 대한 루시의 마음은 스스로에게도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조지의 형 하워드가 비용 절감을 위해 문화센터를 철거하는 쪽으로 계획을 다시 변경했음을 자선 행사에서 듣게 된 루시가 그 문제를 따지기 위해 조지의 호텔룸에 밤늦게 들렀다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조지와 준의 모습을 목격한 후 친구 메릴을 찾아가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이 그중 한 예입니다. 그럼에도 본심을 철저히 숨긴 채 '일'로만 자신을 상대하려는 루시에게 화가 난 조지 때문에 퇴사하는 날까지 심하게 다투며 헤어지게 되지요.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녀가 다시 일하고 있는 무료 법률 상담소(Legal Aid)로 찾아온 조지가 자신의 연설문을 검토해 달라는 핑계로 글 내용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며 - 그녀가 자신의 “머릿속 목소리(the voice of my head)”가 되어 버렸다고 말하며 - '정식으로' 연인 관계를 시작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 “머릿속 목소리”란 루시가 자기 엄마에 대해 설명할 때 사용한 표현인데, 늘 현재의 모습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는 엄마의 존재를 묘사했던 말을 조지가 다시 인용한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엄마의 기대가 너무 큼에 대해 부담감을 토로하는 루시에게, 자신에게는 아무도 '기대'라는 것을 한 적이 없었다는, 영화의 전개상 의미심장한 말로 조지가 화답했던 장면의 대사였던 것이지요.
'의롭고' 올바른 루시의 성품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도 “누가 설교 듣는 것을 좋아하겠느냐”, “성자는 지루하고 따분할 뿐이다(Saints are boring)”라고 화를 내던 조지의 지적은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 하더라도 그 전달 방법엔 적절한 지혜의 수반이 필요하다는 의미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옳은' 말을 '듣기 싫게' 한다”며 투덜대곤 하는 것도 그 같은 지혜의 부족 때문일 것입니다. 루시의 아버지가 낙담해 있는 딸에게 들려 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면 세상도 변할 수 있다(As long as people can change, the world can change)”는 말 또한, 우리가 주변에 전하는 소박하고 진실한 메시지가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기여할 수 있으리란 작은 소망을 품게 하지요.
영화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에 등장해 유명해진 “당신이 나를 완성시킵니다. 당신 없는 나는 나일 수 없습니다(You complete me. I’m not what I’m without you)”라는 대사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에서 인용된 “우리 자신을 충만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이지 우리 스스로가 아니다(Only that which is the other gives us fully unto ourselves)”라는 구절 역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타인”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혹은 주변의 이웃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삶은 '나'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This life is not only about me)”라는 사실은 자신과 '다른' - '틀린' 것이 아닌 -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우리 모두가 기억해 마땅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