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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Jan 12. 2024

YMCA 야구단: 하늘에서 내려올 ‘공’을 기다리며

딸 J의 시선



[YMCA 야구단]은 내가 '애정하는' 한국 코미디 영화 중 하나로, 무려 22년(!) 전 작품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닫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김혜수, 송강호, 황정민 (그리고 특별 출연한 조승우) 등, 한국 영화계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배우들의 ‘젊은’을 넘어 ‘어리’기까지 한 모습을 이 영화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한국의 ‘스포츠 애국주의’의 정점이었다고 생각되는 2002년 월드컵과 같은 해에 개봉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영화는 격동의 시절이던 20세기 초반 설립된 조선 최초의 야구팀, "YMCA 야구단"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호창(송강호)"은 유서 깊은 선비 가문 출신으로, 모든 양반들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던 과거제도가 폐지된 후 삶의 목적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대충 흘려보내는 중이다. 서당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는 의병 활동을 위해 집을 떠난 형 대신 그가 서당을 물려받길 원하지만, 사실 글공부보다 운동을 더 즐기는 호창은 아직 훈장이라는 자리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그의 친구 "광태(황정민)"와 공을 차며 빈둥대던 호창은 실수로 언덕 아래에 위치한 YMCA 회관의 마당 안으로 공을 내리 차고, ‘축구공’을 찾으러 들어간 그곳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던지는 ‘야구공’을 처음 보게 된다.





그날 이후 야구공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던 호창은 실수를 가장해 한 번 더 YMCA 회관으로 들어가고, 아이들 교육과 영어 통역을 맡고 있는 '신여성' "정림(김혜수)"에 의해 YMCA 야구단에 ‘스카우트’된다. 호창과 광태가 포함된 YMCA 야구단은 시합마다 승리를 거듭하며 최강의 야구단으로 자리잡고, "베쓰볼"에 심취한 황성 시민들의 사랑과 열광의 대상이 된다. 갈수록 높아지는 야구단의 위상과 함께 정림을 향한 호창의 짝사랑도 깊어지던 차, 을사조약이 체결되며 조선이 외교권을 잃는다. 이에 정림의 아버지, 시종무관장 민공이 자결하자, 정림과 과거의 인연이 있는 듯한 "대현(고 김주혁)"이 그녀의 곁으로 돌아와 YMCA 야구단에 합류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YMCA 야구단의 연습장을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하면서 야구단과 일본군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시작되고, YMCA 야구단은 일본군의 야구 클럽인 "성남구락부"와의 1차 대결에서 무참히 패배한다. 그러던 중 대현과 정림이 친일파 인사(광태의 아버지이기도 한)의 암살을 시도한 항일운동가였음이 밝혀지자 이들 둘은 야구단을 떠나 피신하게 되고, 두 사람이 과거에 연인 사이였음이 밝혀지며 크게 낙심한 호창은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서당 일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사실상 해체된 듯했던 YMCA 야구단이 우여곡절 끝에 성남구락부와의 2차 대결을 준비하면서, 아들의 야구 활동을 반대하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보여준 신문에서 경기 소식을 접한 호창은 물론 도피 중이던 대현과 정림까지 이 경기를 위해 돌아오게 된다.





꽤 오래전에 만들어졌음에도 특별히 어색함이나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던, 따뜻하고 재치있는 작품으로 소개하고 싶은 이 영화는, 오랜만에 다시 감상하니 특유의 "때를 가리지 않는" 유머 감각이 - 민공의 장례 중 그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호창의 연서가 실수로 낭독되며 톤이 확 바뀌는 장면과 같이 -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마냥 가볍다고는 할 수 없는, 슬프고도 엄중한 주제를 적절한 거리에서 다룬 훌륭한 코미디 작품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감상하면서, 어렸을 땐 별 생각없이 넘겨 버렸던 여러 장면과 주제의식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양반 가문 ‘도련님’인 야구단원과 그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던 ‘상민’ 출신 멤버 사이의 갈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다뤄지는 신분 사상과 양천제의 폐해는 물론, 관습과 전통이 개화나 신문물과 어색하게 공존하는 조선 말기의 시대 배경에 내재된 여러 ‘대결구도(일본 대 조선, 친일파 대 항일운동가, 양반 대 ‘천인’, 남자 대 여자, 사회적 기대 대 개인의 욕구 등등)'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는 동안 나는 약간 의외의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 나갔는데, 이 영화를 주인공인 "호창" 대신 고 김주혁 배우가 연기한 "대현"이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현은 언뜻 보기엔 뭔가 진부한 조연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인물로, 주인공인 호창과 확연히 대비되는, 즉 정림을 향한 호창의 짝사랑이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연적 비슷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정림과의 로맨틱 서사가 존재할 뿐더러 좀 더 신랄하게 표현할 때 호창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외모도 출중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그가 일본에서 유학한 ‘엘리트’인 동시에 친일파를 단죄하는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설정 또한 대현이 호창의 사랑을 ‘방해’하는 역할이면서도 악역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그러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정림과 대현이 결국 ‘함께’ 도망칠 때 관객들은 물론 호창까지도 둘의 관계를 납득하고 응원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서술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현이 항일운동가로서 이룬 '성과'가 영화 안에서 사실 거의 전무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대현은 친일파인 광태의 아버지를 처단하기 위해 그의 저택에 숨어들지만, 야구단의 동료인 광태가 아버지를 구하려 달려들자 둘을 제압하는데 성공하고도 결국 아무도 죽이지 못한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하모니카를 흘리는 바람에 광태에게 정체를 들키고 말 뿐만 아니라, 기껏 정림과 잘 도망쳐 놓고는 성남구락부와의 야구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황성으로 돌아온다. 어찌 보면 빵빵한 ‘스펙’에 비해 좀 무능한 캐릭터라고 불릴 만 하다.





하지만 나는 이번 감상을 계기로 대현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는 아예 대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대현은 왜 광태의 아버지를 살려 주었을까? 처음부터 그가 광태의 아버지임을 몰랐을 리 없는 대현이 오직 광태에 대한 인간적인 정 때문에 친일파의 암살을 포기했을까? 그리고 왜 대현은 일제의 눈을 피해야 하는 항일운동 중 그들의 견제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YMCA 야구단 활동을 계속했을까? 무엇보다, ‘고작’ 야구 경기 하나 때문에 그가 제 발로 일본군의 덫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온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론 대현의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들을 설명할 수 있는 동기가 호창의 대사 중에서 시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저녁, 호창은 정림에게 과거제도가 사라진 후 아무 목표 없던 그의 삶에 야구가 “그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게” 해 줬다고 말하는데, 호창의 인생에서 야구가 그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대현에게도 YMCA 야구단이 ‘야구’라는 운동의 가치를 넘어서는 어떤 ‘의미’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나라를 잃게 된 국민이 그 나라를, 자유와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위대한 ‘대의’이기에, 그런 길을 걷겠다는 것은 ‘옳고’도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다만 나는 "국가의 존망"이나 "조선의 자치권" 같은 거창한 ‘대의’가 어떤 숭고하고 험난한 길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촉발점은 될 수 있을 지언정, 그 힘든 상황을 계속해서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주기는 어려우리라고 본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독립, 일본군 철수 등의 거시적인 목표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고단한 현실을 견뎌 내는 것은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서 돌아서거나 자신이 속했던 단체와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도 - 항일운동가가 친일파가 되는 식의 - 그들이 한때 믿었던 ‘대의’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조선의 독립, 국가의 민주화, 사회적 불평등 철폐 등등의 ‘대의’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이 궁극적으로 이 ‘대의’를 이루는 것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신, 그러니까 자신의 희생이 ‘무언가’를 바꿈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에 '잡아먹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Drink with Me”에도 비슷한 맥락의 가사가 나온다. 군주제에 반대하고 평등을 외치는 혁명군들(이라고 해봤자 사실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이 군대와 맞서 싸우기 전날 밤, 얼기설기 설치한 바리케이드 안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며 부르는 이 곡에는 "Grantaire"라는 인물의,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Drink with me to days gone by   (지나간 날들을 기리며 나와 잔을 들자)

Can it be you fear to die?   (어쩌면 죽음이 두려운 것인가?)

Will the world remember you when you fall?   (여기서 스러지는 우리를 세상은 기억해 줄까?)

Could it be your death means nothing at all?   (나의 죽음이 아무 의미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Is your life just one more lie?   (나의 인생 또한 그저 하나의 거짓으로 끝나진 않을까?)              


Drink With Me- Grantaire's Cut Solo (Movie Version) (youtube.com)



나는 대현이 광태의 아버지를 살려준 것도 광태를 위해서라기보단 그의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과연 '무언가'가 바뀔 수 있을지, 그의 암살이 어떤 ‘의미’가 있기나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를 죽여 봤자, "을사오적"을 넘어 "을사오백적"을 처단해 봤자 과연 이 암울한 현실이 바뀌기나 할까, 하는 회의감 말이다.


그렇게나 무력한, ‘수동적인’ 선택을 했던 대현은 반대로 YMCA 야구단을 위해서는 황성으로 돌아오는 ‘능동적인’ 선택을 한다. 심지어 성남구락부와의 경기의 후반부, 광태를 포함한 멤버들이 대현과 정림을 탈출시키기 위해 말을 준비하고 일본군의 주의를 끄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공이 홈 베이스로 향하는 것을 본 순간 대현은 득점을 위해 홈 플레이트를 향해 뛴다. 경기에서 이기건 지건 그가 일본군에게 체포될 것은 분명한 일인데 말이다.





자신의 삶과 자유는 물론 연인인 정림의 안전까지도, 심지어는 지금 도망침으로써 미래에 이룰 수도 있을 더 큰 ‘대의’마저 저버린 채 대현이 홈을 향해 뛰었던 이유는 그 또한 야구에서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이는 "조선의 승리"와 "일본의 패배"가 야구장 안에서만은 가능한 것이니까. 목숨을 바쳐 친일파나 일본군을 제거해 봐야 그들을 대체할 인물들은 다시 넘쳐날 테고, 복잡하게 얽힌 국제적 이해관계와 일본의 압도적 무력 앞에서 조선은 속수무책이지만, 야구 경기장 안에서만은 조선의 "YMCA 야구단"이 일본의 "성남구락부"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도 있는 것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조선인들에게 정의를, 상징적 승리를, 나라 잃은 설움에 대한 위로를 잠시나마 안겨줄 수 있는 바로 그 '승리'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대현이 결국은 ‘대의’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지.


사람의 인생, 그리고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어떤 원대한, 나라나 민족 단위로 움직이는 ‘대의’ 그 자체보다는 그 대의가 개개인의 삶에 맞닿으며 형성되는,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빚어지는 고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직접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손이 닿는 거리 안에 있는 그 작고 개인적인 ‘의미’를 이루어 나가는 개개인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나라, 세계가 바뀌면 ‘대의’가 성취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불의는 혼자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오만했던 시절, "내 인생을 바치고 나 자신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어떤 위대하고 숭고한 사명을 찾아다니던 나를 다정하게 참아내 주신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도달한 결론이다. 혼자 뭘 하겠다고 까불지 말고 주님 '안에서' 잠잠히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야구공처럼 내가 이뤄낼 수 있고 내 인생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의미'를 조금씩  내려 주신다는 것을 내 짧은 경험이 내게 알려 준다. 글러브를 끼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도 꽤 재미있는 삶일 것이다.     




엄마 C의 시선 



2002년 개봉작인 “YMCA 야구단”은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 조작단,” “아이 캔 스피크” 등을 연출한 김현석이 감독과 각본을 맡는 한편 이제는 모두 ‘거물급’이 된 호화 출연진(송강호, 김혜수, 황정민 등)을 선보이기도 했던 코미디 장르의 ‘스포츠’ 영화입니다. 제목 자체가 말해 주듯 20세기에 막 들어선 1900년대 초 한국 최초로 결성된 야구단인 “황성 YMCA 야구단”의 관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서구에서 온 선교사들의 다양한 문화 사역 덕분에 그 혜택과 영향력을 누리고 있었는데, 한국 YMCA(기독교 청년회) 창설 책임자의 신분으로 1901년 우리나라에 왔다가 미군들의 캐치볼을 신기해 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야구를 선교에 활용하기로 결심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lip L. Gillette)가 “황성기독교청년회”에 야구팀을 창설하면서 생겨난 에피소드를 담은 것이라고 하지요. 이후 다른 외국인 학교에도 야구부가 창설되며 전국적으로 야구 붐이 일게 되었고, 일제에 나라를 온전히 빼앗긴 후 실의에 빠진 청년들의 의기를 북돋는 데에 야구를 활용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선교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발전사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서당 훈장의 아들인 “호창”은 글공부를 열심히 해 서당을 물려 받길 원하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하는 '철없는' 아들입니다. 비록 학업에 열의는 없지만 당시(와 그 이전 시대) ‘문인(文人)’들의 가풍에 따라 과거 시험에 응시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 아직은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잔존하던 시절이기에 – 갑작스러운 과거제 폐지로 무산되자 특별한 삶의 목표 없이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시 관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개화 세력에 밀려 낙향한 후 서당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물론, 식민(植民)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며 의병 활동을 하겠다고 집을 떠난 형을 가족으로 둔 그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호창의 행동거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참 생각 없다”는 느낌을 절로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 그가 YMCA 회관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는 ‘신여성’ 정림과 우연히 조우한 이후 야구에의 호기심과 비례하는, 정림을 향한 짝사랑도 함께 키워 가게 됩니다. 실상 정림은 일본 유학생 출신인 ‘신남성(?)’ “대현”과 이미 연인 관계에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호창은 정림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코자 정성껏 쓴 편지를 가지고 늦은 밤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뜻하지 않게 그곳이 을사조약에 비분하며 자결한 정림 아버지의 ‘상가’가 된 것에 당황하는 가운데 그가 쓴 “연애 편지”가 망자를 기리는 “조문(弔文)”으로 오인되어 여러 사람 앞에서 읽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을사늑약”이라고 불려 마땅할 이 치욕스러운 조약의 체결 이후 야구단의 연습장을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하면서 투수인 대현은 유학 당시 동문이던 일본 장교 “히데오“와 마주치고, 이를 계기로 YMCA 야구단은 일본군 야구팀 “성남구락부“와 1차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하필 경기 전날 친일파에게 테러를 감행했던 투수 대현이 그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데다 호창의 친구인 광태도 경기 중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호창 역시 시합 중 현장에 나타난 아버지의 눈을 피하느라 경기를 망치는 바람에 결국 일본팀에게 8:0으로 완패하는 실망스런 결과가 빚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테러 사건의 연루 문제 때문에 대현과 정림이 일본군에게 쫓기는 입장이 되면서 YMCA 야구단은 해체 일로를 걷지만, 단원들의 야구에 대한 애착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다시 모이고 낙심한 채 귀향했던 호창도 돌아오면서 대현과 정림 역시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팀에 재합류합니다. 결국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점 상황과 열세 속에서 적시에 나타난 호창이 히데오의 승기를 꺾고 역전승을 거두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지요. 당시의 국민들이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야구라는 운동 경기에서의 승리로 보상 받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현재 이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들도 – 일본과의 운동 경기에서만은 절대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 마지막의 승리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국가 존망의 기로에서도 자신들의 위신과 권위를 따지는 ‘양반들’의 행태나 아직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 모습, 스스로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개인들의 애국적 행위 등 영화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다룰 내용들이 적지 않기는 하나 그런 내용들은 딸의 ‘평론’ 부분에서 다룰 수 있는 만큼, 저는 이번 편의 감상을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던 지역과 국가들에서 헌신한 수많은 선교사, 관계 기관들의 노고를 기리는 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시작 부분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나라에 야구라는 운동을 처음 도입한 필립 질레트는 한국 YMCA의 창설뿐 아니라 그 외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의 문화-스포츠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는데, 일제의 한국 기독교 인사들에 대한 박해 상황을 해외 기독교 선교 협의회에 보고한 일로 조선 총독부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중국 상하이 YMCA 지도자 강습회에 참석한 후 재입국을 할 수 없었음에도, 퇴임 이후까지 상하이에 머물면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재정 지원에도 참여하는 등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을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1844년 “기독교 청년 모임(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으로 명칭이 확립된 “YMCA“와 크림 전쟁(Crimean War) 참전 간호사들의 숙소 제공에 사역의 중점을 두었던 기독교 여성 단체가 1868년 그 명칭을 "기독교 젊은 여성 모임(the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으로 변경하여 만들어진 “YWCA“는 자신들의 신앙적 명령을 따르면서 주변에서 목격되는 구호의 요청에 부응하려던 기독교인들에 의해 설립된 기관으로 - 비록 현재는 명시적 기독교 조직이 아니고 기독교 교인만을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등의 의무 조항도 없어졌다지만 - 이들 기관으로 인해 세계 여러 국가가 다양한 문화, 사회적  복지의 혜택을 입었음과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선한 영향력이 빛을 발했음을 생각할 때,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적십자(The Red Cross)“ 등을 포함하여 오늘날의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준 기관과 그 종사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학교를 건립하고 병원이나 의료 시설이 없는 곳에서 보건 의료 사역을 감당하는 한편, 노숙자들을 위해 요소요소에서 무료급식소(Soup Kitchen)를 운영하며 섬기고 있는 사명자들처럼 사회 정의나 구제 활동에 헌신해 온 대다수 기관들은,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아픈 자를 돌보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조직들이라는 점에서, 폴 챔벌레인(Paul Chamberelain)이 자신의 저서 “왜 사람들은 믿음을 갖지 않는가(Why People Don't Believe)“에서 정의한 “세상에 선사된 기독교인들로부터의 선물“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빌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의 선교 사역이 정부 차원의 노력이나 일반적인 비정부 조직 사업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대표적 관심사가 '효율성'이 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업을 실행하든 그 일을 “업무 지향적“으로 할 것인지 “인간 중심적“으로 할  것인지는 작업의 주체와 그 주체의 지향점, 가치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바,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두어야 할 지점은 그 일로 인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일어날 변화인 것입니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아프리카가 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은 진심으로 믿는다. 보조금이 아닌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의 가장 큰 문제(사람들의 정신 안에 내재하는 심각한 소극성)에 대한 해결책임이 분명하다”라고 무신론자인 매튜 패리스(Matthew Parris)는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떠나 온 고향 아프리카 말라위(Malawi)를 다시 방문했을 때 영국 기독교 구호 단체인 “펌프 에이드(Pump Aid)“가 아프리카 지역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 진행 중인 양수기 설치 보조 사역을 목격하며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던 사실이라고 하지요. 이름도 명예도 밝히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드높이며 묵묵히 사명 감당하는 수많은 '성자'들의 삶으로 인해 더 많은 입으로부터 이 같은 고백이 증거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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