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J의 시선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2001년 작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은 강도 사건을 주제로 하는 "하이스트"(heist)물, 혹은 "케이퍼(caper) 무비" 장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랫 팩"(Rat pack)이라 불리던 당대 최고의 스타들, 즉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딘 마틴 (Dean Martin),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Sammy Davis Jr.) 등이 출연했던 1960년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답게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들, 앤디 가르시아, 줄리아 로버츠 등등 어마어마한 캐스팅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작품에 다 모이게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겠다 싶은 ‘스타’ 배우들의 만남 자체로도 보는 재미가 있지만, 범죄 수법이 허술하게 그려졌던 원작과 달리 나름 거창하고 세련된 범죄 계획을 펼친다는, 또 엄중하면서도 비극적 요소가 많은 기존 하이스트 영화들과 비교할 때 경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이어 간다는 장점 등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실제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2004년 [오션스 12](Ocean’s Twelve), 2007년 [오션스 13](Ocean’s Thirteen)이라는 후속작은 물론, 산드라 블록과 케이트 블란쳇 등이 출연한 스핀오프 [오션스 8](Ocean’s 8)을 아우르는 "오션스 시리즈"의 선발 주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후의 작품들은 - 특히 [오션스 13]의 경우에는 - 쟁쟁한 스타 배우들끼리 모여 친목 도모를 하는 일종의 ‘팬 서비스’에 가깝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시리즈의 1편인 [오션스 일레븐]은 하이스트 물, 혹은 ‘범죄 오락’ 장르에서 그 전과 후가 나뉘어질 정도로 이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오션스 일레븐]은 주인공인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목표와 계획이 주축을 이루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기죄로 뉴저지의 교도소에 4년간 감금되어 있던 대니는 가석방의 기회를 얻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실하게 ‘새출발’하겠다던 다짐이 무색할 만큼 곧바로 과거의 인연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한탕’을 계획한다. 여태껏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라스베가스 카지노를 겨냥한 도둑질, 그것도 세계적 권투 시합으로 카지노 3곳의 돈이 동시에 몰리는 금고를 털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워 ‘조력자’들을 찾아 나선 것인데, 대니가 노리는 카지노 세 곳의 소유주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와 앙숙 관계인 "루벤"(엘리엇 굴드)이 자금줄 역할을 자청하면서, 배우들에게 포커 게임을 가르쳐 주는 ‘합법적’ 생활에 좀이 쑤셔 미칠 지경이던 옛 친구 "러스티"(브래드 피트)와 뛰어난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해커인 "리빙스턴", 폭발물 담당 "배셔", 연기파 사기꾼 "사울" 등등 도합 11명의 ‘강도단’을 구성하게 된다 (말 그대로 "오션"의 "일레븐"이 생긴 셈이다).
특유의 능글능글한 매력과 카리스마, 나쁜 짓에 특화된 듯한 두뇌를 가진 대니가 모든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나름 순조롭게 범죄를 준비하지만, 카지노의 소유주인 사업가 베네딕트를 감시하던 중 그가 대니의 전처 테스와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러스티가 카지노의 금고를 노리는 대니의 진짜 ‘동기’를 의심하면서 이들 사이의 신뢰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여러 변수들로 대니의 범행 계획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니를 경계하는 - 테스의 전남편임을 알고 - 베네딕트가 그를 카지노 안에서 감시인이 따라붙는 ‘감시 대상’으로 정하자 러스티는 대니를 팀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결국 ‘오션 없는 오션 일당’은 여러 문제점을 안은 채 카지노 금고 털이 작전을 실행하고, 서로 얽히고설킨 거짓과 사기 속에서 이 전례 없는 범행은 여러 반전을 거듭하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어마어마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 후덜덜한 이름값을 가진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루는 ‘캐스팅’이라는 요소는, ‘흥행성’이나 ‘관객들의 흥미’ 같은 외적 효과 외에도 영화 내용 안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서술적 장치로도 이용되는 듯하다. 사실 이 작품은 범죄 행위에 대한 ‘현실성’보다 범죄라는, 특히 귀한 것을 훔치는 "하이스트"(heist)라는 개념에 내재된 어떤 ‘화려함’과 ‘매혹’(glamour), 그리고 ‘판타지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영화 속의 작전에는 현실적이라기엔 지나치게 과장되고 미화된 설정들이 많다. 우선 이 오션 일당은 루벤이라는 대부호의 자금력을 통해 보통의 범죄자들이라면 꿈도 꿀 수 없을 혜택을 누리며("사울"이라는 인물이 베네딕트를 속이기 위해 동유럽의 뒤가 구린 부자로 위장하는 과정에서 값비싼 실크 정장을 맞추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톱스타 배우들의 여유와 당당함, 매력 등이 영화 속 캐릭터에 직접적으로 투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말하자면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가 가진 멋지고 세련된 ‘이미지’가 "대니 오션" 위에 그대로 입혀지는 식이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돈이나 귀중품을 훔쳐 생계를 해결하는, 기존 범죄물에서 그려지는 '보통'의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 그 자체를 즐기는, 이미 경제적 여유를 가졌으며 나름의 윤리적 규범(사람을 죽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돈을 건드리지 않으며 '일'을 게임처럼 즐긴다는)을 따르는 "gentleman thief"의 - 작가 르블랑이 탄생시킨 괴도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 같은 - 계보를 잇는 쪽에 더 가깝다. 오션 일당은 카지노 금고를 털어 손에 쥐게 될 돈을 자신들의 ‘생존’ 문제와 연결시키는 대신, 게임에 ‘우승’해서 받는 ‘상금’이나 ‘전리품’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이들의 범죄에는 어떤 절박함이나 다급함, 심지어는 마땅한 ‘당위성’이 없는데, 재미있게도 바로 이 부분이 관객들에게 이들의 ‘범행’에서 옳고 그름, 책임 등을 따질 필요 없이 심리적 거리를 둔 채 ‘현실 도피’(escapism)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영화가 유명한 ‘배우’들을 서술적 장치로 활용하는 방식을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오션 일당의 범행 계획이 결국은 ‘연기’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카지노 전산망을 해킹하거나 "핀치"라는 장비로 라스베가스 전역에 정전을 유발시키는 등(여기에서 나름의 과학적 설명이 나오긴 하는데… 전혀 못 알아들었다. 설정상의 미숙함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뼛속까지 문과인 나 자신을 탓하기로 하겠다) ‘최첨단’ 기술을 계획에 동원하지만, 사실 이들의 범행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 ‘사기’ 행위이다. 다시 말해 오션 일당의 구성원들은 적재적소에서 변장한 모습으로 ‘연기’를 하며 주변인을 속이는 방법으로 목표를 이뤄 내고, 카지노 금고를 그대로 재현한 일종의 ‘세트’에서 범죄 계획을 예행 연습하는 ‘리허설’까지 거친다. '허구' 속의 '현실성'을 추구하는 일반적 작품들과 달리, 결정적 반전을 위해 관객까지 ‘속이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정교한 ‘연극’처럼 기능하여 ‘연기’에 기본을 둔 ‘사기’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 ‘사기’라는 주제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거대한 ‘사기’ 행각을 다루는 이 영화가 결국엔 ‘진실’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영화가 그리는 ‘사기’를 보고 있자면 우리가 보통 동의어로 여기는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오션 일당이 베네딕트를 속여 금고로 접근하면서 변장과 위장을 거듭하는 과정에는 시각적, 감각적 ‘사실’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데, 감쪽 같은 의상과 외모, 행동과 태도 등으로 이들이 객관적 ‘사실’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실’(이 일당이 카지노의 금고를 노리는 강도라는)을 놓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베네딕트를 속여 돈을 훔친 후 카지노에서 멀쩡히 걸어나가게 되는 것도 이들이 ‘사실’과 ‘진실’을 절묘하게 혼동시키기 때문으로, 오션 일당은 자신들이 재현한 금고 세트에서 미리 녹화해 둔 영상을 카지노 감시 카메라에 틀어 놓으며 실제 금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 녹화본이라는 장치가 객관적 ‘사실’이자 ‘거짓’으로 작용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사실’에만 집중한 베네딕트와 보안팀으로 하여금 그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카지노에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남김없이 털린 금고 안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베네딕트가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카지노 이름(Bellagio)이 새겨진 ‘실제’ 금고의 바닥을 쳐다보다 감시 카메라 화면 속 금고의 바닥에는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이 실제로는 가짜, 혹은 거짓일 수 있다는 -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 개념을 시각화한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사실’과 ‘진실’의 이 같은 구분은 대니, 베네딕트, 테스 사이의 삼각관계라는 영화의 ‘감정적’인 부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의 초반부, 오랜만에 전남편을 마주한 테스는 대니로 인한 상처와 분노를 표출하면서 베네딕트가 그녀를 "웃게 만드느냐"는 그의 질문에 적어도 자신을 "울리지는 않는다"고 답한다. 수감 생활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빚’을 다 갚았다는 대니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받은 기억이 없다면서 날카롭게 응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중반까지 테스가 상정한 - 또한 실제로도 ‘객관적인’ - ‘사실’이란, 전남편 대니가 범죄 이력을 통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배우자로서도 문제점이 많았던 반면, 베네딕트는 합법적인 일을 하는 건실한 사업가이자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는 좋은 애인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점들은 분명 ‘사실’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대니가 일부러 호텔 안의 CCTV 화면을 통해 자신과 베네딕트의 대화를 테스가 엿듣도록 기획하며 이 두 남자에 대해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카지노 금고가 털린 사건을 두고 베네딕트가 전과자인 대니를 의심하자, 대니는 만약 그가 잃어 버린 모든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준다면 테스를 "포기하겠느냐"고 묻고, 베네딕트는 주저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대니가 테스에게 형편없는 남편이었다는 것, 베네딕트가 그녀에게 좋은 연인이라는 것 모두 ‘사실’이긴 하지만, 대니는 진심으로 테스를 ‘사랑’하는 반면 베네딕트는 그녀보다 자신의 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제한된 애정을 가졌을 뿐이라는, 보다 중요한 ‘진실’이 드러난 순간이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테스는 대니가 여전히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택하기로 결심한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사랑’이라는 진심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관계 안에서도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 태도, 표현 등의 표면적인 ‘사실’보다 더 깊고 중요한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시사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진실’을 안 테스가 베네딕트 대신 대니를 선택하는 설정은 관객들이 [오션스 일레븐]에서 - 또 비슷한 내용의 영화나 소설 등에서 - 어떻게 봐도 범죄자임이 분명한 쪽에 이입하고 응원하게 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오션 일당은 객관적으로 범죄자들인 데다, 앞서 말했듯 반드시 이 카지노를 털어야만 하는 어떤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지도 않다. 반대로 베네딕트는 합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카지노의 직원들 하나하나를 기억해 안부를 묻고, 외국인 VIP 고객들과는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등 유능함과 성실성, 나름의 매너까지 갖춘 인물이다. 만약 그가 대니의 전처인 테스와 엮이지 않았다면 굳이 자신의 카지노가 도둑 맞는 수모를 겪을 필요도 없었을지 모르고 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서의 ‘객관적 사실’은 이 오션 일당이 ‘나쁜 놈’들, 즉 ‘악역’의 포지션에 있고, 베네딕트가 ‘피해자’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라고 전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관객이 ‘오션 일당’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의 ‘정체’에 대한 ‘진실’이 ‘사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건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인처럼 보이는 베네딕트는 카지노를 운영하며 부를 쌓아 온 사람으로, 카지노를 통해 도박 사업을 하는 것이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에 대한 ‘진실’은 그가 사람들의 욕심, 절박함, 우울, 벗어나지 못하는 중독 등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인물이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부당한 부와 권력을 쌓았다는 ‘진실’은, 법 테두리 안의 일이라거나 어쨌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행위라는 ‘사실’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여러 세력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부정 부패, 비리가 만연한 사회 속에 살면서 ‘사실’이 ‘진실’을 덮는 상황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야 했던 관객들로선 "베네딕트"라는 인물에게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오션 일당’은 훔친 돈을 남들과 나누는 ‘의적’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베네딕트라는 인물이 대표하는 이기적이고 부패한 세력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더 옳은, 혹은 더 동조하게 만드는 편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처벌을 유예하고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를 대신해 그들을 ‘벌’한다고 하는, 부당하게 쌓은 재산과 권력의 탈환 추구라는 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진실’에 좀 더 가까운 입장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언젠가는 조지 클루니 같은 배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라도 영화 속 강도들의 편을 들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길 바랄 뿐이다. 홍길동이나 대니 오션 등을 굳이 상상하며 간접적 통쾌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 그런 사회 말이다. ‘사실’과 ‘진실’이 전혀 다를 바 없이 항상 일치하는 언젠가가 올 것을 내심 기대해 본다.
엄마 C의 시선
이제는 제목만으로도 하나의 ‘유명 브랜드’처럼 인식되고 있는 “오션스 시리즈”의 첫 편 “오션즈 일레븐(Ocean’s Eleven)”은, 1960년에 만들어졌던 원작을 리메이크해 2001년 개봉된 전형적 헐리우드 오락 영화입니다. 26살이라는 나이에 칸 영화제 역대 최연소 황금종려상(최우수상) 수상자가 된 것으로 유명한, 그리고 저희가 “영상이몽” 12편에서 소개했던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의 연출자이기도 한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감독의 지명도뿐 아니라 같은 작품에서 동시에 보기 어려울 초호화 캐스트,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 브래드 피트(Brad Pitt),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 맷 데이먼(Matt Damon)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면면과 이름만으로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이런 특급 스타들 쪽으로 관객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화의 구성이 “앙상블 캐스트(ensemble cast)”라고 불리는, 즉 출연 배우 모두의 배역을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분배하여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에, 제목 그대로 열한 명의 ‘동업자’들 모두가 – 거기에 그 상대편에서 적대적 역할을 맡은 앤디 가르시아(Andy Garcia)까지 포함하여 –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처럼 다수의 배역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고유의 ‘전문 분야’가 “카지노를 터는” 과정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하이스트 영화(Heist film)” 혹은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장르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르 가운데 큰 획을 그은 것으로, 게다가 “유쾌한 하이스트”로 평가되곤 하는 작품이지요.
사기 혐의로 수감되었다 가석방된 “대니 오션(Danny Ocean)”은 출소하기 무섭게 미국 전역의 친구와 지인 등 함께 ‘작업’할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하는데, 그 열한 명의 동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오랜 친구이자 카드 게임 전문가인 “러스티(Rusty),” 카지노 딜러로 일하고 있는 “프랭크(Frank),” 친구의 아들로 소매치기 솜씨가 뛰어난 “라이너스(Linus),” 컴퓨터와 전자공학 분야에 능한 “리빙스턴(Livingston),” 그리고 서커스단 곡예사로 몸놀림이 남다른 “옌(Yen)” 등입니다. 라스베이거스 소재의 대형 호텔 세 곳을 “테리 베네딕트(Terry Benedict)”라는 이름의 거부가 소유하고 있는데, 그 세 호텔 카지노의 돈이 집결되는 최신형 보안 금고를 목표물로 정한 대니는 테리에 대한 원한이 깊은 또 다른 부호 “루벤(Reuben)”을 설득해 그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본격적 준비 작업에 들어갑니다.
‘작업’의 준비 과정에서 호텔 소유주 테리가 대니의 전 아내 “테스(Tess)”와 연인 사이임이 밝혀지면서 러스티는 대니를 작업에서 배제하고, 대니의 가석방 사실을 알게 된 테리도 테스에게 접근하는 그를 일정 시간 감금하지만, 대니의 감금 중 진행된 금고 털이 작업은 놀라운 치밀성과 몇 가지 반전을 거듭하며 완벽한 성공을 거둡니다. 지하 60m라는 불가침의 위치, 문마다 하루 두 번씩 바뀌는 암호, 지문 감식과 음성 인식 시스템이 탑재된 승강기, 무장한 경비들이 24시간 감시하는 체제 등 철통 수비의 보안 장치를 뚫은 후 ‘마무리’ 단계에서 “SWAT” 팀으로 변장해 들어간 그들은, 유유히 돈가방을 들고 호텔문을 나서는 기막힌 실력을 보여 줍니다. 결국 ‘거사’를 앞두고 테스에게 접근했던 대니의 ‘부주의’한 행동 또한 미리 계획된 각본 중 하나였음이 밝혀지면서 대니는 동료들과 더불어 엄청난 금액의 돈을 테리로부터 훔쳐 내는 데 성공할 뿐 아니라 잠시 ‘빼앗겼던’ 사랑하는 테스까지 그로부터 되찾아 옵니다.
“속고 속이는” 일이 영화 속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한 부분처럼 ‘자리잡은’ 현실이기에 마냥 재미있다고 웃으면서 볼 수만도 없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카지노’라는, 요행심에 기댄 사람들이 제발로 걸어 들어와 돈을 펑펑 써대는 공간에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속여’ 벌어 들인 호텔 사장의 돈을 훔치는 내용이라는 스토리 전개가 불편한 마음을 덜어 주는 요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강약 약강”이라고 하는 - “강한 상대에게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강하다”는 - 말이 유행어처럼 되어 버린 세태 때문인지 사기를 치거나 보이스피싱을 하는 자들도 돈 많고 권력 있는 상대에게는 감히 실행을 못하고 연로하신 어른들처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게다가 이미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도와주겠다고 접근해서 다시 사기를 치는 경우까지 있다는 현실에서 말이지요.
‘작은 도둑’이 ‘큰 도둑’의 소유를 훔치는 내용의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도둑’ 쪽인 오션스 일당이 성공하기를 – ‘큰 도둑’을 이기기를 – 바라게 되는 것은, 단순히 주인공이 승리하기를 원하는 심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 시사평론가가 오늘날의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예로 들었던, 드라마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고부 갈등을 다루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시어머니 쪽이 ‘강팀’이면 며느리 편을, 그리고 며느리 쪽이 ‘강팀’이면 시어머니 편을 들며 보게 된다는 비유에 공감과 흥미를 함께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게 갈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한 쪽’을 응원하고 편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 준 실례(實例)여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인 우리 인간들끼리 불화하거나 적대시할 때 하나님께서 어느 쪽을 더 편들어 주실까, 영화를 보며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옳고 정의롭다고 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보면 하나님께서 좀 더 응원해 주시고 편들어 주시는 쪽은 당연히 약하고 힘없는 이들 쪽일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그런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지만 – 사실 어떤 특별한 메시지보다 2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 그럼에도 그런 영화를 볼 때조차 하나님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믿는 자들의 특권이라는 점에서 저에게는 나름대로 기쁨의 요소로서 기억될 듯합니다.
“늘근도둑이야기”라는, 아주 오래전 보았던 연극도 문득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된 이 연극을 배우 문성근이 출연했던 당시 관람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줄거리도 가물가물해진 이 작품을 지금 갑자기 떠올리게 된 이유는 - 물론 이번 내용과 연결되는 그 제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 역시 단순하면서 예리한 작품의 주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잣집을 털러 들어간 두 늙은 도둑이 커다란 금고를 눈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자신들의 ‘본분’을 잊은 채 세상 걱정, 시국 걱정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결국 “국정원” 요원에게 붙잡히고 간첩으로 오인 받는다는 웃지 못할 코미디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본분과 목적 완수에만 충실한 ‘젊고’ 똑똑한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오지랖이 넓을지라도 때로 바보같이 세상을 사는 ‘늙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지금이 아닐까 라는, 어리숙한 생각도 함께 해 봅니다.